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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이영훈

by 고박사 posted Apr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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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이영훈 1 + 2

 

LP-이영훈 1: The Origin Part.1: 이문세 베스트 컬렉션

 

1. 소녀

2.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3. 빗속에서

4. 회전 목마 (with 장혜진)

5. 깊은 밤을 날아서

 

 

1. 광화문 연가

2. 휘파람

3. 슬픈 사랑의 노래 (with 이소라)

4.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5. 붉은 노을

 

박춘석과 이미자, 이봉조와 현미, 주영훈과 엄정화, 조영수와 SG워너비, 용감한 형제와 브레이브 걸스...

작곡가와 가수 간의 합(合), 그 콤비플레이는 역사적으로 나열하기 힘들만큼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이는 굳이 협업과 궁합을 전제했을 때 연상되는 ‘짝’이지 보통 대중적 인지도와 영광은 엄연히 가수의 독과점이다.

 

어쩌면 스타시스템을 본질로 하는 대중문화 예술과 산업의 운명이겠지만 이 점에서 이문세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뒷전의 작곡가는 커녕 그의 이름만 들먹여도 마치 조건반사처럼 작곡가 고(故) 이영훈이 따라온다. 옆에 있는 게 아니라 ‘곁’에 살아있는 것이다.

이문세의 타임리스 음악은 이문세의 노래 이상으로 발군의 이영훈 작곡 역량, 그 천재성의 산물임을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문세는 2018년까지 정규 앨범을 열여덟 장 출시했다. 

이영훈과 작업한 앨범은 1985년 3집부터 1991년 7집, 그리고 1995년 9집, 1999년 12집, 2001년의 13집 등 모두 8장이다. 

반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7080 인구가 기억하는 이문세의 골든 레퍼토리의 90% 이상이 이영훈 작품이다.

결국 이문세의 음악적 정체성과 자아는 이영훈과 조우하면서 확립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곁’에 존재하는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문세는 이영훈을 만나기 전까지 2장의 앨범을 냈지만 가수로서 아이덴티티를 축조하지 못했다. 

이영훈이 써준 고감도 선율과 재기 넘치는 가사의 사랑노래를 통해서 비로소 라디오 DJ를 넘어 진정한 가수로 점프했다. 

역사에서 차지하는 이영훈의 자이언트 스탠스는 바로 이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작자이자 대중화의 주역이란 점에서 비롯한다.

 

이영훈의 노래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 대중음악은 트로트와 포크, 로큰롤이 전부였다.

게다가 이 모든 장르의 음악은 ‘한국적 터치’라는 수식과 동일시된 이른바 ‘뽕끼’(뽕짝 기운의 준말일터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것들과 인연이 없는 새로운 스타일을 찾는 수요층, 여고생에서 30대 고학력 여성들까지의 ‘감성 층’에게 클래시컬한 이영훈의 팝 발라드는 가뭄 속 단비였다.

그들은 “마침내 우리들의 음악이 나타났다!”고 환호했다. 이영훈 음악을 만나면서 기성음악으로부터 ‘집단면역’을 완성한 셈이다.

 

이영훈 음악은 크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회고적이나 당대의 감성을 아우르는 서정적인 곡, 감정 극대화에 의한 슬픈 감성의 곡, 그리고 상대적으로 빠른 리듬에 살짝 격정을 머금은 곡.

이 앨범 <이영훈 the Origin Part.1>에서 서정성은 ‘광화문연가’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이문세 노래를 접한 지금의 기성세대가 가장 추억에 매몰되는 노래들이다.

 

두 번째 애조와 비감(悲感)은 그야말로 이영훈의 특장 정서인데, 여기선 ‘소녀’,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슬픈 사랑의 노래’가 해당될 것이다.

이영훈은 세상을 떠나기 9개월 전 가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대표곡으로 ‘슬픈 사랑의 노래’를 꼽았다.

 

1987년 모티브를 잡았으나 늦게 가사를 써 1999년 이문세 12집에서 이소라와의 듀엣 곡으로 수록했다는 것이다.

워낙에 가슴 절절한 곡이지만 세상을 떠난 이영훈을 생각하면 더 눈물이 난다.

 

세 번째 스타일, ‘깊은 밤을 날아서’와 ‘붉은 노을’과 같은 속도감 있는 리듬 터치를 들으면 이게 과연 같은 작곡자의 곡인가 의아할 정도다.

훗날 아이돌 슈퍼스타 빅뱅이 ‘붉은 노을’을 리메이크한 이유도 전체를 지배하는 리듬감에 끌려서일 것이다.

이렇듯 이영훈의 눈부신 업적은 우리만의 팝 발라드를 굴착해낸 것과 더불어 상기한 것처럼 음악의 다양성을 구현했다는 데 있다.

 

이문세 콘서트가 문전성시인 것은 관객을 들었다놨다하는 고저장단, 이영훈이 만들어준 그 다채로움이 주는 만족감 때문이다.

80년대와 90년대 음악인구가 들었던 바이닐(LP)로 이영훈이 직조한 이문세의 오리지널 베스트 컬렉션을 듣는 것은 기성세대에겐 감격이요,

그의 음악을 모르고 자란 지금의 청춘들은 재현의 타임머신을 타는 경이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노래가 돌아오는 게 아니라 역사가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할까.

 

대중음악사가 이영훈을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 작가로 기록하는 이유가 

본 연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컬렉션 <이영훈 the Origin Part.1>에 담겨진 10곡에 있음은 물론이다. - 임진모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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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이영훈 2: The Origin Part.2: 이문세 베스트 컬렉션

 

1. 옛사랑

2. 해바라기

3. 기억이란 사랑보다

4. 가을이 가도

5. 애수

 

 

1. 사랑이 지나가면

2. 서로가

3. 오늘 하루

4. 기억의 초상

5. 그녀의 웃음소리뿐

 

故 이영훈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적 기초는 바흐, 쇼팽, 베토벤, 라흐마니노프의 느낌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클래식을 가요에 대입한 것이 아니라 창의적 방식으로 그만의 '팝 발라드’ 스타일을 주조해낸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음악은 클래식에 우리 정서를 섞고 휘젓고 새롭게 빚어낸, 일종의 ‘퓨전’이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우리만의 팝 발라드를 선사해줄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것이었지만 어딘가 모를 막연한 느낌의 친화력, 한국인이라면 즉각적으로 호응할 듯한 그 친밀감은 숨길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20대와 30대 여성은 물론 참신한 유행에 민감한 10대 여고생들은 특히 그랬다.

그들은 너도나도 ‘빠르게’ 이문세 노래에 흡수되었다. 실은 그의 보컬에 실린 이영훈의 멜로디에 속속 포박된 것이다.

한마디로 곡이 너무 좋아서였다.

 

이영훈이 국내 대중음악 역사에서 ‘게임 체인저’가 된 것은 일차적으로 이들의 성원에 있다.

팝 발라드가 고통 속에 주류에 안착한 게 아니라 무혈입성이라고 할 만큼 부드럽게 착지하게 된 것 또한 그들 덕이다. 

이것도 게임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영훈은 더 큰 게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문세와 이영훈이 떠오르던 당시 국내 대중가요의 대세는 우리 가요가 아니라 서구 팝이 장악하고 있었다.

음악 팬은 곧 영국과 미국의 팝송을 듣는 팬을 의미했고 이문세의 출세작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나온 1985년까지 라디오는 팝이 지배했다.

당장 이문세가 디스크자키(DJ)였던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부터가 팝을 더 많이 틀었다.

아마 지금의 세대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음악잡지도 팝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영훈의 곡들이 음악수용자들에게 어필하면서 판은 다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팝을 들어야 했던’ 그들 사이에선 ‘이제 우리 가요도 들을 만하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퍼졌다. 

이것은 ‘가요를 듣는 애들은 수준이 낮아!’라는 이전의 무시를 고려하면 거의 천지개벽이었다.

팝 프로는 하향세, 가요 프로는 상승세가 이어지더니 1988년에 가서는 마침내 팝과 가요의 역전이 이뤄졌다. 게임 체인지, 가히 혁명이었다.

 

이영훈의 진정한 업적은 멸시의 늪에 허덕이던 가요가 팝을 넘어 유행음악의 주체로 거듭나는 기초를 마련한데 있다.

이영훈의 궤적을 단지 예술적 측면에서가 아닌 시대적 사회적 측면으로도 해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K팝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성공을 쾌척해낸 우리 대중가요가 서구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과 자유를 획득한 서막을 이영훈이 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본 앨범 <이영훈 the Origin Part.2>에 수록한 ‘옛사랑’, ‘그女의 웃음소리뿐’, ‘해바라기’, ‘사랑이 지나가면’, ‘가을이 가도’

그리고 뮤지컬 <광화문연가>를 통해 명품임이 재확인된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은 서구의 팝 발라드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만큼세련된 멜로디와 순차 진행을 과시한다.

 

K팝으로 한국 대중음악을 안 외국인들에게 이 노래들은 들려주면 반응은 한결 같다.

‘멜로디가 훌륭하다!!’ ‘고급지다!!’ 이랬으니 1980년대를 어린 시절로 보내며 이전세대보다 가요의 감수성을 더 진하게 체득한 젊은 세대는 다른 말로 ‘이문세 세대’ ‘이영훈 세대’가 된다.

 

2004년 신년 벽두를 강타한 이수영의 ‘광화문연가’를 필두로 성시경의 ‘소녀’, 서영은의 ‘가을이 오면’, 리즈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 김범수의 ‘오래 전 사진처럼’ 등

때 아닌 이문세 음악 리메이크열풍이 불어 닥쳤다. 심지어 당시 한 일간지는 “리메이크 히트하려면 이문세 노래를 불러라”라는 기사까지 게제하기도 했다. 

 

2008년 말에 시작해 이듬해를 강타한 빅뱅의 ‘붉은 노을’(실은 그룹 신화가 먼저 리메이크했다)은 열풍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바이닐(LP)에 실린 노래들은 2020년대 젊은 음악가들의 리메이크 소재가 될 것으로 믿는다.

 

리메이크는 ‘새로운 대중들’의 인지를 통해 곡의 생명력을 확대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이영훈 음악만큼 새로운 대중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음악도 흔치 않다.

이영훈은 그렇게 유행가임에도 시대불변의 명작을 써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자랑이다. - 임진모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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