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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도 제작 초광대역 파워앰프?

by 윤영진 posted Mar 0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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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도에 제작된 할아버지 2A3 PP파워앰프의 험을 잡기 위해서 고생하다가 결국 못하고 사부님께 맡겼다는 말씀은 전에 드린 적이 있습니다.
험은 하루 이틀만에 잡혔습니다. 문제는 주파수 특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웨스턴 소리 딱 난다!" 며 그냥 사용하라는 분위기였습니다.
대역특성은 30-13,000 정도만 평탄한데, 귀에는 그리 부족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거의 병적인 "완벽주의자"입니다.

"기초가 안 된 앰프는 용서할 수 없다"가 지론입니다.

사부님이 정해 놓은 앰프의 기초란, 주파수 특성이 일단 20-20,000Hz를 커버해야 하고,
풀 파워에서 잔류 노이즈 레벨이 1mA를, 디스토션이 3db 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거의 2주 넘도록 이 할아버지 앰프는 사부님으로부터 해부를 당하고 전기고문을 당하고,
장기이식수술을 당했습니다.

그제 토요일 마침내 퇴원을 시키러 갔습니다.

사부님이 새로 감아 넣은 트랜스가 두 개 이식되어 있었습니다.
"일단 인터스테이지와 출력 트랜스가 오리지널과 새것 두 조가 있으니, 마음대로 골라서 들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감아 넣은 트랜스를 장착한 상태에서 음악을 듣고 측정기로 측정도 해 보았습니다.
음이야 뭐라 말 않겠습니다. 간단히 말해 좋았습니다.

측정기에 걸었습니다. 20-20,000hz 에서 - 3db 범위에 다 듭니다. 특히 잘 감은 인터스테이지 트랜스로 드라이브된 저역이 무척 깊고 맑습니다.
노이즈 레벨과 디스토션을 측정해 봤습니다. 풀 파워에서 0.8mA와 2.5db로 나타났습니다.

가져다 놓고 틀어보면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아니 전에 갖고 있던 빈티지 파워앰프 어느 것보다 "젊고, 맑고, 넓고, 조용하고, 싱싱한 소리"가 납니다. 76살 먹은 할아버지 앰프에서.....
겉으로 생긴 모습하고는 무지무지한 부조화입니다. 장수만세에서 랩송 부르는 격으로....

문제는 오리지널 상태의 음하고 꼭 어느 것이 좋다고 선택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오리지널 상태는, 구수하고 회고적이면서 아련한 뉘앙스가 나와서 좋고....
리스토어링된 것은, 물리특성이나 음향 특성 모두가 흠 잡을 데 없이 나와서 좋고.....

방법은 두 페어를 별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낙찰되었습니다.
한 페어는 새로 감은 인터스테이지와 출력트랜스를 사용하고 정전압 직류 점화로,
한 페어는 오리지널 상태에서 험만 잡아서 교류 점화해서....

지금 이 파워앰프가 제게 3 덩어리가 있으니, 한 덩어리를 또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결정해 놓고도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인지 또 후회가 됩니다.


* 사족....

35Kg이 훨씬 넘는(원래 35Kg쯤 되었는데, 사부님이 트랜스를 세 덩어리나 더 달아놔서 몇 Kg이 더 늘었음. 한 채널 모노블럭 하나 속에 트랜스만 모두 8개씩 들어 있고, 그중 전원 트랜스 하나만 10Kg이 넘습니다. 그래서 한 페어의 무개가 80Kg에 가깝습니다.) 쌀포대만한 앰프를 들고 6층에서 계단을 내려와, 다시 집에서 5층 계단을 걸어 올리고 나니, 팔다리 허리에 근육 경련이 일어나고, 입에서는 거품이 났습니다.
자꾸,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와 후회가 닥칩니다.
그래 놓고 좀 쉬고 나서는 다시 한 페어 더 짝 맞춰 들여올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병을 어찌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