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의 먹이사슬

by 김명기 posted Oct 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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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의 먹이사슬

내 주변엔 젊은 대학생들이 많다. 그건 내가 하는 일의 특성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지니지 못한 젊음, 또는 조금씩 내게서 빠져 나가는 젊음으로 인해 시나브로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다. 그러나 생활인인 내가 세상변화에 그저 무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무명 글쟁이라도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짐작해야 붓을 놀린다.

나는 요즘 연봉 오천이니 육천이니 때로는 1억이라는 소리의 홍수 속에 산다. 가끔은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고 싶은 헛소리의 향연이다. 생각해보라. 이제 갓 20살, 또는 졸업을 앞둔 25~26살의 애송이들에게 그런 덜떨어진 소리를 들으면 산전수전, 수중 전을 다 겪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반말로 이야기해야 할지 존댓말로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물론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이 세상의 극소수는 그런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세상에 걸음을 딛는 초짜들이라면 조금 더 현실적인 목표. 조금 더 겸손한 자세를 지니는 것이 옳지 않을까? 크고 원대한 목표를 가지는 것은 좋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목표, 현재의 자신과 먼 목표를 중얼 거린다면, 친구를 얻기 어렵다.

게다가 그 젊은 친구들에게 정확한 이야기를 해 주는 선배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늘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하거나, 자신이 그저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마구 떠드는 것이다.

응, 한 육천 되나?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이제 곧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그런 행운은 없다. 하지만 경험 없는 초짜들은 그런 허풍을 곧이곧대로 믿고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 역시 뒷길을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또 허풍을 친다. 물론 악의 어린 거짓말은 아니지만, 결국 허풍은 허풍이다. 그  어이없는 허풍의 먹이사슬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입이 삐뚤어진 미소를 짓게 된다.

좋은 대학 나온 것도 아닌데, 입사 2년차에 년봉 육천이래요.

나는 웃는다.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자신이 몇 개를 틀렸고, 자신의 석차는 어느 정도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 대개 오차범위 내에서 정확하다. 공부를 잘 못한 친구들은, 그저 감으로만 이번 시험 대박이야. 또는 망쳤다 정도로만 파악한다. 결과 또한 예상 밖(?) 으로 엉망인 것이다. 근데 왜 육천이지? 육천이 대세인가?

말도 안 되는 이런 헛소리는, 아마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젊은이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어쩌면 한두 명쯤 실제로 이룬 전설 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어림짐작에 그들은 신문도 시사 잡지도 보지 않을 것 같다. 2009년 1월부터는 시급 4,000원, 월 급여 88만원의 비정규직 근로자, 실업급여, 월가의 몰락과 세계적인 고용 불안. 내년은 세계적인 불황의 시작이라는 굵직한 활자만 보아도 멀쩡한 정신이라면 어떻게 그런 태연자약한 소망을 밝힐 수 있을까?

내가 숲에 서식하기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많은 젊은이들의 숲의 공기와 가슴 터놓고 속을 드러낼 곳을 찾아 왔다. 그들은 백만 원 또는 이백만 원 미만의 샐러리맨들이었으며, 일반적으로 건실한 직장인들이었다. 그들은 쥐꼬리 월급일망정 알뜰하게 생활을 하고, 적금을 붓고, 애인을 만나고 적당한 취미생활까지 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이 행성에서 특별히 하향평준화 된 사회인일까?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들이 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보통, 평범한 직장인이며 사회인들인 것이다.

가끔 진지하게 묻는 젊은이들이 있다.

정말 그런가요?
대개는 허풍이라고 봐야하겠지. 개인적인 소망일 수도 있겠고.
그렇군요.
문제는 연봉보다 더 중요한 것을 모르고 산다는 거야. 대기업에 취업을 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야. 학교 다닐 때보다, 10배는 더 공부해야 돼. 아냐 그보다 더 많이 해야 될 지도 모르지. 100명 입사해서 1명 이사되기 힘들어 안 그래? 나머지는 다 그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거지. 냉혹한 제로섬 게임이야.
그래요?
입사 한지 한 달이면 고비지. 내 적성과 내가 생각하던 자유로운 사회인과 직장문화 라는 것이 망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그리고 1 년, 3년 주기적으로 이런 회의가 다가오고 고민하게 되지. 대리에서 탈락 되었을 때. 과장에서 탈락 되었을 때. 특히 부장쯤 되면 이젠 오갈 데가 없는 신세나 비슷하거든. 애들은 부쩍부쩍 크지. 미래는 불투명하지. 이때 '장고' 라는 것을 하게 되지.
'장고'요?
응, 관련 중소기업으로 옮겨 갈까? 퇴직해서 개인 사업을 시작할까? 안전하게 김밥 집 체인이나 꼬치집이라도 할까? 깊이 고민하게 되는 시기지. 나는 그런 부장님들을 많이 보아왔지. 나는 처음부터 개인 사업을 했기 때문에, 내게 고민을 털어 놓고 의논하는 부장님들도 많이 계셨어. 아예 회사에서 사무실 문간으로 책상을 치워버리고 업무를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 아마 죽을 맛이었을거야.
그분은 정말 힘드셨겠네요.
더 큰 문제는 이사 진급을 앞 둔 때야. 학연에, 지연에, 혈연에. 또는 해외파. 대단한 실적을 가진 다른 이사 후보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지. 만약 여기서 미역국을 먹으면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자녀들과 시집장가들을 가야하는 자녀들은 어쩌지? 그리고 이사가 된다고 다 끝난 것도 아니야. 언제 목이 잘릴지도 모르고, 어떤 회사는 퇴직시키기 위해 이사로 진급  시키기도 한다더군. 일반 직원은 노조니 뭐니 퇴직시키기 어려우니까.
세상에...
그러니까,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제대로 된 고난의 인생을 위한 연습장에서 훈련을 한 거야. 결국 성실하고 끈기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 회사에 입사한다는 것은 본격적인 정글의 삶을 시작하게 된 거고.
네.
그런데 자신의 능력이나 비전, 세상 바뀌는 것에 대한 고려는 없이 년 봉이나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어 보일까? 그건 어른이라는 혜택 때문에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시각이지. 그건 나뿐만 아니라, 바로 너희의 직장상사도 가지고 있어. 그들의 눈에 과연 되바라진 허풍이나 떠는 초짜들이 어떻게 비칠까?
...
그러니 그런 헛소리들은 집어 치우고, 네 인생에 집중해. 돈이나, 차, 집 등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생기고 사라질 수 있어. 하지만 본인에게 투자한 것, 본인의 속에 차곡차곡 쌓은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지. 젊은 시절이라는 것은 돈을 벌 시기가 아니야. 자신에게 이것저것 기준을 만들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시기라고.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이상한 소리에 솔깃해가지고.

잠깐, 여기서 공부 못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학교성적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와 바탕이 부족하다는 뜻이라는 것 알지? 우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존재야. 당장 오늘 죽어도 우리 신위에는 현 고학생부군신위(顯 考學生府君神位) 라고 적히잖아? 공짜 인생이 어디 있니? 저절로 이루어지는 성공이 어디 있고. 만약 있다해도 그건 일시적인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반드시 삶의 마이너스 요인이야.

맞아, 무너지지 않는 것은 언제나 공든 탑이지.


고성(古城) 아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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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대학교를 졸업한 직장인의 평균 연봉은 약 2350만 원 정도(뉴시스)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가 28일 올해 신규 등록된 정규직 대졸 직장인 이력서 1만8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가장 최근에 입사한 1년차 직장인들의 연봉은 평균 2347만 원으로 집계

이어 2년차는 ‘2583만 원’, 3년차 ‘2854만 원’, 4년차 ‘3062만 원’으로 4년차가 되면서 3000만 원을 넘어섰다. 또 5년차가 될 경우 평균연봉은 ‘3247만 원’, 6년차는 ‘3494만 원’, 7년차 ‘3725만 원’, 8년차 ‘4045만 원’으로 직장경력 8년 정도이면 연봉이 4000만 원 선에 도달했다.

이 밖에도 14년차가 되면서 5000만 원 대에 진입

직급별로 평균연봉을 살펴보면 사원급이 2491만 원, 계장급은 2948만 원, 대리급 3304만 원, 과장급 3972만 원, 차장급 4677만 원, 부장급 5194만 원으로 각각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