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했던 너리티 아지메들 어린아이 집단 성추행 사건?

by 조정래 posted Aug 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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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金構
글쓴이: 조정래


눈 내리던 겨울, 꽃피던 봄에도 동네 골목을 안 싸돌아다니던 봉구가 으아리 산 중허리에 뭉개구름이 뭉실뭉실 피는 무더운 칠월이 되자  어미 없이 자라는 봉구는   감물들인 낡은 삼베 옷 하나만 위에 걸치고 아랫도리는 바지도 없이 달린 고추를 통제로 달고는 황토 돌담 골목을 이리 후루룩 저리 후루룩 뛰어 다녔다.

마당에 아직도 작년 가을 벼농사를 타작조차 하지 못한 땅 부자 최영 감네 손자 두칠이
너리티 제일 긴 밭둑을 갖고 사는 양철영감 손자 도꾸뿔이
심베미 골  담배 농사짓는 소산영감네 무동이...

도토리처럼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그래도 아랫도리에  무명이나 까칠까칠한 삼베 팬티라도 입고 돌아 다녔지만  소작 농사를 근근이 지어 먹고 사는 쪼데기 영감 손자인 봉구 아랫도리는 궁핍하여 늘 벗고 다니는데 앞니마저 빠져서 희죽 희죽 웃을 때는 늘 침을 질질 흘리는  아이였다.

그런대 이제 겨우 4살인 봉구 아이 고추는 마을 아이들 고치 중에 가장 실했지만 고추 끝이 앞으로 꼬부라진 상태로 달려 있었다.
소문에 쪼데기 영감 아랫도리도 꼬부라졌다...말이 돌아서

“아랫도리 생긴 것도 맹엥 지 조부 닮았어..ㅎㅎ”

이런 우스개를 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5살 6살  아이들이 끝이 꼬부라진 고추를 달고 봉구가 골목에 나타나면

'얼랏꼬 덜랏꼬 봉구 고치는 꼬부랑 고치-다-아"

고함을 치면서 합창으로 놀리기도 하고, 고추 끝을 이리 저리 잡아당기기도 했지만

천성이 순한 봉구는 그런 동네 형아들 놀림에도 그냥 희죽이 웃으면서 뒷걸음을 치거나 옆으로 비실비실 피하기만 했지 꼬마 형들 놀림에 별 신경을 안 쓰는 아이였다.


오히려 통통한 쌍불 알 바로 위에 꼬부장한 고추를   통제로 내놓고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고 부터는 한마디로 아무나 잡아 당겨도 되는 소위 봉구 고추는 동네 고추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동네 할메들 아지매들이 골목에서 그런 봉구를 만나면

'아이고 봉구구나! 할메 봉구 고추한번 따 묵자-아!"

하시면, 봉구는 스스럼없이 자기 꼬부라진 고추 끄트머리 살깃을 잡아 당겨서는 고추를 따는 척하여 이웃 집  할메들  입술에 넣어주는 시늉을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동네 아낙들이 빨래를 하는 개울가에 가면

최영감 네 둘째 며느리
오영감네. 셋째 며느리
담배 농사로 골머리 고생하는 박 씨 영감 며느리..
예천 누에고추 공장에 다니다가 하룻밤 풋 사랑으로 아이를 배어서 이 산골로 들어 온
정식이 소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지만 하나같이 탱탱한 젖가슴을 달고 있는 동네 아지매들이 너도 나도 희죽거리는 봉구 녀석을 우물가에 세워 놓고는

'아이고 봉구 고치는 가물었나. 끄트메이가 꼬부라졌네!..어디 아지매 봉구 고치 한번 따 묵자-아"

하고 입을 내 밀면 침을 질질 흘리던 봉구 녀석은 희죽이 웃으면서 이 아지매도 따주고 저 아지매도 따 주고 작은 번데기 고추를 인심 좋게 막 따서 골골루 다 입에 넣어 주는 시늉을 했다.

허긴 봉구 엄마가 집을 나가고 봉구가 젖배 한창 굶고 있을 이 산골 마실에서 봉구에게 동양 젓 안 준 아지매가 없을 정도였으니 비록 봉구와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라할지라도 동네 아낙들은 자식처럼 정이든 봉구였다.

어미가 없으니 불쌍키도 하고 다른 아이들 보다 더 정을 준다는 것이 만만한 봉구 녀석 고추였다.

저만치 논 물 보던 양철 영감이 삽자루를 어께에 걸치고 한참을 그런 소란을 바라보다가는

"야 이놈아 고치 아무나 따 주지 마라. 너 지지 바로 태어났더라면 필히 동네 남정네 다 후리고도 남을  놈이구마! 엣끼 이놈아! 고치 쫌 아끼거라!"

하면서 봉구를 우스개로  놀렸다.

장마철이 지나고 햇빛이 폭염으로 바뀌면서 봉구 녀석의 고추는 따가운 탸양 빛을 받아서 윗도리에 걸친 감물들인 삼베 저고리 색깔과 비스무리 해져서 까무퇴퇴해져 갔다.그러자 이번에 동네 아지매들은

"아이고 봉구 고치는 왜 저래 까마지노!"
"이 햇빛 나절에 온통 벗고 다니니 새카만니더!"
"아이고 저래다가 나중에도 새카마마 색시 기겁하겠구나! 니 이래가 장기들겠나?..나무못타리따!"

이래저래 산골마실 여름은 쪼데기 영감 손자 이봉구 녀석 고추 이야기로 싱싱하게 무더운 여름철을 보내고 있었다.

무논 섶에 웅덩이에서 온통 흙물을 덮어쓰면서 멱을 감을 때는 그런 이봉구 녀석 고추에 거머리가 달라붙어서 큰 아이들이 봉구 꼬부라진 고추에 달린 거머리를 떼어주기도 하고 느티나무 그늘아래 마을에서 펼쳐 놓은 멍석위에서 봉구 녀석이 잠이 들면 동네 꼬마들이 봉구 꼬부라진 고추에 강아지풀로 살살 간질이기도 하면서 놀았다.

당체 산골 아이들이 갖고 놀 놀이 기구는 작년에 양철 영감 팔순 잔치에 돼지 잡았을 때 돼지 불알 통에 공기 반 물 반 넣어서 차고 다니는 돼지불알 공하나 밖에 없는 곳인지라 돼지 불알 공 아니면 봉구 불알을 갖고 장난치면서 늘  아이들은 깔깔 거렸다.

중 어른들은 그런 봉구를 보면

“아랫도리를 저래 드러내 놓고 키워야 불알이 후씨하기 실하다네!”
“삼베바지도 좋다카디더 공기도 잘 통하고 거친 삼베에 씨씬데이갖고 불알건강에 참 좋다카디더”

이런 우스개를 들어도 봉구는 아직 어린아이라서 이해도 못 할 뿐 ..다만 고추를 따서 달라하면 그것 하나만큼은 인심 좋게  아무나 따서 입에 넣어 주었다.

....................중략............................

동네 아지매들이 여름 내내  봉구아이 꼬부라진 고추를 하루에도 몇 번씩 따 먹었지만 봉구는 그런 아지매들은 단 한사람도 성폭행이나 성추행으로 읍소 지서에 고소하지 않았다.


어린 꼬맹이들이 느티나무 아래서나
물보라 튀는 개울가에서나 바지 없이 통고추 그대로

“내 고추 봐-아라!”

하면서 당당하게 내 놓고 돌아다니다가  누군가 동네 아지매가

"고추 한번 따묵-자!"

하시면 인사처럼 고추를 따서 여인네들 입에 넣어주던 그런 행복한 시절은 이제 이  조선 땅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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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지 想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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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0년 전만 하여도 우리 고향에는 나이 든 남자어르신들은 길을 나설 때 동자를 앞 세우고 나섰다.

낮선 동네에 지나갈 때 목이 말라도 선듯 그 동네 아낙들이 두레질 하는 우물가에 접근하여

'물 한잔 주시요"

그런 소리를 하면 돌상놈 소리를 듣던 시절이라 멀지감치 길가에 서서 앞세운 동자에게

"너 저기가서 물 한바가지 얻어 오너라.."



"물 심부름'

시키키기 위한 어린 아이  대동이였다.
혹여 물 한바가지로 정분이 싹터서 집안의 흉으로 남을까 사전에 조심했던 일종의 남정네 나들이 예법으로서 그만큼 우리 고장 사람은 남녀유별을  했다.

나도 초등6년 중등 3년 총 9년을 남녀공학을 다녔지만 9년동안 여식아이들 (일명 지지바들)하고 대화를 나눈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세대다.

소위 철처한 조면세대다.

그저 앞서거니 뒷 서거니 20여리 산길을 걸어가도 9년 동안 단 한마디도 아니했던 순수 아나로그 세대다.

더욱이 한 집에(집이 크면 아랫채 윗채 살았다) 살면서 여름날이면 거의 매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칼 국시를 삶아서 나누어 먹었지만 같은 또래 여자아이와는 단 한마디로 안했던 사이였는데 어느 지인의 부탁으로 결혼 주례를 하러 갔다가 그 옛날 한집에 살았던 현숙이를 만났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남녀 유별이 심했다.

그런대도  궁핍한 생활과 남아 선호사상이 바탕겠지만 남자 아린 아이들은 집 밖에서 놀 때도 아랫도리를 통체로 내놓고 돌아 다녔는데  그런 사내아이를 골목에서 만나면 어른들은 반갑게

어께걸이도 해주고
등걸이도 해주고
양귀를 잡고 올리기도 하고,
턱수염을 비비기도 하고,

"어디보자 간밤에 고양이가 고추 따먹었는지 아직 달려 있는지 보자-아"

하면서 아래도리 작은 고추를 만지기도 하였지만 전부 정이담긴 살가운 인사의 한 행태였지
그걸 성추행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대 이젠 그런 우리만이 오랜세월 간직했던 사람냄새나는 살가운 육체적 터치도  함부로 못하게 되는 세월이다.

길 가다가 아무리 어린아이가 귀여워도 머리조차 쓰다듬을 수가 없는  참으로 야박하고
오금절이는  세월이다.

작금에 이나라를 어지럽히는 성추행... 성폭행 문제....

아이들을 가르키는 선생이 제자를 성추행하는 기사 앞에선 서슴없이
촛불인지 뭔지하는 그런 모임하는 장소에 그런 자들 아랫도리를 내놓고
소여물 썰 때 사용하던 작두로 아랫도리를 단죄를 해야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실제 옛날에도 그런 자들은 성추행을 당한 여자 쪽 씨족 남자들이 몽두리를 들고 우르르 몰려가서 그런 자를 대추나무에 찬지꼬리로 묶어놓고 몰매를 치거나 멍석 말이를 하여 후들겨 시름시름 앓다가 서너달 후에 죽도록 했다.

우리 마을에도 실제로 그런 일로 맞아 죽은 사람이 있었다.

이제
어릴적 위에는 걸쳐도 아랫도리는 통체로 내놓고 다닌 세대들이 이제 늙어가는 세월이다.

골목 골목 참 귀엽기도한 물건을 달고 다니던 아이들....이젠 그런 아이들을 시골 토담 골목에서
마주 치기란 로또 당첨보다 더 어려운 시절이다.


2010 7월 초 성북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