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정특성과 동특성

by 윤영진 posted Apr 0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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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폭기기에 음악신호를 재생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측정된 기기 특성을 정특성이라고 부르고,
실제로 음악신호를 재생하면서 스피커를 통해 귀로 들리는 특성을 동특성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동특성이란 것은 기준 수치로 객관적인 평가 자료를 내 놓기 어렵다는 겁니다.
물론 테스트 시그널을 걸어서 워터 폴 특성이나, 스위핑 시그널 데이터를 뽑아서 어느 정도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도 복잡한 음악신호를 재생하는 경우와는 또 차이가 납니다.

정특성과 동특성의 괴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TR앰프와 진공관 앰프입니다.
진공관앰프의 정특성은 도저히 TR앰프의 그것을 따라가기 힘듭니다.
재생 주파수 대역, 댐핑팩터, 디스토션, 노이즈 레벨, 다이내믹 레인지 등등....
그런데 실제로 음악을 들어보면 그런 차이가 무색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디스토션 1%짜리 진공관 앰프와 디스토션 0.003%짜리 TR앰프를 비교해서 들어서 그 차이를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 반대로 디스토션이 300배쯤 더 나오는 진공관 앰프의 소리를 더 좋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공관앰프, 특히 직렬3극관 앰프를 제작 또는 사용할 때 NFB를 되도록 안 걸도록 애를 씁니다. 아무리 직렬3극관이 다극방렬관이나 TR에 비해 리니어 특성이 좋다고는 해도 NFB를 전혀 걸지 않았을 때의 주파수 특성이나 대역특성은 상당히 안 좋습니다.
즉, 정특성이 수십배 또는 수백배는 나빠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배나 정특성이 안 좋은 쪽으로 바꾸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바로 동특성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매킨토시에서 만드는 TR앰프는 요즘도 출력 트랜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TR출력에 트랜스를 사용하는 것은 바보로 욕을 먹을 짓입니다. 돈 들이고 무겁게 해서
정특성을 일부러 나쁘게 만드는 짓입니다.
플레이트 저항이 낮은 진공관을 사용해서 OTL앰프를 만들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하고는 정반대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매킨토시회사가 전부 바보만 모인 곳은 아닙니다. 정특성을 희생해서도 트랜스 아웃 방식이 가져오는 동특성의 이점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터스테이지 트랜스를 사용하거나, 좋은 프리아웃 트랜스를 사용해서 프리앰프를 구사해본 사람들은 다시는 사용하기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듭니다.
당연히 "아무리 좋은 트랜스"라고 해도 트랜스가 들어가면 정특성은 악화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얻어지는 동특성의 개선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공관 앰프를 좋아한다고 해서 TR앰프를 폄훼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TR앰프들이 주로 "자본주의 시장경쟁"의 상황에서 "홍보와 마케팅"으로 제품을 팔기 위해 제작되다 보니, 홍보과정에서 수치로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정특성"의 개선과 과시에 지나치게 함몰되다 보니, 보다 중요한 동특성이 소홀하게 된 점을 아쉬어 합니다.

특히 귀를 통한 청감 테스트에 있어서 노하우나 집착이 부족한 국내 메이커들이 만든 TR앰프들은 이런 단점이 더 두드러집니다.
디스토션이나 S/N이 0.003 이하라고 자랑하는 여러 개의 국산 TR앰프들을 들어본 결과 그런 수치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NFB를 많이 건다는 의미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NFB를 많이 걸고도 그만큼 높은 출력을 뽑기 위해서는 회로상에서 지나치게 기본출력을 많이 걸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백화점에서 높은 임대료와 재고 손실을 감안해서 옷값을 원가의 4-5배 쯤으로 파는 것과 같습니다. 스피커로 나오는 출력이 100W라면 실제로 앰프는 200W쯤 * 빠지게 출력을 뽑고 있는 겁니다. 나머지는 NFB로 소멸되어 버립니다.
NFB를 많이 건 앰프를 고음량으로 재생하면 실제로 피드백이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의 회로 출력은 엄청나게 높게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잘 알다시피 포화(크리핑)이 일어납니다. 다행히 진공관은 소프트 크리핑을 하고 동시에 신호의 압축현상이 일어나서 음질에 별 문제가 없지만, TR앰프는 하드 크리핑 되면서 음이 찌그러지고 답답하고 불쾌해 집니다.

정특성 개선을 위한 방법론들은 매우 간단합니다.
- 전원 평활 콘덴서의 용량을 마구 키워 험을 줄이고 전류공급능력을 키운다.
- NFB를 최대한 걸어서 주파수를 광대역으로 평탄하게 한다.
- 출력소자를 다병렬로 구성해서 출력 임피던스를 낮추고 다이내믹 레인지를 늘린다.
- 캐소드 바이패스 콘덴서를 큰 용량을 덕지덕지 붙여서 저역대를 키운다.
등등.....

물론 다 이런 컨셒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골드문트나 제프 로렌드, 넬슨 패스, 첼로 등등 소수의 하이엔드 메이커들은 "정특성"보다 "동특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지 비싸다는 점은 있지만...

앰프 뿐만이 아니라 스피커도 같습니다.
소위 빈티지 스피커라는 것들은 정특성에서 요즘 콤포넌트에 붙어 나오는 허접 싸구려 신형 스피커보다도 훨씬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로 들어보면 훨씬 좋게 들립니다.

앰프건 스피커건 동특성이 좋은 경우, 그 음질 차이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약음의 재생"에서 입니다.
제가 수차 말했듯이 오디오 기기는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틀어놓으면 하이엔드와 허접의 차이가 없어집니다. 바로 약음의 뉘앙스가 묻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약음의 뉘앙스는 동특성이 좋은 앰프와 효율이 좋은 스피커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최고급 하이엔드 기기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용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배는 더 지출해야 합니다.

오디오 기기의 측정 수치는 믿지 마시고, 귀를 믿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