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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편하자고 하는 일인데

by 윤영진 posted Mar 2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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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오디오와 관련해서 그리 동호인들과의 교류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냥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취미처럼 지냈습니다. 그런데 약 6개월 전부터 어쩌다 이 곳 게시판에서 여러분을 사귀며 조금 번잡한 생활이 되었습니다. 뭐 싫다는 것은 아니고 재미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분들의 오디오를 통한 음에 대한 기호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는 오디오를 통해서 "적극적인 음을 만들겠다"는 분들과, 다른 하나는 "소극적인 음을 만들겠다"는 분들입니다. 앞의 분들은 아직 열정이 생생한 사람들이고, 뒤는 열정이 식었거나 원래 느긋한 사람들입니다.

적극적인 음 만들기는 달리 말해서 "음향적 사운드"를 지향하는 것이고, 소극적인 음 만들기는 "음악적 사운드"를 지향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사진 촬영를 예로 들자면, 전자는 사진관이나 스튜디오 등에서 촬영하는 연출된 사진이고, 후자는 야외에서 자연광으로 촬영하는 스냅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 조건에서 자연광으로 스냅사진을 촬영해서 원하는 사진을 얻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일종의 한계라는 것이 있어서 자연스러움은 있지만, 촬영하는 사람이 원하는 디테일이나 강조, 콘트라스트, 색감 등등을 얻기가 힘듭니다.
반면 스튜디오 촬영에서 각종 조명, 기술적 응용을 통해 촬영을 하는 것은 "테크닉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피사체를 "재창조"할 수 있습니다. 실제보다 더 보기 좋게 촬영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적극적 음 만들기'를 원하는 분들은 주로 '개성이나 특성이 강한' 기기와 튜닝을 지향합니다.
대개 이런 분들이 원하는 것은 "실제보다 더 듣기 좋은 음"입니다.
한 예로 콘트라베이스의 낮은 음역을 재생하는데 있어서 실제로 듣는 음감으로는 성이 안 차서 실제보다 더 낮고 박력있는 저음을 오디오 시스템에서 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것은 고역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어쿠스틱 바이얼린 소리 보다는 일렉트릭 바이얼린 소리에 가까운 오디오 재생음을 선호합니다.
실제로 어쿠스틱 악기로는 "돌절구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은 나지 않습니다. 하늘하늘 봄날에 명주실 풀려 올라가는 듯한 바이얼린 소리도 안 납니다.
현악 합주 같은 것을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들어보면 "극상의 연주"에서 조금만 연주의 품위가 떨어지면 귀가 불편할 정도로 현악기 마찰음이 시끄럽습니다.
반면, 오케스트라 연주 등은 실제 연주에서는 해상력도 애매하고, 고역과 저역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저역은 그나마 공간을 울려 나오는 "풍압과 울림"으로 인지가 되는데, 로열석 아니면 고역은 잘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마이크와 믹서와 오디오를 통해 적당한 음질과 밸런스로 가공해서 실제보다 더 좋게 듣는 것이 가능합니다.

반면 '소극적인 음 만들기'를 원하는 분들은 일단 실제로 듣는 음을 기준으로 자신이 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을 조금씩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음을 튜닝합니다.

물론 이런 치우친 취향 외에 "실제 소리와 똑 같은 소리의 재현"을 목표로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도 조금씩 자기 취향이 개입되게 마련이고, 이런 분들은 보통 최신형 하이엔드 기기들을 사용합니다.

적극적 소리는 대개 "컬러링과 강조"를 지향합니다. 일단 본인이 인정하든 안 하든 실제 소리와 다릅니다. 따라서 서툴게 만들면 실제보다 못하고, 잘 다듬으면 실제보다 음향적 쾌감이 더 좋습니다.

소극적 소리는 실제 소리보다 일단 못합니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막상 결점을 찾으려고 하면 그것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주위에서 오디오 하시는 분들은 보면 일단 처음부터 중반을 지나서까지는 '적극적'으로 합니다.
자신의 음에 자꾸 좋은 음을 덧칠하려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후반을 지나면 자꾸 지워나갑니다. 더 좋게 하는 데 지쳐서인지, 그냥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지워나가는 겁니다.

술 좋아하는 분들과도 비슷한데, 젊어서는 소주나 위스키를 좋아하다가도, 나이 들면서는 청주나 와인 등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나이에 비해서는 소극적 음만들기로 너무 일찍 접어든 것이 불만 아닌 불만인데, 술만큼은 아직도 소주나 위스키를 즐기니 그것은 불만입니다.

해 놓고 보니 뭔 소리인지 모르는 소리가 되었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늘 듣던 자신의 소리와 잠깐 귀동냥으로 듣는 남의 소리를 직접 비교하지 말자는 겁니다.
저는 여태 껏 다른 분들의 오디오 소리가 내 것보다 못한 경우를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게 정성을 들여도 내 시스템은 남의 것보다 소리가 부족할까? 늘 자책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 나가서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내 아내보다 못한 여자가 없었습니다. 어디가 매력이 있건 하나라도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이 참은 아닐 거라는 마음이 요즘 부쩍 듭니다.
자존심이나 독선을 초월한 따뜻한 자기애를 갖게 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렇지 못하면 가장 아름다운 취미도 자신을 괴롭히는 독이 됩니다.

화끈하고 죽이는 소리를 산의 정상에 비유하자면, 편하고 느긋한 소리는 산의 기숡에 해당합니다. 산의 정상에서는 오랜 시간 머물 수가 없습니다. 좋지만 불편한 탓이지요. 그냥 기숡에서 느긋하게 사는 것이 지혜라고 봅니다.

지금 막 불이 붙어있는 동호인 막내 이승민(한계남2호)씨를 보고 생각이 나서 횡수했습니다.

쉽게 풀어서 결론을 내자고 한 얘기가 더 우습고 멍청한 애기가 되었습니다. ^^ 양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