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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와 오디오

by 윤영진 posted Feb 2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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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낚시(민물낚시)를 배운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 30년이 훨 넘었습니다.
낚시도 오디오처럼 병적인 집착을 낳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리도 낚시와 오디오가 비슷한 점이 많은지....

우선 낚시에 빠지다 보면, 주제인 고기 잡는 것, 그리고 폼 잡으며 인생을 낚고, 풍류와 자연을 즐긴다는 구라는 능숙하게 늘어놓지만, 어느새 장비에 빠지고 맙니다.
바늘은 명칭 그대로 바늘)카트리지와 같습니다. 국산으로는 만족 못해서 외제 특수강으로 만든 비싸고 귀한 유명제품을 찾아다닙니다. 낚시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늘고 섬세하면서 질긴 걸 찾아서 귀동냥에 발품을 팝니다.
온갖 고기 잘 낚인다는 비방은 귀가 혹해서 별 짓을 다 써 봅니다.
일종의 낚시기구 튜닝과 오버홀과 리스토어링, 기기 엎그레이드....
신소재 제품이 나오면 안 사고 못 견디고.....
어찌 그리 오디오병과 증상이 같은지....

역시 결정적인 장비는 낚시대입니다.

제가 처음 낚시를 배운 때는 대나무 낚시대 뿐이었습니다.

낚시 가기 전날부터 저는 아버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신이 났습니다.
우선 가는 곳이 시장의 기름 짜는 집입니다. 아버님은 미리 주인께 "값을 좀 더 처주기"로 하시고, "기름을 좀 덜 짠 들깻묵"을 주문해서 사오십니다.
이걸 정교한 톱으로 사방 1센티 정도의 주사위처럼 써는데, 손재주 좋으신 아버님은 자도 안대고 잘라도 오차 범위 3% 이내에 다 듭니다.
달라진 깻묵(짜개라고 부름)을 실로 정성껏 묶어서 바늘에 걸 수 있게 만들면 일단 '잉어 채비'의 기본 준비가 끝나고, 다음으로는 찌 봉돌 맞춤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은 턴테이블의 세팅, 참압조정 등의 과정과 흡사합니다.
어머님은 주먹밥과 삶은 감자 등을 준비해 저녁에 미리 챙겨두십니다.

마지막으로 낚시대를 전부 꺼내서 손질 상태를 확인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보수나 조정을 합니다.

그 때, 집에는 가보로 내려오던 한 100년 묵은 낚시대가 하나 있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명장이 만드셨다는 지금 말하자면 고에츠 바늘 비스한 것이라고나 할까.... 웨스턴 미러포닉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제작자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새겨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새까만 옷칠을 올린 위에 정교하게 은입사(은실을 자개처럼 파고 넣어서 갖은 문양을 새기는 기법)로 멋진 문양을 올린 예술작품이었습니다. 1960년대 말경 2백만원쯤 간다고 했으니, 집 한채 값은 더 되었나 봅니다. 아버님은 할아버님(할아버님은 한국 낚시계의 최고수중 한분이었다고 함)의 유품이라며 무지 이걸 아껴서 저는 만져 보는 것조차 아버님 눈 앞에서 헝겊 등으로 직접 손과 접촉을 차단한 상태에서만 허용되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그라스로드라는 것이 TR앰프 전성기처럼 일세를 풍미하고, 대나무 낚시대는 진공관 앰프 신세로 전락했던 때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의 낚시 친구들(또래끼리 출조하는 수준은 전교에 3명 뿐이었음)
과 강화도에 낚시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버님이 지방에 며칠 가 계신 때였습니다.

드디어 가보 낚시대를 친구들에게 자랑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몰래 가방에 가보 낚시대를 넣어가서 자랑을 하니, 그라스로드만 써본 친구들이 은근히 부아를 올렸습니다. "멋만 있으면 뭐하냐? 실제로 고기를 잘 잡을 수 있어야지!"라고,
바꿔 말해 "진공관 앰프 멋있으면 뭐하냐? 측정 수치는 TR을 못 따라 오는데!"식입니다.

"무식한 것들! 니들이 손맛을 알아? 대나무를 타고 손에 전해지는 이 오르가즘같은 전기맛을?"

한껏 자긍심을 높여서.....

결국 가보 낚시대는 서툰 조사의 힘들어간 어깨로 수 회 휘둘리다가 수초에 걸리고, 끝에서 두번째 마디를 우지끈 부러뜨리는 참사를 당했습니다. 팬티 바람에 물에 들어가 파편이 된 호사끼 부분을 건져왔으나, 몸서리쳐지는 추위보다는 아버님의 노한 모습이 공포로 나가와 추운줄도 몰랐습니다.

미취학기에 아프신 어머님 곁에서 위험한 장난 하다가 다치게 했을 때 아버님에게 맞은 뒤로 두 번째 호되게 맞았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할아버님의 유품인 것도 중요해! 그러나 이 세상에 하나뿐이 안 남은,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답고 소중한 예술품을 망쳤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픈 일이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오랜 시간 들었던 훈화의 내용을 간추리면 대충 이와 같습니다.

............

요즘 낚시를 그리 잘 다니지는 않습니다. 바다 낚시는 PA 시스템으로 음악 듣는 것이라고 우습게 보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바다 낚시도 즐깁니다.
장비에 대한 욕심이 사라진 것도 오래입니다. 그저 그런 구식 카본재질의 낚시대들이 가방에 별 손질도 안한 채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딱 세 대의 대나무 낚시대가 가방 한켠에 비교적 손질이 잘 되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진공관 앰프에 빠지고 몇 년 지나서 구한 것들입니다. 순천의 마지막 남은 대나무 낚시대 명인을 회사 후배PD가 취재하고 난 후, 갑자기 아버님의 대나무 낚시대가 몸소리쳐질 정도로 그리웠습니다.
후배를 앞세워 "실전용(일부러 장절로 특주해서 가볍고 길게 맞춤)" 한대와 오디너리한 2.5짜리 한 대, 두대를 장만하고, 더불어 민물-바다 겸용의 '릴대'도 하나 특주했습니다.

그 후로 낚시를 가면, 고기가 잘 물릴 때는 일반 카본대 2.5, 3.0 두 대(3대 이상은 안 펴는 것으로 어릴 적 아버님에게 단단히 교육 받았음) 펴고, 고기 보다는 그냥 물가에 앉은 자체로 마음이 풍요로울 때는 대나무 낚시대 딱 한대만 폅니다.

.......

이에 비해 오디오에 대해서는 낚시만큼 여유와 밸런스, 관조하는 너그러움을 갖지 못했습니다.
아마 아버님이 오디오도 하셔서 어릴 때 마음 가짐까지 같이 가르쳐 주셨다면 달라졌을 겁니다.
이끌어 주는 사람 없이, 마음 다듬기보다는 기계 욕심으로 시작한 오디오니 어찌 같은 마음가짐을 낳았겠습니까?

........

가끔 낚시대 손질 하면서 오디오병을 다스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