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해상도에 대한 자신감 결여

by 윤영진 posted Aug 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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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전까지만 해도 풀레인지를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메인스피커로도 사용한 적이 있지만, 서브 스피커가 되어도 애용했습니다.
그러나 15인치 우퍼를 사용한 대형 혼스피커를 사용하면서 슬그머니 풀레인지는 잘 듣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음악을 들을 때 스케일감이 주는 쾌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러다가 요즘은 자주, 해상력 부족에 대해서 불만이 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어느 음반의 누구 노래를 듣다보면, 맆 노이즈(입술에 침방울 묻어나는 소리)가 섬세하게 들렸는데, 근래에는 확연히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물론 그런 섬세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음악 감상하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미세하고 섬세한 소리가 들리는 것 또한 오디오의 쾌감 중 하나입니다.

특히 그동안 많이 노력했는데, 내 시스템의 해상력이 이토록 퇴보했는가라는 불안감도 한 몫을 합니다. 한동안은 해상도를 개선한다고 전원부에도 손대고, 케이블도 손대는 등 안절부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짓을 하다보면 조금 나아진 듯하다가도 또 시간이 지나면 매한가지입니다.

그래서 캐비넷 안에 쳐박혔던 풀레인지 몇 개를 꺼내어 인클로져나 평판에도 안 걸고 그냥 한참 들어봤습니다. 그동안 못 듣던 소리가 들립니다.
못 듣던이라기 보다 불분명하게 둔하게 들리던....
입술의 침방울 묻어나는 소리며, 라이브 음반에서 객석의 미세한 소음, 옷깃 스치는 소리, 연주자의 악보 넘어가는 소리 등등....

풀레인지의 얇은 콘지와 작은 직경의 보빈, 그리고 디바이딩 네트워크를 통하지 않은 파워앰프와의 연결로 인한 해상도 증가 때문이란 것은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보다는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나이 먹어서 귀가 자꾸 둔해진 탓이란 것을 이제 더이상 부정하기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며칠 전 이비인후과에서 특별히 청각테스트를 받고 왔습니다.
한 쪽 코에 비염이 생겨서 치료받는 김에.....

웬만한 병원에 있는 테스트 장비는 테스트 최고 한계가 10KHz 정도고 건강검진할 때는 고역을 3KHz정도에서 검사하고 맙니다. 20KHz까지 테스트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가야 합니다.
물론 의사하고 개인적으로 친분도 좀 만들어 놔야 하고....

역시나, 18,000은 이제 음량을 많이 높이지 않으면 안 들리더군요
테스트 기준 음량에서 겨우 15,000을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의사는 껄껄 웃으며, 요즘 뉴스에 나오는 "청소년용 휴대전화벨"이 13,000Hz 니, 그건 들을 수 있겠다며, 아직도 나이에 비해서 5-10% 안에 들 정도의 청각을 가졌다고 격려합니다.

아마 제 귀가 이렇게 노쇄해 가면서 해상력을 지각하는 능력도 함께 낮아지니,
미세한 소리가 안 들리나 봅니다. 그런 걸 시스템의 해상도 저하라고 불안해 하고.....
어쩐지, 전에는 네트워크를 거친 대형 스피커의 중고역 혼에서도 침방울 묻어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결국 스피커의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제 귀였습니다.

또 하나 증상은 자꾸 음량을 올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테뉴에이터 기준으로 2,3클릭 정도는 높이는 것 같습니다.
빈티지 프리앰프를 걸어서 거기 달려있는 라우드니스 콘트롤을 켜 놓으면 아주 소리가 잘 들립니다.
전에는 병적으로 라우드니스 회로를 싫어했는데.....ㅠㅠ

혹시 최근에 업무상 DMB모니터링 한다고 이어폰을 자주 사용한 것이 귀를 더 빨리 망가뜨린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에 귀가 지금보다 더 좋을 때, 나이 든 애호가 집에서 음악 듣다가 불편했던 두 가지 사례는
고역이 너무 쏘는 듯이 나는데, 본인은 괜찮다고 할 때,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역이 전혀 안 나오는 데, 본인은 잘 나온다고 우길 때였습니다.
심한 경우는 겨우 40을 조금 넘긴 사람에게도 이런 사례가 가끔 있다는 겁니다.

이럴 때는 속으로만 새겨야지 뭐라 했다가는 자칫 다툼이 납니다.

그럴때마다 속으로 쓴 웃음을 짓던 제가 이제는 그 꼴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 저는 오디오를 논할 때 고역 재생능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거나
해상도가 어쩌니 하는 말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A-B 테스트를 하면 구분은 잘 됩니다. 귀란 것이 테스트용 시그널만 단순히 들으며 검청하는 것과 달리 음악을 들으며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해상도와 고역 재생범위를 얘기할 때문 무척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지요.

나이 먹으면 풀레인지에 직열관 싱글앰프로 회귀한다는 말은, 치열한 오디오 전투에서의 비겁한 회군이나 노력의 포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귀의 청력 저하로 인한 것입니다.

나이 든 귀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대역 범위가 풀레인지의 재생 범위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집니다.
100Hz부터 13,000Hz 정도까지 평탄한 소리가 늙은 귀에는 편한 소리 대역입니다.

게다가 풀레인지는 동일 음량에서 해상도가 훨씬 좋은 물리적 특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당연히 나이 먹은 귀가 편하게 음악을 듣기 좋은 여건이 됩니다.

즉 귀에 오디오가 맞춰지는 자연스런 변화입니다.

슬프지만, 인생 살면서 생로병사의 정해진 과정에 순응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쩐지 요즘 듣는 매미울음 소리도 전보다 덜 시끄러운 것 같고.....
6년 동안 땅 속에서 꾸물거리다가 짧은 한 여름 기간 내에 짝짓느라 애쓰는 마음을 이해한 탓도 있겠지만....

그제 술자리에서 선배 하나가 손자 태어날 날을 손꼽으며, 본인이 자식 날 때보다 더 마음이 설렌다고 할 때, 이제 죽음을 예감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생에 대한 욕구의 편린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