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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레인지 사족

by 윤영진 posted Mar 0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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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북두형님이 모 잡지에 풀레인지 기사를 쓰시는 바람에 곁다리로 좋은 글이 게시판에도 실리게 되었습니다. 북두형님의 글이 앞으로 풀레인지에 관한 좋은 레퍼런스 텍스트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제목처럼 사족이지만, 저의 풀레인지에 대한 감상을 적어봅니다.

저에게 있어서 풀레인지의 음은 "레퍼런스"입니다.
약 10년 가까이 풀레인지로 소리를 들었습니다. 물론 풀레인지만 사용한 것은 아니고, 꾸준히 끼고 살았다는 것이 바른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양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풀레인지의 소리를 귀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가장 밸런스가 좋은 맑은 음"을 표준음으로 귀에 각인 시켜서 향후 오디오생활에서 닥칠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훈련기간"이었습니다.

아직 젊기 때문에 풀레인지를 "최종적 목표"로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광대역 재현을 원합니다. 그런데 광대역이란 최소 3개의 유닛 정도는 필연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른 문제와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유닛간의 매칭, 인클로져의 간섭, 네트워크의 왜곡, 임피던스 매칭의 어려움, 위상의 변화 등등......

따라서 3개 정도의 유닛으로 밸런스 잡힌 좋은 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론서나 남의 조언이나 숱한 "매칭 공식"도 다 필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본이 "자신의 음에 대한 기준"입니다.
이 "자신의 음에 대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약 10년간 풀레인지를 틈 나는대로 들었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청각의 기억력은 6-8초에 불과합니다. 한 두번 들어도 다른 좋은 소리,
화려한 소리 듣고나면 미리 잡아둔 기준음감이 다 뭉개져 버립니다.

결국 한 10년을 듣다보니, 귀에 못이 박혀서 풀레인지의 음이 뇌에 각인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한 일은 먼저 말한 "풀레인지의 음에 위화감 없이 저역과 고역을 늘려나가는 일"과 "멀티웨이로 풀레인지의 음색을 유지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카빈 소총으로 작은 과녁을 맞추는 훈련을 잘 마친 다음, 산탄총으로 다시 그 과녁을 맞추는 일과 비슷합니다. 당연히 산탄은 과녁과 함께 옆면까지 산만하게 뚫어버립니다.
원으로 된 과녁의 직경이 5cm라면 카빈 소총의 탄착흔은 직경 3cm쯤 되는 것으로 비유해서 과녁의 옆은 남게 됩니다. 그런데 산탄총으로는 남은 부분만 정확히 직경 5cm로 맞추지 못하고 직경 10cm쯤의 불규칙하고 넓은 탄착흔을 납깁니다. 물론 직경 5cm의 과녁도 완전히 클리어시키지 못하고 군데군데 찌꺼기를 남깁니다.

멀티앰핑에 대한 유혹이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혀도 선듯 가지 못한 것도 이런 목표가 원인이었습니다. 멀티앰핑은, 풀레인지음 같은 레퍼런스는 도외시한 별개의 다른 차원의 컨셒입니다.
그냥 강력한 산탄총으로 과녁을 놓치지 않고 날려버리겠다는 매우 간명하고 확실한 방법론이지만, 과녁만 정확히 클리어하겠다는 지향점과는 맞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원하는 방향과 목표는 일종의 아이디얼 타잎이기 때문에, 머리 속에서는 그리기 쉽지만,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결국 약 5년간의 몸부림 뒤에 최근 1주일도 안되는 시점에 겨우 지금까지 지향했던 목표의 음이 제 시스템에서 나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만 풀레인지 스피커를 꺼내서 커다란 인클로져 위에 놀려 놓고 번갈아 들어보고 있습니다.

질 좋은 대구경 줌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대상의 초점을 픽스시키고 뷰파인더로 줌 기능을 앞뒤로 변화시키며 확인하듯이 들어보고 있습니다.

얼추 맞아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주관성이 강한 주장일 수 있으나, 빈티지오디오를 즐기려는 사람들께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풀레인지로 시작해서 멀티웨이로 갔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풀레인지로 환원하라!"는  권유입니다.

물론 풀레인지 유닛이라고 모두 소리가 같은 것이 아닙니다. 풀레인지를 자꾸 들으며 찾다보면, 그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하나의 "레퍼런스"을 찾을 수 있고, 그 찾은 레퍼런스는 사람마다 다 틀립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음이 자기가 원하는 음입니다. 그걸 머리에 각인시키고 거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JBL의 8인치 유닛에서 시작한 사람이 JBL유닛을 사용한 5웨이 멀티앰핑으로 갈 수도 있고, 텔레풍켄 6인치로 시작한 사람이 클랑필름 클라톤으로 갈 수도 있고, 755A로 시작한 사람이 웨스턴의 미러포닉 시스템으로 갈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각각 다 다른 길을 가더라도 각각의 다른 길에서 방황이나 시행착오가 적게 감에 있어서 처음 시작이 되는 "기준음"의 가이더 역할이 매우 큽니다.

초기에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보편성에서 벗어나지 않은 "음의 기준"을 확립해 놓지 않으면 돈버리고, 몸 버리고, 그러고도 찾는 것을 못 찾아 방황하기 마련입니다.

저에게 기준음을 제공한 풀레인지 유닛은 "필립스/노렐코의 6.5인치 유닛"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