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화학조미료와 NFB

by 윤영진 posted Aug 2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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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요리에 취미가 있어서 가끔 이것저것 요리를 하곤 합니다.
군에 입대하니까, 처음 선상근무에서 몇 개월 동안 취사당번을 시키더군요. 다음 졸병 들어올 때까지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수개월 동안 하드 트레이닝을 받으니 그동안 솜씨가 꽤 늘었습니다.

요리를 할 때마다 시작하기 전에 꼭 스스로 다짐을 하는 것이 "화학 조미료를 안 쓰고 재료의 본 맛을 우려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야심찬 시작과 욕심과는 달리 요리가 완성될 때쯤에는 늘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맛과 간을 보면서 처음 먹은 마음대로 맛이 덜 우러나서 딱 2%쯤 맛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이때 가장 유혹에 빠지는 것이 '화학조미료'를 조금만 넣으면 어떨까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2%의 맛을 화학조미료로 메우겠다는 유혹은 강렬합니다.
이 유혹에 이겨서 그냥 음식을 내면 입맛 까다로운 큰 아들이 꼭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뭐 좀 덜 들어간 것 아니에요?"

.........

오디오 튜닝 역시 비슷합니다.
처음 프리나 파워앰프 만들거나 튜닝하면서 각오를 다지는 것이 "NFB를 걸지 않고 어떻게든 마쳐 보겠다."는 것입니다.

요 며칠 저를 괴롭힌 유혹도 이것이었습니다.
온갖 짓을 다 했는데, 결국 2% 쯤 부족한 것입니다.
거의 노이로제 걸릴 정도까지 몸살을 앓으며 인두를 지지다가, 마침내 비겁하게 타협을 하고 말았습니다. NFB를 건 것입니다.

프리앰프에만 약 2DB 정도 아주 약하게 걸었습니다. 2%에 맞추려고 그랬는지....

씁쓸하고 처연하고 슬프게도, 이 2DB 정도의 NFB가 마지막 원하던 2%를 채워주는 겁니다.
딱 좋습니다. 주파수 특성, 유연성, 질감, 노이즈 특성...... 그 모두가 원하던 소리가 납니다.

아! 장안의 널린 고수님들은 이 2%의 벽을 잘도 넘더구만, 갓 초보를 벗어난 수졸의 실력으로는 결국
NON NFB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합니다.

와이프나 애들한테 늘 하는 변명이 절로 나옵니다.

  " 아빠는 밖에서 식당 음식 먹어 버릇해서 화학조미료가 조금은 들어가야 입에 맞는다.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