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후덥지근한 장마도 끝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얼마 안있으면 추석도 다가오고..
그리고 연례행사처럼 다녀올 일이 있으니 벌초하러 가는 일이다.
누구든 하는 일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무엇이있다.
벌초를하면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형제들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도 특별한 것이지만
벌초후에 또다른 벌초를 해야하는 더 특별한 일이있다.
그건 몇년전에 간암으로 이승을 달리한 친구의 산소를 손봐줘야하는 일이다.
가족이 있어 우리들처럼 벌초를 하는 일이란 항용 특별할것도 없지만
딸랑 가족이라야 아내와 딸이있는 친구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가족의 손길이 닿지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어 더욱더 친구를 보듬어 주고싶은 마음에
몇년째 친구의 산소를 벌초 해주고있다.
그와난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서 학교도 같이 다니면서 정이 많이 든 친구지만
서로 마음이 잘 맞았던 탓이였는지 언제나 형제보다도 두터운 우정을 나누던 친구였었다.
그가 이승을 달리하기 몇년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오디오로 더욱더 가까이 지내는 처지였었다.
그의 해박한 음악에대한 감성을 나에게 전수해주던 친구를 생각해보면 그때가 얼마나
좋았던 시절이었는지 새로와진다.
형편이 나보다 훨씬 나았던 그는 내가 친구의 오디오의 무엇이 탐난다고 허튼 소리를 하면
그는 그자리에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갖다 쓰라고 말하던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었다.
아무리 친형제라고한들 그렇게 했을까하는 생각도 여러번 해본적이 있었다.
그렇게 남의 마음을 잘 배려해주던 친구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웁고 서글픈뿐이다.
사실 내가 그의 산소를 관리해주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두지않는다.
그저 친구일 따름이고 다른 친구들처럼 보다는 무언가 각별한 인연이 있어서일것이다.
생전에 유언처럼 남겨 놓고간 기천만원대의 오디오를 넘겨주어서도 아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고인이 될때까지 그와 난 의미가 남다른 정감어린 우정을 교감한
유일한 친구이어서란 생각일뿐이다.
그와 그런 좋은 감정을 갖고 살았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었고 생전의 그의 행동을 보면
내 인생의 좌표를 가름하게하는 본보기였었다.
그의 그런행동에 감동을 했었고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표본이되기도했었다.
그런 그가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내가 친구를 살펴야 한다는데에 분명히
무엇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그의 산소를 찿아올때마다 해봤다.
" 어찌하여 아내가 딸을 데리고 아버지의 산소를 찿아오지 않는 것일까 ?"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리도 산소를 방치해야만 하는가 ? "
알수없는 나의 질문에 물음표만 대답하는것같았다.
언젠가 그의 부인이 나를 찿아와서 자기 남편이 사용하던 값나가는 오디오를 돌려달라고
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껏 연락이 없이 지내오던터였다.
연락처를 두고 가지 않했기에 친구의 오디오를 돌려줄수도 없었고 그뒤로 얼마후에
친구의 오디오로 음악감상을 하면 눈물이 나고 먼저 간 친구가 자꾸 떠올라서 처분하여
어느 보육원에 기부해 버렸던것이다.
그런 이후로 친구의 부인을 본뒤론 이제껏 소식도 알수가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않했다.
궁금증은 여전했고 특히나 친구의 예술작품인 그의 딸이 컷으면 아버지 산소를 다녀 갔음직도
하건만 내가 추석이 가까워 그의 산소를 찿아갔을때 여전이 무성한잡초로 둘러쌓여 있음은
무어라 표현할 수없는 서운한 감정이 교차되기도했었다.
한번만이라도 그의 가족이 다녀갔었더라면 내마음도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했었을텐데...
그러면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산소를 알고나 있는 것일까 ?
언젠가 늦가을 저녁때쯤 첼로 가방을 멘 어느 여학생이 나를 찿아왔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하니 초겨울이라고해야 옳을거같다.
" 선생님, 함자가 방자 현자 이신가요 ? , "
" 그래요, 근데, 내이름은 어떻게 ? "
" 어머님이 언젠가 선생님을 찿아뵈라고해서... , 아버지가 종자 수자이시죠. "
" 아 아 !, 그러면 학생이 유진이가 아니냐 ? , 예쁘고 건강하게 컷구나 ! ,
근데 어머니는 건강하시지... ? "
유진이는 잠시 말을 잊지못하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 " 나는 깜짝 놀랐다.
" 어째 이런 일이..., 그럼, 너는 어떻게 생활해 가느냐 ? "
" 고모님댁에서 지내다가 대학에 들어간후론 혼자 지내요 ,
지금은 고모님댁도 형편이 안좋아서 ...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 네가 참 어렵겠구나 , 근데 첼로 전공인가보네 ? "
" 네에, "
"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아버지 살아계실때 내가 너의 집을 자주 들락거릴때 아버지는
음악중에서도 첼로 음악을 무지 좋아하셨지. 아버지는 엄마때문에 방황도 했었지만
일상을 첼로처럼 살아갈려고 노력했지, 첼로현의 소리가 얼마나 근엄하고 장중하고
또 풍만허냐 ? , 아버지는 나한테 언제나 변치않는 우정을 갖고 풍성한 삶을 살자고하던
말이 생각난다. 너도 음악대학을 졸업하면 훌륭한 예술가가 되도록 노력하고 아버지
말씀처럼 후일엔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혼자라고 외로워 하지말고 잘 안되는 일이있으면 나와 상의해서 처리했으면좋겠다. "
" 네 , 아저씨 말씀대로 첼로처럼 살려고 노력할게요, 꼭 첼로처럼 살거에요 "
"그래, 고맙다 , 나도 도울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마 "
이야기를 들어본즉 날 찿아가보라는 것은 특별한 도움을 요청하기보단 친구 부인이
찿아가지못한 기천만원짜리 오디오를 찿아가지 못했으니 네가 필요하면 찿아쓰라는
것같은 직감이 들었다.
허나 유진이는 아버지 오디오에대해서 일언반구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알고서 말을 않는것인지 모르고 있는것인지는 가늠이 안섰으나 아버지 친구를 찿아가보라는
친구부인의 말을 새겨보면 찿아쓰라는것이 아닌가 ?
유진이가 오디오 얘기를 꺼냈다면 자초지종을 말해야하니 그렇게 곤혹스러울수가 없었을
것이나 얘기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그냥 있는다는것이 어른스럽지 못한거같이 느껴졌다.
형편이 안좋은 유진에게 무슨 도움을 주려고 여러모로 궁리해봤으나 가장 좋은거는 학업에
열중하라고 첼로를 사주기로 아내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후로 한달여가 흘렀지싶다.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을 먹으며 할얘기가 있으니 무슨일이 있어도 오라고했다.
아내와같이 평소알고지내는 악기점에 부탁하여 독일 수입 첼로를 사왔다
유진이가 앞으로 유능한 첼로연주자가 되려면 그래도 쓸만한 거로 사기로 했던것이다.
저녁식사후 유진에게 첼로를 건네주었다. 깜짝 놀라는 유진이었다.
"아저씨 , 이 좋은 첼로를 왜 저한테.. ? "
"아저씨가 너의 아버지 생전에 도움을 받은걸 생각하면 너한테 이 첼로를 선물로 준들
상쇄가 되겠느냐 ?, 너의 아버지는 생전에 쓰던 값비싼 오디오를 나한테 물려준적이
있었지 , 친형제도 아닌 친구에게 선뜻 내어주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
그러니 내가 너한테 이 첼로를 주어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질것같다,
아무 생각말고 기쁘게 받아 주길바란다."
" 아저씨 , 정말 이은혜는 ..., 열심히 공부해서 아저씨의 정성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첼로처럼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유진이는 나의 말을 듣고 수긍하는듯 기꺼이 첼로를 받아들고 돌아가려고했다.
" 유진아, 다음번 일요일엔 아버지 산소에 안 가보겠니 ? "
" 그래요 ? , 사실 제가 아저씨를 찿아뵌건 아버지 산소땜에 찿아온건데...... ?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가시기전에 아버지가 그리웁고 보구 싶으면 아저씨를 찿아가라고
저한테 주소를 주셨어요 "
고모도 있는데 왜 날 찿아가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을 해봤다.
전에 유진 엄마가 남편의 오디오를 돌려달라고해서 돌려주지 못한 자책감때문에
미완성의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유진이가 날 찿아온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음 일요일에 유진이를 만나 친구의 산소를 들러볼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 예술가는 죽어 묻히면 후대들은 그의 작품과 대화를 한다 " 란 말을..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얼마 안있으면 추석도 다가오고..
그리고 연례행사처럼 다녀올 일이 있으니 벌초하러 가는 일이다.
누구든 하는 일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무엇이있다.
벌초를하면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형제들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도 특별한 것이지만
벌초후에 또다른 벌초를 해야하는 더 특별한 일이있다.
그건 몇년전에 간암으로 이승을 달리한 친구의 산소를 손봐줘야하는 일이다.
가족이 있어 우리들처럼 벌초를 하는 일이란 항용 특별할것도 없지만
딸랑 가족이라야 아내와 딸이있는 친구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가족의 손길이 닿지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어 더욱더 친구를 보듬어 주고싶은 마음에
몇년째 친구의 산소를 벌초 해주고있다.
그와난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서 학교도 같이 다니면서 정이 많이 든 친구지만
서로 마음이 잘 맞았던 탓이였는지 언제나 형제보다도 두터운 우정을 나누던 친구였었다.
그가 이승을 달리하기 몇년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오디오로 더욱더 가까이 지내는 처지였었다.
그의 해박한 음악에대한 감성을 나에게 전수해주던 친구를 생각해보면 그때가 얼마나
좋았던 시절이었는지 새로와진다.
형편이 나보다 훨씬 나았던 그는 내가 친구의 오디오의 무엇이 탐난다고 허튼 소리를 하면
그는 그자리에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갖다 쓰라고 말하던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었다.
아무리 친형제라고한들 그렇게 했을까하는 생각도 여러번 해본적이 있었다.
그렇게 남의 마음을 잘 배려해주던 친구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웁고 서글픈뿐이다.
사실 내가 그의 산소를 관리해주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두지않는다.
그저 친구일 따름이고 다른 친구들처럼 보다는 무언가 각별한 인연이 있어서일것이다.
생전에 유언처럼 남겨 놓고간 기천만원대의 오디오를 넘겨주어서도 아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고인이 될때까지 그와 난 의미가 남다른 정감어린 우정을 교감한
유일한 친구이어서란 생각일뿐이다.
그와 그런 좋은 감정을 갖고 살았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었고 생전의 그의 행동을 보면
내 인생의 좌표를 가름하게하는 본보기였었다.
그의 그런행동에 감동을 했었고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표본이되기도했었다.
그런 그가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내가 친구를 살펴야 한다는데에 분명히
무엇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그의 산소를 찿아올때마다 해봤다.
" 어찌하여 아내가 딸을 데리고 아버지의 산소를 찿아오지 않는 것일까 ?"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리도 산소를 방치해야만 하는가 ? "
알수없는 나의 질문에 물음표만 대답하는것같았다.
언젠가 그의 부인이 나를 찿아와서 자기 남편이 사용하던 값나가는 오디오를 돌려달라고
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껏 연락이 없이 지내오던터였다.
연락처를 두고 가지 않했기에 친구의 오디오를 돌려줄수도 없었고 그뒤로 얼마후에
친구의 오디오로 음악감상을 하면 눈물이 나고 먼저 간 친구가 자꾸 떠올라서 처분하여
어느 보육원에 기부해 버렸던것이다.
그런 이후로 친구의 부인을 본뒤론 이제껏 소식도 알수가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않했다.
궁금증은 여전했고 특히나 친구의 예술작품인 그의 딸이 컷으면 아버지 산소를 다녀 갔음직도
하건만 내가 추석이 가까워 그의 산소를 찿아갔을때 여전이 무성한잡초로 둘러쌓여 있음은
무어라 표현할 수없는 서운한 감정이 교차되기도했었다.
한번만이라도 그의 가족이 다녀갔었더라면 내마음도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했었을텐데...
그러면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산소를 알고나 있는 것일까 ?
언젠가 늦가을 저녁때쯤 첼로 가방을 멘 어느 여학생이 나를 찿아왔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하니 초겨울이라고해야 옳을거같다.
" 선생님, 함자가 방자 현자 이신가요 ? , "
" 그래요, 근데, 내이름은 어떻게 ? "
" 어머님이 언젠가 선생님을 찿아뵈라고해서... , 아버지가 종자 수자이시죠. "
" 아 아 !, 그러면 학생이 유진이가 아니냐 ? , 예쁘고 건강하게 컷구나 ! ,
근데 어머니는 건강하시지... ? "
유진이는 잠시 말을 잊지못하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 " 나는 깜짝 놀랐다.
" 어째 이런 일이..., 그럼, 너는 어떻게 생활해 가느냐 ? "
" 고모님댁에서 지내다가 대학에 들어간후론 혼자 지내요 ,
지금은 고모님댁도 형편이 안좋아서 ...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 네가 참 어렵겠구나 , 근데 첼로 전공인가보네 ? "
" 네에, "
"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너의 아버지 살아계실때 내가 너의 집을 자주 들락거릴때 아버지는
음악중에서도 첼로 음악을 무지 좋아하셨지. 아버지는 엄마때문에 방황도 했었지만
일상을 첼로처럼 살아갈려고 노력했지, 첼로현의 소리가 얼마나 근엄하고 장중하고
또 풍만허냐 ? , 아버지는 나한테 언제나 변치않는 우정을 갖고 풍성한 삶을 살자고하던
말이 생각난다. 너도 음악대학을 졸업하면 훌륭한 예술가가 되도록 노력하고 아버지
말씀처럼 후일엔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혼자라고 외로워 하지말고 잘 안되는 일이있으면 나와 상의해서 처리했으면좋겠다. "
" 네 , 아저씨 말씀대로 첼로처럼 살려고 노력할게요, 꼭 첼로처럼 살거에요 "
"그래, 고맙다 , 나도 도울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마 "
이야기를 들어본즉 날 찿아가보라는 것은 특별한 도움을 요청하기보단 친구 부인이
찿아가지못한 기천만원짜리 오디오를 찿아가지 못했으니 네가 필요하면 찿아쓰라는
것같은 직감이 들었다.
허나 유진이는 아버지 오디오에대해서 일언반구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알고서 말을 않는것인지 모르고 있는것인지는 가늠이 안섰으나 아버지 친구를 찿아가보라는
친구부인의 말을 새겨보면 찿아쓰라는것이 아닌가 ?
유진이가 오디오 얘기를 꺼냈다면 자초지종을 말해야하니 그렇게 곤혹스러울수가 없었을
것이나 얘기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그냥 있는다는것이 어른스럽지 못한거같이 느껴졌다.
형편이 안좋은 유진에게 무슨 도움을 주려고 여러모로 궁리해봤으나 가장 좋은거는 학업에
열중하라고 첼로를 사주기로 아내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후로 한달여가 흘렀지싶다.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을 먹으며 할얘기가 있으니 무슨일이 있어도 오라고했다.
아내와같이 평소알고지내는 악기점에 부탁하여 독일 수입 첼로를 사왔다
유진이가 앞으로 유능한 첼로연주자가 되려면 그래도 쓸만한 거로 사기로 했던것이다.
저녁식사후 유진에게 첼로를 건네주었다. 깜짝 놀라는 유진이었다.
"아저씨 , 이 좋은 첼로를 왜 저한테.. ? "
"아저씨가 너의 아버지 생전에 도움을 받은걸 생각하면 너한테 이 첼로를 선물로 준들
상쇄가 되겠느냐 ?, 너의 아버지는 생전에 쓰던 값비싼 오디오를 나한테 물려준적이
있었지 , 친형제도 아닌 친구에게 선뜻 내어주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
그러니 내가 너한테 이 첼로를 주어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질것같다,
아무 생각말고 기쁘게 받아 주길바란다."
" 아저씨 , 정말 이은혜는 ..., 열심히 공부해서 아저씨의 정성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첼로처럼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유진이는 나의 말을 듣고 수긍하는듯 기꺼이 첼로를 받아들고 돌아가려고했다.
" 유진아, 다음번 일요일엔 아버지 산소에 안 가보겠니 ? "
" 그래요 ? , 사실 제가 아저씨를 찿아뵌건 아버지 산소땜에 찿아온건데...... ?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가시기전에 아버지가 그리웁고 보구 싶으면 아저씨를 찿아가라고
저한테 주소를 주셨어요 "
고모도 있는데 왜 날 찿아가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을 해봤다.
전에 유진 엄마가 남편의 오디오를 돌려달라고해서 돌려주지 못한 자책감때문에
미완성의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유진이가 날 찿아온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음 일요일에 유진이를 만나 친구의 산소를 들러볼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 예술가는 죽어 묻히면 후대들은 그의 작품과 대화를 한다 " 란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