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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양장 심심산중 트랜스포머 명인 2차방문기

by 항아리 posted Aug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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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려다 보면 하늘이 세 평 밖에 안보인다는 진정한 산골마을 정선에는
오디오에 관련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칠순 노인이 한 분 살고 계십니다.

 

 자급자족의 백미는 진공관 오디오에 필수불가결한 핵심부품인 트랜스포머를
 직접 제작한 나무권선기로 세월아 네월아 물레를 돌려가며 수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정도면 장인(匠人)으로 칭해도 마땅할 것입니다.

 

 트랜스는 눈 튀어나오게 많이 감아 헨리값이 많이 나온다고 좋은 것이라 할 수 없고,
 적게 감아서 적은 dcr로 빠른 반응을 유도한다는 되지도 않을 말을 갖다붙인다고 좋은 것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모름지기 트랜스포머란 선택한 코어의 특성과 코일 턴수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트랜스 명가들은 그런 것에 대한 데이터와 노하우가 확실했던 것으로 보이며,
 우리의 장인께선 요즘 생산되는 아몰퍼스 코어를 선택해
 나름의 데이터를 정립하기 위해 코일을 감고 또 감기를 수십만 번 되풀이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으음....

 

 신호경로의 순서대로 보자면
 손수 제작하신 라인 트랜스포머,
 프리앰프의 입력트랜스포머, 출력트랜스포머, 전원트랜스포머, 초크코일,
 그리고 파워앰프의 인터스테이지 트랜스포머, 드라이버 트랜스포머, 출력트랜스포머,
 전원트랜스포머, 초크코일, 그렇습니다.
 
 실로 인간승리라 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재간이 없는 성과인데,
그 성과가 사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깨끗한 세 덩이의 앰프에 올려진 것들입니다.
 그 옆에 경악할 정도로 흉측하고 지저분한 두 덩이는 제 것이니 못본 척 하셔도 됩니다.

 

 모양으로나 뭐로나 이른바 백로와 까마귀의 만남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모든 라인업을 갖추고 새롭게 탄생한 백로의 소식을 듣고 까마귀가 놀러간 것입니다.
 3년만의 방문인데, 당연히 축하해주러 간 것은 아닙니다.
 밟아주러 간 것입니다.

 

 보리밟기를 연상하시면 딱 맞겠습니다. 까마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백로와 까마귀는 똑 같은 구성입니다. 모든 관이 5극관(빔관 포함).

 (우리동네에선 3극관은 오디오 용도로 안쳐줍니다.)
 단지 트랜스포머들만 다릅니다.


 백로의 모든 트랜스포머들은 말씀드렸듯 장인께서 손수 제작하신 것이며,
 까마귀의 모든 트랜스포머들은 똥도 좋다던 시절의 미제 올드 트랜스포머들입니다.

 

 그래도 홈그라운드인데 백로가 얌전히 있기만 하겠습니까.
 백로와 까마귀는 세게 붙었습니다.
 
 심판은 알텍 A7과 탄노이 실버입니다.
 
 판정의 핵심은 두가지인데,
 트랜스포머의 정보량과 음악성,
 그리고 동작 시정수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미치광이 5극관을 길들인 숙련도 정도가 되겠습니다.

 

 여하간 백로와 까마귀는 심하게 치고박고 했습니다.

 때로는 백로와 상체와 까마귀의 하체가 붙기도 하고, 까마귀의 상체와 백로의 하체가 붙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프리와 파워를 번갈아 붙이면 싸움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한바탕  대판 싸우고 나서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집에 가야 합니다."
 장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고 가."
 잤습니다.
 다음날에 다시 말했습니다.
 "오늘은 가야 합니다."
 "자고 가."
 또 잤습니다.
 다다음날에 또 다시 말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가야합니다."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가."
 안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정관념 하나가 깨졌습니다.
 요즘 감은 트랜스들은 소리결 전반에 걸쳐지는 들을수록 점점 지독해지는 싸구려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연의 한가운데에 파묻혀 지내면서 매일매일 자연에 경탄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과연 사람의 일이나 물건은

 철저하게 그 일이나 물건을 도모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르는 필연성을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온 김에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자연도 구경하고 거기서 사는 사람들도 보고 그러면 좋잖아. 자고 가."
 "가야 되는데...."
 "오늘은 읍에 가서 곤드레밥 먹고 아리힐 올라가서 절벽에서만 자라는 동강할미꽃 구경도 해야지. 자고 가."
 "산골길을 그렇게 자주 운전하시면 건강에 좋을 리가 없을 텐데요. 연세가 연세니만큼 자중하셔야지요."
 "매일 다니는 길도 매일 다른 게 자연이야. 자연은 항상 새로워서 매일 운전해도 지루하지가 않아. 내가 운전하는 거

쓸데없이 걱정하는 척 하지말고 자고 가."

 "으음...."
 "오늘은 거북이마을, 몰운대, 소금강으로 한바퀴 쭉 돌자구. 자고 가."
 "으으으음.....가야 되는데...."
 "항골이라고 있는데 차량통행도 못하는 오지야. 그런데 추석 앞엔 성묘객들을 위해서 길을 열어놓거든.
이런 기회 흔치 않아. 오늘은 항골 들어갔다 나오고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가."
 "우하하하, 갈 겁니다. 오늘은 기필코 집에 갈 거라구요. ㅎㅎㅎㅎㅎ...."

 

 장인의 트랜스포머가 어떤 소리인지 들리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사진1 장인 부부께서 운영하시는 새치펜션

사진2 새치펜션 진입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