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클래식 음악을 아날로그로 듣는 시간

by 조찬규 posted Aug 24,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jpg

 2016 예스24 Classic LP 신보 감상회(KBS 1FM 〈명연주 명음반〉 정만섭 음악평론가)


사람의 귀가 모든 기술을 완성한다

 정만섭 음악평론가는 자신을 <명연주 명음반>을 15년간 진행한 진행자라며,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농담으로 편안하게 행사를 시작했다. 처음 해설은 역시 LP의 효용성과 존재 이유에 관한 내용이었다.

 

“LP를 만들면서 중간에 녹음 과정에서 디지털 소스가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 LP는 본질적이지 않다고 지적을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현실에서 LP를 들을 수 있다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에서도 주말에 한 장씩 LP 소개를 해드리는데, 주말 방송은 녹음 방송이거든요. 어차피 LP로 틀어도 파일로 녹음했다가 방송이 나가잖아요. 사실 LP를 듣는 의미가 없죠. (웃음) 그런데 결국에 모든 세팅은 사람의 귀가 한다고, LP 마니아분들이 방송을 들으면 LP 맛이 난다고 합니다. 디지털 파일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왜 사람들이 LP를 듣는지, 저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 주위에 있고 아직도 지속해서 발매가 됩니다.”

 

뒤이어 정만섭 해설자는 결국에는 음악의 본질은 사람이라는 주제를 던져 주었다.

 

“앰프 전문업체로 유명한 에스테틱스, 일본의 CD 플레이어로 유명한 럭스맨이나 야마하에서의 초 하이엔드급 CD플레이어 튜닝의 마지막은 공통으로 계측기가 하지 않습니다. 직원의 귀로 합니다. 아이러니한 거죠. 결국에는 아무리 좋은 기술도 사람의 귀가 완성합니다.”




8월 25일 오후 7시 30분, 통의동 오디오가이에서 예스24가 주최한 클래식 LP감상회가 열렸다. 2015년부터 정기적으로 열린 이 행사는 특정한 주제로 엄선된 LP 음반을 들을 수 있다. 정만섭 음악평론가와 함께 리이슈(reissue) 음반을 중점적으로 다룬 2월 행사에 이어 이번에는 아날로그포닉(ANALOGPHONIC)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을 듣는 시간이었다. 아날로그포닉 최우석 담당자와 이번 감상회에 사용된 전축을 만든 별표전축의 이승목 사장도 함께했다.


정만섭 음악평론가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 음악감상회 목적에 맞게 음악을 집중적으로 듣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행사는 아날로그포닉과 턴테이블 소개 후 계속해서 음악을 듣는 순서로 진행됐다. 가을을 알리는 비와 함께 오디오가이에는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졌다.

 

2.jpg

 

 

아날로그포닉, 즐길만한 음반을 만들자


아날로그포닉은 CD와 LP유통을 위주로 한 C&L레이블의 신규 레이블이다. 리이슈와 재발매에만 그치지 않고 오디오 마니아들이 충분히 즐길 만한 퀄리티의 음반을 제작하는 걸 목표로 한다. 최우석 담당자는 음반을 듣기 전 아날로그포닉만의 장점과 특성에 관해 설명했다.


최우석 아날로그포닉 레이블을 시작한 이유는 클래식 음반만 전문으로 발매하는 레이블이 없기도 하고, 시장이 작다 보니 타이틀 수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해외와 국내 음악적 취향도 차이가 있다보니 저희가 직접 기획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음반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제작하는데, 하나는 아날로그로 녹음된 테이프를 다시 아날로그로 만드는 방법과, 80년대 이후 디지털로 제작해 한 번도 LP로 제작되지 않았던 음반을 만드는 방향입니다. 다른 음반사와 달리 아날로그포닉에서는 음반이 어디서 제작되었고, 어떤 스투디오에서 어떤 엔지니어가 작업했는지 다 밝히고 있습니다. 제작한 장소나 커팅한 엔지니어에 따라서 사운드가 많이 차이나기 때문입니다.


이번 행사에 쓰인 턴테이블은 ‘별표전축’에서 만든 기기였다. ‘별표전축’을 만든 이승목 사장은 기존에 해외에서 수입한 턴테이블은 가격장벽이 높은 경우가 많아 슬로베니아에 있는 턴테이블 제조회사와 계약을 맺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해외에는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쉽게 조립할 수 있는 전축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이엔드 턴테이블과 비교해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게 많이 노력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이승목 생업으로 디지털 오디오를 주로 만들지만 저도 집에서는 아날로그로 많이 듣습니다. LP 붐이 일어나면서 음악 애호가 분들이 아날로그 턴테이블을 구하려고 해도 가격이나 기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많이 문의하신 게 계기가 되어 만들게 되었습니다. 5월부터 진행했는데 한 열명 정도 같이 참여하셔서 첫 번째 프로젝트는 마감되었고요. 들어보시면 기존에 듣던 턴테이블과 많은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1.jpg

 

 

빼어난 음질, 뛰어난 가성비

 

감상회 목록에는 총 8개의 LP가 올라왔다. 첫 번째로는 요안나 마르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한 브람스와 멘델스존, 모차르트,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차례차례 들었다.


정만섭 이전에 EMI음반이 많이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르치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몇몇 애호가가 열성적으로 소개해서 그나마 나중에 본격적으로 마르치의 진가가 나타났습니다. 이전에는 음반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 음반사 사장님이 방송국에서 레코딩한 음원도 찾아내는 등 열심히 발굴해 지금은 이전에 비하면 많이 있는 편이죠.


마르치 앨범을 한 마디로 하자면 고혹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피아노 같은 악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하시는 분이 많아요. 피아노가 논리적인 악기라면 바이올린은 정서적인 악기에 가깝죠.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귄터 발트 지휘자와 함께 녹음했습니다. 귄터 발트의 모던한 해석이 마르치의 바이올린과 어우러져서 상당히 감독적입니다.

 

L (1).jpg
Johanna Martzy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Johannes Brahms: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77) 요한나 마르치, 귄터 반트

 

정만섭 마르치는 자존심이 센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여담이지만 EMI의 프로듀서였던 윌터 레그가 마르치에게 접근하자, 마르치는 과감하게 거절하고 연주를 안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프로듀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EMI에서 음반이 나오는데 많은 지장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스테레오 레코딩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도 합니다.


이어서 들려드리는 맨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음반은 재밌는 기획입니다. A면에는 요안나 마르치가, B면에는 이다 헨델이 같은 곡을 연주했어요. 20세기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를 같은 음반에 넣었더니 확연하게 스타일이 차이가 납니다. 이다 헨델은 조금 어두운 느낌이라면 저는 개인적으로 마르치 쪽을 더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습니다.

 

2.jpg

Johanna Martzy / Ida Haendel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Felix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MWV O 14)

 

정만섭 마르치의 특징은 발굴하면 할수록 여러가지를 잘한다는 데 있습니다. 연대 음악 소품도 잘하고 고전, 낭만 등 레파토리를 가리지 않습니다. 일찍 연주를 그만뒀지만 남아있는 레파토리 폭은 매우 넓어요.

 

3.jpg

 Johanna Martzy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4번 (Mozart: Violin Concertos)

 

정만섭 마르치는 모차르트도 잘했지만 베토벤도 특별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모차르트와는 다르게 프레이징이 근사하죠. 웅성거림 없이 정확하고 모던합니다. 지금 연주회장 다니는 음악애호가들이 미샤 엘만을 들으면 실망할텐데 마르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들어도 모던한 연주를 들려주죠.

 

4.jpg

Johanna Martzy 베토벤 /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 요한나 마르치 (Beethoven: Violin Sonata No.8 Op.30-3 / Mozart: Violin Sonata No.24 KV.376)

 

정만섭 다음으로 들으실 곡은 안냐 타우어라는 첼리스트가 연주했습니다. 소개에 따르면 ‘한 줌의 레코딩’만 남아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레코딩이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안냐 타우어는 스물여덟에 상사병으로 자살을 합니다. 영화 같죠. 이번 음반은 체코 필하모닉과 한스 뮐러-크라이와 호흡을 맞췄는데 합치가 잘 되었습니다. 기념비적인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5.jpg

Anja Thauer 안냐 타우어 -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Dvorak: Cello Concerto Op.104)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밀스타인의 LP는 새로 발매된 걸 제외하고는 상당히 비쌉니다. 소품집이 많지도 않고요. 이작 펄만도 밀스타인을 최고로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하는데, 실제로 무반주 소나타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샤콘느 같은 곡도 밀스타인은 편하게 연주합니다. 콘서트 때 앵콜곡으로 연주할 정도죠.

 

6.jpg

Nathan Milstein 나단 밀스타인 바이올린 명곡집 (Masterpieces for Violin and Orchestra)

 

마지막으로 들은 두 곡은 아르튀르 그뤼미오와 발터 클린이 연주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와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e단조였다. 정만섭 평론가는 가장 마지막으로 틀기 좋은 곡이 차이코스키 5번이라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곡이 끝나고 나서도 참가자들은 턴테이블과 아날로그포닉의 LP를 구경하는 시간을 보냈다.

 

7.jpg

Arthur Grumiaux / Walter Klien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집 - 아르투르 그뤼미오, 발터 클린 (Mozart: Great Sonatas for Violin And Piano)

 

8.jpg

Valery Gergiev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 발레리 게르기에프, 빈 필하모닉 (Tchaikovsky: Symphony No.5 in E minor, Op.64

*체널예스에서 퍼온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