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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와 오디오 재생음

by 윤영진 posted Apr 0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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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조개나 멸치, 다시마 등 천연 식재료를 통해서 얻던 豐味材는 이제 합성제조법으로 글루타민산나트륨이나 핵산 등의 조미료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많이 사용되지만 특히 음식점에서는 이런 화학조미료에 많이 의존합니다. 사람들이 점차 현대화 사회를 살다보니 외식도 많이 하고, 인스턴트 음식도 자주 먹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입맛이 자연스럽게 이런 화학조미료에 길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누구나 이런 화학조미료가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을 알기에 늘 줄여 먹고자 하지만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얼마 전 TV의 실험을 보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조미료를 적게 먹고 싶다고 말하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보면 실제로는 화학조미료가 안 들어간 음식은 맛이 없다고 중간에 수저를 놓습니다.
  당연히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음식을 조리하는 가정이나 음식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단지 “합성”이냐 “천연”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조미료’가 필요합니다.
  간단한 국수만 만들어 먹을 요량이라도, 일단 멸치나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내고 여기에 천연조미료인 간장 등이 추가되어야 맛이 납니다.

  오디오 재생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디오를 통해서 원래의 원음과 가장 근접하게 재생하는 것을 대부분 목표로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실험을 해 보면 상대적으로 원음과 가까운 음보다는 배음이나 착색이 가미된 음을 더 좋다고 여깁니다.
  주파수 특성조차도 자대고 그은 듯한 특성보다는 소위 말하는 BBC 특성과 같이 중저음이 약간 부풀고 중고역에서 위로 살짝 가라앉았다가 고역 끝자락에서 다시 살짝 고추선 음조성을 더 좋다고 느낍니다.
  이처럼 오디오의 음 재생 특성이 마치 맹물과 같은 것 보다는 어느 정도 착색이 된 것에 이미 귀가 익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미료를 사용할 때도 질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고, 좋은 것이라고 너무 많이 사용하면 오히려 맛을 버리는 것과 같이 오디오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음을 압축하여 방사하는 드라이버와 공기임피던스를 변환시키는 혼에 의해서 재생되는 “착색된 소리”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그 착색이 무당집 五方色처럼 요란하면 불쾌하게 느끼고, 있는 듯 없는 듯 가미가 되면 매우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해도, 맨얼굴 보다는 거의 하지 않은 것처럼 교묘하게 살짝 화장을 한 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오디오로 재생음을 만들 때 너무 “원음 구사”라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조미료가 싫다고 맹물에 소금만 타서 국수 말아 먹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특히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미적 감흥을 느끼는 “경험기준”이나 “개인특성”, “생체특성”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각 좋아하는 소리나 취향도 모두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디오 취미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에 대해서 “절대적인 자기 기준”을 우선 가져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이 ‘독선적인 고집’을 가지라는 말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림만 해도 미적 감상의 교육과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속칭 ‘이발소 그림’을 좋다고 할 수도 있듯이, 다양한 아름다운 소리를 많이 듣고 스스로 ‘미적 창감’을 훈련한 다음에 자기 기준을 확립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기기 욕심’이라는 것이 개입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옷을 잘 입을 줄 모르는 사람은 아르마니나 BOSS 같은 명품 슈츠를 입어도 웬지 보기에 어색해 보입니다. 사소하지만 넥타이 색깔이나 문양이 잘 안 맞는다든가 양말이 촌스럽다든가 하는 매칭의 미스로 전체적 밸런스가 깨진 경우입니다. 그러나 옷 입는 감각을 키우기 전이라도 이런 명품 옷에 대한 욕심은 누구나 갖기 마련입니다.
  주위에서 가끔 기기 욕심 때문에 아주 값비싼 유명 기기를 구입해서 쌓아놓고 만족 못하면서 자꾸 바꿈질을 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자칫하면 오디오 사업자나 상인들만 좋은 일 시켜주게 됩니다.
  바둑 격언에 수를 잘 모르겠으면 두질 말고 버티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기나 음감에 대한 확신감이 없을 때는 그냥 기존의 기기를 들으며 남의 기기 귀동냥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도 좋은 방책입니다.

  저의 잦은 경험담이지만, 귀가 좋아지기 전에 구박하고 내보냈던 기기 중에 나중에 그 가치를 몰랐던 것을 알고 후회한 적이 참 많았습니다.
  아무리 첫인상이 나쁘고 마음에 차지 않는 기기라도 일단 6개월 이상은 곁에 두고 애정을 쏟아서 듣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전에는 결혼 전에 얼굴도 못 보고, 누군지 알지도 못한 채 결혼을 하고도 점점 정을 쌓아서 백년해로 하는 부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온갖 조건을 다 미리 따져보고, 수십 차례 속궁합까지 맞춰보고 결혼한 부부도 1-2년을 못 넘기고 이혼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저도 그랬지만, 주위에 오디오 때문에 경제적으로 고통 받고 가족 간에 불화를 일으키는 일이 자주 있어서 안타까운 심정에 허튼 소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