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 으쩌랴 ! 어찌 우리 오됴를

by 김한봉 posted Aug 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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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릿 글

오디오란 무엇인가? 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처음 이 글을 접하신 독자에게 올바른 참고가 되길 바란다.
사실, 오디오라는 게 그저 단순히 소리 저장하고 저장된 소리 재생하는 기기 아닌가? 하는 순기능적인 답만을 얘기하자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소리라는 게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의문을 가지고 깊이 빠지게 마련인 것이기에 필자가 경험한 사항을 위주로 썼다.
그래서 이 글은 기술서도 아니요, 전문 서적은 더더욱 아니다.
기기의 설명에 필수적으로 언급되어져야하는 공학적인 데이터는 인용을 하겠지만 별 의미 없이 내용 전달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만 인용 하겠다.  
이 글은 오디오 애호가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디오 입문자나 기기마다의 기본적인 기능을 알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기기 사용법에 대한 하나의 방향제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디 바라건 데, 다음에 기술한 내용을 가지고 공학적이나 기술적인 문제를 들어 의문을 제기한다면 필자가 못 받아 줄 것도 없지만 그것이 본인이나 본인과 같은 기호의 다른 애호가의 바람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일이란 점을 미리 밝혀 둔다.
왜냐하면 다음에 기술한 사항들은 그저 소리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기 사용에 있어 단순한 바람을 만족키 위한 하나의 시도일 뿐이라서 굳이 원칙을 따지며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기 구입 가격이 고가이던 저가이던 소유하게 된 기기의 소리를 그저 기계적인 한계에 의존해 듣고 있을 필자를 포함한 많은 분들의 고충이나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오디오의 양면성

자연의 모든 물질들은 그것이 지닌 의미 내지는 효용가치를 지녔다.
그러기에 어느 한 가지라도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저마다 양면성을 지니고 존재하고 있다.
물은 생명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인 동시에 너무 많은 물이 공기 중에 머물다가 비가 되어 엄청난 양이 내렸을 시엔 인명과 재산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이렇듯 자연에는 모든 일이 상대적인 개념으로 존재한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개발한 오디오를 두고 거창하게 자연 운운하며 얘기하기가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으니 그냥 자연의 일부라고 하자.
오디오에도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용을 전제로 할 때를 기준해서 이며 이에 대해 무엇보다 다음 얘기를 꼭 하고 싶다.
오디오라는 기기의 가격이 다른 취미생활을 하는 기기 중에서 고가의 품목인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이 기기의 소유를 갖고 마치 자신의 위상에 대한 과시나 부의 상징같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시절이 변해 이러한 물질적인 것들이 본인의 사회적 징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이다.
오디오가 영원한 물질적인 징표가 될 수 없는 것은 이 기기가 소모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기기를 가지고 자신의 위상에 대한 보상심리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우매한 일인 것인가는 자명하다.
또한 자신이 듣는 음악의 종류를 가지고 남과 비교해서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내가 클래식만 듣는다고 해서 나의 음악적 소양이나 취미가 우아하다고만 얘기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대중음악만을 즐긴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취향대로 즐기는 것이고 어느 것이 어떻다는 평가나 어느 것 하나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폭 넓은 시선으로 다양한 음악들을 열린 마음으로 즐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기 선택에 있어서도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는 만큼 개인의 취향대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여러 기기를 다루기를 바란다.  
속설에 의한 섣부른 판단으로 기기를 평가하거나 폄하하는 일은 삼가기를 바란다.
고가의 기기가 성능 면에서 반드시 만족을 준다는 보장은 없으며 외관이 멋지다고 소리가 좋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양면성을 볼 때, 기기선택에 있어서 좋은 기기의 기준을 가격만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 것이다.
오디오라는 게 소리 듣는 기계이다 보니 좋은 소리가 재생되던 좋지 않은 소리가 재생되던 소리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볼 때 주변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은 오디오 청취에 필수적인 일이다.
이처럼 기기가 지닌 성격이 정적인 물건임에도 선택에 상당한 고려가 수반된다.
또한, 자신의 경제적 사정이나 주변 여건을 전혀 고려치 않고 단순히 자신만의 기호 만족을 위해 기기 선택에 독단적인 결정을 한다면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인 동시에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됨은 의심에 여지가 없다.
고가에 구입한 기기가 자신은 만족할지 모르나 기기에서 나오는 천상의 소리가 위에 전술한 것같이 주변에 해를 준다고 할 때, 그 소리는 더 이상 음악적인 가치를 잃은 소리이며 한낱 시끄러운 소음이 됨을 유의해야 한다.
요즘에는 심리 치료의 일환으로 음악이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것이 한낱 의미 없이 울리는 소음과 비교할 때 가치 비교를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제대로 재생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며 기기의 사용도 조심스럽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사실 기기에 대한 물질적인 욕심보다는 개인적으로 소리 자체에 관심을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도 많은 이들이 사용하다보니 여러 용도로 활용 되겠지만 소리 듣자는 기계를 갖고 많은 욕심을 내는가 보다.  
그 틈새를 노려 많은 이득을 챙기는 무리도 있고 처음부터 사기성을 가지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무리도 있다.
무슨 일 에나 극단으로 치닫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자작에 너무 많은 정열을 쏟아 나름 삶의 한 방편으로의 길을 찾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음도 여럿 봐 왔다.
개 중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고 실망스런 경우도 있었다.
오디오라는 기계를 매개로 취미가 있는 게 아니고 누군가 만든 그 기계를 단지 즐기는 한 방편으로 우리는 즐거이 쓸 뿐이다.
그 즐긴다는 것이 큰 가치를 지닐 수도 있고 나름 엄청난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행위가 너무나도 좋아서 찬양할지라도 기계에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니니 영혼이 있는 우리는 적어도 기계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을 들먹인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나 한낱 기계에 불과한 물건에 너무 깊은 애정공세를 펴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있어 왔기에 하는 말이다.

기성기기 에 대하여

처음 진공관이 발명되고 에디슨과 그 외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오디오는 사용 장소나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여러 용도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필자도 70년대 초에 친척의 도움으로 당시로는 국내 메이저급 오디오 메이커인 천일사의 ALL-IN-ONE 형 리시버를 사용했었다.
이 기기 덕분에 같은 시기 들었던 영화 음악 LP를 그야말로 판에 구멍이 나도록 반복해서 들었었다.
그 이후로 후발 주자로 설립된 몇 몇 오디오 업체가 기능이 더욱 향상된 기기를 내놓을 때 마다 새로운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그 시절엔 몰랐던 게 하나 있었다.
여러 회사의 기기를 접하다 기기마다 소리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기마다 소리가 다르다는 점을 알고 나서부터 소리에 대한 궁금증이 더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호기심은 단순한 궁금증이었지 현재와 같은 중독된 상태의 갈증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많은 애호가들이나 이 업계에 종사하는 소위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70년대 초에 이미 오디오의 기술은 정점을 찍었다고 한다.
스피커의 기술도 그 당시의 기술과 현재의 기술이 소재나 여타 물리적인 차이는 있더라도 근본적인 기술의 차이는 미미하다고 한다.
그 사항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견해에 비춰, 기기마다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논하는 것은 각자의 판단일 뿐이고, 또한 그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그저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아니면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지, 그것이 현재 기기를 애용하고 있는 애호가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열쇠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다른 각각의 수많은 개성들을 어찌 획일화 된 숫자 몇 개로 표시할 수 있단 말인가!
플레이어도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을 성능의 기기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레이져의 활용으로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면서 아날로그 기기의 종말을 고했고, 이제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블루레이 기기도 나왔다.
그렇다면 연일 새롭게 개발되는 이 모든 기기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어리석은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해답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러한 기기 모두가 소비자의 갈증 해소를 위해서 라는 점이다.
그 갈증이란 모든 소비자가 원하는 좀 더 나은 소리의 감상이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말이다.
여기서 오디오를 통한 음악 감상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자.
여러 경우가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가 생각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단순히 듣는데 만족하는 경우다.
이 경우의 소비자는 제품 그 자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경우의 소비자는 아무 생각 없이 기기를 구매할 것이고, 그 기기의 기능에 만족한다면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자가 생각하는 기능이란 그저 쉽게 켜고 끄고 듣고 싶은 소리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면 그만인 게다.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이다.
이런 바람이야말로 그 의미가 단순한 것이기는 해도 개발자나 판매자의 입장에선 너무나 어렵고 간단치 않다는 것을 필자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에 한편 무섭게 생각되기 도 한다.
그런 단순함을 찾는 기호 속에 무한의 세계가 함축 되어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떤 개발품을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시장의 형편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 많은 문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쉽게 사용하고픈 단순한 바람이고 결과인데 말이다.
대다수의 소비자가 원하는 단순한 기능인데도 그런 바램하나 만족시키지 못하는 물건을 상품이랍시고 시장에 내놓고 판매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특히 우리나라 국민같이 성질 급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그냥 순순히 적응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 방면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은 이 같은 소비자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바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바람은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어느 누가 비싼 비용을 치르고 구입한 오디오를 골 아프게 사용하려고 하겠는가 말이다.
누구나 쉽고 편하게 사용되게끔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기성 기기들을 보면 몇 몇의 기기는 그 기능이 너무나 복잡하고 도대체 그 많은 기능들을 설계했거나 판매하는 그들은 모두 알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필요 없는 기능을 굳이 첨가해 마치 첨단 기술의 산물인 양, 소비자를 현혹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소비자가 단순하게 사용하기를 원할 것이고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나 매니아 계층의 수요는 혹시 다른 전문화된 기능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사용에는 별 문제가 없어야 할 것이고 당연히 기능도 좋아야 한다.
대부분의 매출을 좌우하는 일반 소비층의 욕구만족은 판매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이 소비층을 무시하고서는 상품자체의 가치보다는 시장에서의 존립자체가 어렵다고 본다.
상품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데 어느 누가 구입을 할 것이며, 매출 발생 안 되는 물건을 매장에 전시해 놓는 업주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위한 프로용 기기나 일반 소비자를 위한 단순 기능의 제품은 질적으로 태생부터가 다르다.
그러나 요즘의 기기들을 보면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엉뚱하게 이용하는 것 같다.
내용물은 같은 데 외부 모양만 달리해서 신제품으로 둔갑시키는 경우, 다른 회사의 제품을 외부 모양만 도용해 판매하는 경우 등 소비자의 신뢰를 망각한 행위로 인하여 심각한 불신을 자초했다.
이같이 기술 발전을 기대키 어려운 상황을 자초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 되는 가를 몇 몇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봐 왔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다고 하여 현재에 안주한 제품만으로 시장을 끌고 간다면 새로움을 갈망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역행하는 경우가 된다.
결론적으로 소비자의 요구에 앞서는 새로운 기술개발과 유행에 편승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한 제품 개발은 기업의 필수적인 과제인 것이다.
소비자를 상대로 판매를 하는 기업이라면 이 두 가지를 함께 병행해 나가면서 기업을 경영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다른 종류의 취미 생활도 그렇지만 특히 오디오 청취는 오감 중 가장 민감한 청각을 자극하는 고로,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문제는 이 중독성이 끝도 없이 소비자를 자극한다는데 있다.
기기마다 소리의 차이가 있음을 매개로 장사하는 분들의 권유로, 주변의 권유로, 자신의 자발적인 구매욕구로 끊임없이 기기를 교체해 간다.
이렇게 만족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취미로 얘기되지만 취미로 하기에는 너무 많은 물적 인적 손실이 크다.
그것을 감당할 만큼의 역량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필자가 바라는 마음은 아무리 자신이 좋아서 즐기는 취미라도 어느 정도의 선을 긋고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기마다의 특성으로 인한 소리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음원에 있는 소리가 다른 소리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음원에 없던 소리가 새롭게 믹싱을 해서 넣지 않는 이상 재생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기마다의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기호에 맞는 소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호에 대한 연구나 노력도 없이 그저 남의 얘기만을 듣고 따른다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
대부분의 애호가들이 ‘...카더라’하는 밑도 끝도 없는 근거도 애매한 이 말에 포로가 된 듯하다.
심지어 어느 앰프가 클래식에 좋고 어느 스피커가 팝송에 좋다는 둥, 무엇에 근거 한 것인지 참으로 기가 찰 소리다.
사람마다 감성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데 무엇을 기준으로 그 같은 설정을 통한 결론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과학에 근거한 데이터도 실제 응용에 있어서는 더욱 철저한 검증이 요구되는 것을 정녕 무시한 것은 아닌지...
모양이 예쁘다거나 디자인이 잘 되었다손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매출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소비자의 기호가 까다롭고 다양한 것이다.
두 번째는 겉모습에 만족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소비층은 특이하게 가격도 중요시한다.
우선 문의하는 제품의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거나 일반 소비자는 상상도 못하는 가격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경우이다.
가격에 다소 거품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품위를 생각해서 절대로 깍으려 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한 술 더 떠 고가의 다른 상품을 찾는다.  
마치 오디오가 하나의 징표처럼 자신을 결정 지워 주는 것이라도 되는 양, 부의 상징물로 여기는 것 같다.
고가의 오디오가 과연 그러한 가치를 지녔는지는 각자가 판단, 해석할 일이지만 이 점은 잘못 되었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급스런 인테리어에 어울리게 값비싼 기기를 들여 놓기는 했으나 일 년에 한 번 틀까말까 한다면 이 경우를 무어라 표현해야 마땅한 것인지...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돈 갖고 이런 곳에 좀 썼다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심각히 고려할 일이다.
제품의 가격이야 경제 논리로 합당하게 정해지겠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사용빈도나 전문성을 지녀야만 하는 기기나
프로급의 사용자들이나 필요로 하는 전문 기기를 사용법도 제대로 모르는 일반 사용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마구 구매해서 집안에 장식해 놓는 일은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판매자도 소비자의 무조건적인 요구에 한 번쯤은 재고의 여지를 조언할 수 있는 넉넉한 여유도 요구된다.  
그래야만 건전한 사회 기풍을 위해서도 좋고 판매자와 소비자간 신뢰도 생겨 기기 선택에 있어 마음 놓고 상담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곳곳에 있는 전문 샾의 종사자가 그저 매출을 높이기 위한 구매를 반 강제적으로 유도한다면 그것도 비극이다.
‘난 잘 모르겠는데, 그저 이 기기가 좋다는 주인장 말 만 믿고 샀어... ’
사람들은 구매한 기기가 맘에 들지 않을 때, 이 같이 구매의 책임을 판매자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판매자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찌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판매자의 능수능란한 말솜씨에 한 번쯤 넋이 나가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간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거래가 가져온 결과가 이처럼 불쾌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고가의 오디오일수록 구매에 더욱 신경이 쓰이겠지만, 한 달에 어쩌다 하나정도 팔아도 샾이 운영된다면 도대체 그 기기의 마진은 얼마나 되길래...
제품 가격이 워낙에 고가라서 셈이 잘 안될 정도의 기기를 어떻게 판매하는 사람 말만 믿고 사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상거래 상의 기본 마진을 무시한 일방적인 가격 할인 요구도 판매자 입장에서는 수용키 어려운 고객의 요구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염려하는 문제는, 모든 청취자가 그 기기들을 감상을 목적으로 사용하는데 정작, 감상을 목적으로 쓰이는 기기의 성능이 다소 맘에 안 들거나 사용 방법이 미숙하거나 한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요, 주변이나 본인에게 상당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소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 탓을 온갖 방법으로 해소하려 들 것이고, 또한 갖은 불평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오디오의 맘에 들지 않는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불평으로 주변에 폐를 끼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음의 몇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보자.


기기의 성능에 대하여

오디오의 소리를 설계하는 이들의 청취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전문가의 다듬어진 질 좋은 감각이라고 일단 정의 하자.
그리고 그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소리가 정말 정확한 소리라고 하자.
그래서 그 기기가 매장에 세트로 전시되어 있다가 구매 능력이 되는 소비자에게 팔렸다고 하자.
그 기기를 구매한 이가 어느 정도의 청취능력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기준은 존재할 거다.
그 기준이 없이 그저 장식용으로만 구매한 이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소리를 감상하며 즐겁게 청취키 위해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 일게다.
그렇다면 이들을 만족하게 할 오디오의 성능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 답은 한 가지 뿐이다.
다름 아닌, 해당 기기를 설계한 기술자의 청취수준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모든 기기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단연코 기기 회로 설계자의 청취 능력에 따른 수준으로 제작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청감 능력 이상의 성능을 발휘하는 기기가 있다면 그것은 부가가치일 것이며, 우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설계자나 기타 제작에 관여하는 스텝들은, 무엇보다 청취능력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가질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공정마다의 크로스 체크를 통해서 가장 완벽하고 흠 없는 기기의 제작을 기대해 본다.
기계적인 수치와 공학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완벽한 기기라 할지라도 사용자의 사용법에 따른 효용성은 제각각일 것이다.
출고 전 엄격한 성능 시험을 거친 제품일지라도, 정작 소비자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기기의 특성으로 말미암은 기기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평균적인 수준을 지녀야 하는 상품의 경제적 가치 때문이니 여기서 왈가불가한다 해도 소용없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용자의 사용 능력에 따라 들려지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복잡하다고 포기한다면 얻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고가의 장비를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들을 수 있도록 각각 맞추어 제작해 놓고, 사용할 수도 없질 않은가!
흐린 날만 듣는 기기, 맑은 날만 듣는 기기, 우중충한 기분일 때 듣는 기기...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상황에 따른 설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기기 하나로 청취자의 상황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성능에 대한 한계를 얘기하고 싶다.
사용자를 위한 오디오라면 청취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마음 내키는 대로 조정이 가능하여야 한다.
자신감에 찬 설계로 이뤄진 완벽한 성능의 기기를 평가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소리 들려주는 기기라면, 듣고자하는 이들의 소망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조절은 가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청취하고자 할 당시의 기분에 맞게 조절되어야만 하며, 그 조절이 비록 기기의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 할지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라면 가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청취자가 듣고자 하는 소리가, 다소 과장되었다거나 찌그러진 파형의 소리라 할지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건, 바로 그 소리라는 것이다.
기술자나 기타 제작에 관여한 엔지니어가 기술적 한계를 들먹이며 청취자의 이러한 욕구를 무시한다고 하면, 그 같은 비극은 또 없을 것이다.
소리라는 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든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한계를 초월한 더욱 강렬한 소리를...
그것을 그저 기기의 한계에 맞춰 들으라고만 한다면, 그 같은 비극은 어떻게 치유한단 말인가!
원하는 소리가 나질 않으니 들으려고 하지 말며, 듣고자하는 욕망도 기술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니 갖지 말라고 할 것인가!
생각할수록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필자도 이러한 기기의 한계에 부딪혀 얼마나 가슴 답답해했는지 모르며, 그 같은 일에 얼마나 서러워했는지 모른다.
듣고 싶은데, 들을 수 없는 것같이 서러운 게, 또 있을까?

그래서 필자는 다음의 방법을 자신 있게 추천하며, 행여 한 점의 의혹이나 궁금한 점은 기탄없이 문의하기 바란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오디오는 그저 소리를 저장하고, 저장된 것을 재생을 통하여 듣기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것을.
단지 그러한 단순한 기능을, 화려한 언어의 구사를 통해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듣고 즐기는 행위가, 그저 귀로만 듣는 것 이외에 보는 즐거움도 포함하고 있는 것에는 필자도 동감한다.
그러나 외관 감상에 너무 치우치면, 소리 듣자는 당초의 취지는 온데 간 데 없고 낭비만이 남는 것이, 오디오의 세계다.
많은 분들이 소리 탐닉에 관여하면서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전문가 뺨치는 전기 지식과 전자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지식이 더 좋은 소리를 듣고 만드는데 도움을 줄지언정, 필수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지 않아도 될 전설적인 얘기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이미 은연중에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냥 무시하길 바란다.
오디오에 관한 개개의 경험으로 인한 여러 이야기는, 단지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우왕좌왕 할  필요 없다.
다만, 기기가 정확한 성능을 발휘하도록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는, 간단한 기술 정도는 습득할 필요는 있다.
그저 볼륨 올리고 내리는 정도의 지식만 습득하면 된다는 식의 안이함은, 지양하고 싶다.
자신이 지닌 기기의 종류와 성능에 대해 정확히 알고 사용한다면, 즐거움이 배가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오디오는 나름 정밀성도 지녔고 과학적이며, 무엇보다 기기 간 성능이 상충되어야하는 측면도 일부 존재하기에, 기기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무작정 좋은 소리를 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그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그 때마다 만족하게 얻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디오라는 것이 여러 하드웨어로 조합되어야 하는 까닭에, 논란의 여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한 여러 부품 중, 하나만 바꿔도 소리의 질이 너무도 달라지니 말이다.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 구나’라고 하는 말을 할 때쯤은, 너무 많은 수업료를 지불한 상태라는 것을...
이점은 필자도 충분히 공감한다.
들어보지 않고는, 써 보지 않고는 모르니까 말이다.
참으로 애석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여기서 판매자의 일방적인 상술에 대해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도가 지나친 전설로 소비자를 우왕좌왕하게 하니,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 같은 전설이 정설로 굳어진 현실이 더욱 안타까운 점이며, 이제는 아주 교과서가 된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되며, 이것은 어느 것이 최고이고, 그것은 어느 것이 최고라는...
재료의 질에 따라 성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전부인양 여겨지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능의 차이라는 것도 필자는 인정은 하되, 그 차이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차이가 났다면 다시, 차이를 없애던지 아니면 간격을 좁히면 되는 거 아닌가?

청취 능력에 관하여

오디오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청취 능력은 논란의 여지가 가장 많으며, 또한 규정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각각의 개성이 따로 있어, 특히 소리 듣는 분들은 다른 취미 모임이나 동호회와는 좀 달라서, 특이하기까지 하다.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소리에도 유행이 있다.
유행만 있는 게 아니고, 파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함부로 접근이 되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 놓은 분들도 봤다.
이런 분들을 어쩌다 만나면,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지만, 초보시절엔 필자도 어지간히 주눅이 들었었다.
하도 비싼 기기들이 너무도 많이 널려있기에, 그저 눈요기만으로도 즐거운 세상이 되었다.
오디오를 가까이 하는 취미를 가진 동호인들 중에, 그저 여러 부류가 있으려니 하라는 당부이다.
그것을 따라하는 것도 본인의 의지이고, 따라하지 않는 것도 본인의 의지이니 말이다.
단지, 좋은 소리를 듣고자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먼저, 자신만의 소리를 찾으라고 말이다.

이 점은 좋은 기기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으로 가장 먼저 이뤄져야할 사항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 부분이 대부분 도외시 되어왔다.
왜 일까?
너무도 한심스런 일이지만 각종 근거 없이 떠도는 전설과 억측에 가까운 주장들 때문이다.
‘...카더라’통신의 폐해가 오디오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우리 곁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주변의 모든 일 들이 그 같은 상황에 젖어 있으니 어쩔 수없이 흡수 된다지만 비용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다.

우선 다른 이 들이나 먼저 경험한 선배들에게서 사전 지식을 습득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잘못 걸려 과시욕에 젖은 분들이나 소위 말하는 장사꾼의 덫에 엮이는 경우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오디오에 관한 이론적인 체계도 없지만 다양한 어떤 책자에도 이런 사항은 없으니 당하는 수밖에 없다.
먼 훗날 어느 정도 눈을 뜨고 난 다음에야 알게 될 사항이라 그 때가서 가슴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이 없으니 속이 터져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이 같은 경우를 비껴갔거나 운 좋게도 출중한 능력으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스스로 깨닫거나, 여러 운 좋은 경우를 거쳐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지난 경험에 대한 회한이 다른 어떤 취미보다도 감회가 더하리라 여겨진다.
이때쯤 나오는 얘기들이 아주 재밌다.
‘집 몇 채를 날렸네, 음반이 수 만장 있네, 집 사람과 그 것 때문에 어쨌네 ’하는 등의 얘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되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사실이 아닌 일종의 허풍에 가까운 얘기들이지만 실제로 인 경우도 있다.
실제로인 경우 얼마나 그 상처가 클 것이며 그에 대해 어느 곳에서도 보상 받거나 해 주는 곳이 없다.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 금액이 만만치 않게 날라 갔고 무엇보다 속았다고 느낀 마음의 상처가 문제다.
천천히 몸소 단계를 거치며 알아가야 하는 것들을 대부분의 잘못 인식되어진 속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보니 그런 결과가 오는 것이다.
시간과 돈이 어느 정도 되는 분들이라면 여유를 갖고 즐길 수 있지만 모든 이들이 전부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속이 터지는 경우를 피할 수 없다.
소비자가 속이 터질수록 터진 만큼 누군가는 금전적인 이득을 취했으리라 본다.
모든 사항이 금전과 연결되어있고 간혹 양심적인 업자나 마음씨 고운 동호인을 만나면 감사의 마음을 느낄 수도 없이 순간에 지나치니 이 또한 속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지면을 통해 득음을 위해 필자가 지난날 행한 악행(?)을 일부 적어 보고자 한다.
똑같이 해 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비용 면에서 많은 절약을 할 수 있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먼저 주변의 동호인을 적극 찾아다닌다.

온갖 능력(?)을 다 동원해서 될수록 부자라고 일컬어지는 분들을 찾아다닌다.
사실 그런 분들일 수록 바쁘고 시간이 잘 나질 않는다.
그러니까 부자가 됐겠지만 부자가 되려고 사사를 받으려는 게 아니니까, 상대를 긴장시키지 않는 만남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다만 그 분들의 시간이나 스케쥴이 어떨지가 문제라면 문제다.
그러나 그것도 의외로 쉽게 해결될 여지가 많다.
왜냐하면 고수의 경지에 오르고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 분들은 은근한 자기과시욕도 일부 있고, 지금까지 이룬 역정의 과정을 전수(?) 하고픈 마음도 일부 가지게 마련이라 만남 자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만나는 순간부터 자신은 긴장을 하기 바란다.
어렵게 만나는 자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대의 말 한 마디 손 짓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수업의 연장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만남에 임 한다.
찾아 갈 때는 빈 손 보다는 상대를 배려한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답례품을 준비한다.
이 점 꼭 명심하고 배운다는 자세로 나이나 학벌 기타 모든 것을 잊고 대화 순서를 상대에게 양보한다.
배우러 간 입장에서 상대에게 불쾌감을 안길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온다는 입장에서 최대한 묻고 상대의 지나온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라.

상대와의 만남에서 자신을 홀대한다는 느낌이나 무시한다는 느낌이 다소 들더라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쁜 일정을 자신에게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시간을 허비하는 마음을 헤아리라는 거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일깨워 주는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이 점을 순간 잊고 상대가 편안하게 해 준다고 해서 속된말로 맞서려고 한다거나 후배 삼으려고 하는 행위는 상대로 하여금 불쾌감을 갖게 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도 별 소득이 없다는 것을 주지한다.
음악을 매개로 한 만남이다 보니 대부분의 동호인들이 젊잖다.
특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다보니 대화의 소재도 다양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만남의 이유를 잊을 때가 많다.
상대가 방문한 자신에게 호감을 느껴 다행히도 여러 번의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지만 조신하게 처신하기 바란다.

다음으로, 방문 목적을 확실히 하고 자신의 시간을 할애한 만큼 긴장의 끈을 조여 의문을 해소하는데 집중한다.

되도록 이야기의 소재를 오디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상대야 편안한 입장에서 만나는 자리이니 어떤 이야기를 해도 부담이 없으나 자칫 방문 목적과 상관없는 소재를 이야기하다 실수를 한다거나 자신의 무식이 들어날 경우, 정작 얻으려는 것을 획득치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상대의 기기나 기타 모든 것을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한다.
특히 상대의 기기에 대한 평가나 기타 풍문에 의한 속설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방문한 곳의 현재의 기기나 소리에 만족하기까지의 이유나 과정을 주의 깊게 듣고 참고사항으로 삼는다.
그리고 방문 시에는 평소 자주 듣던 음반이나 잘 아는 음원을 가지고 간다.
이것은 소리 비교를 위함이니 재생되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잘 기억하고 다른 곳에서 들었던 것과 비교해 본다.
이렇게 몇 개의 기기를 접하다 보면 그 기기들의 경험이 쌓이고 기기 사용자들의 사용후기가 많은 시행착오를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기까지 많은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지만 나만의 소리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의 소리의 실체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찾는 작업이 정석인 것도 아니니 굳이 이 방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기호를 파악함과 동시에 좋은 소리의 기준에 대한 한계를 조금이나마 숙지한 상태에서 기기 조합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렇게 하면 좀 더 효과적일 수 있고 좋은 기기를 찾아 헤매는 일도 줄일 수 있으며 좋다는 소리 찾아 이리저리 방황함도 덜할 수 있다.  
청취 능력 배양에 대한 노력의 결과가 잘못될 수도 있으나 여러 경우를 접하면서 듣다보면 자신만의 기준도 생기고 아울러 자신의 소리 기호를 좀 더 명확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자신만의 기준이 형성되어야만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기기를 선택할 수 있으며 기기의 성능에 따라 선택하게 되니 쓸데없는 속설에 휘둘리지 않아 필요 없는 낭비를 줄일 수도 있어서 좋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의 기기 구입은 종종 구매자 자신에게 많은 문제를 안기고 상처를 남기게 된다.
기기 구입 시 신중할 필요도 있으나 단지 신중하고 조심한다고 해서 좋은 기기를 구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기기라 할지라도 그것은 객관적으로 평가 되어진 철저한 남의 의견일 뿐이지 내가 찾던 소리나 나만의 기준으로 찾던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으로 그 기기가 내 기준에 맞았다면 그 같은 행운도 쉽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경제적인 여력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여러 기기를 바꿔가며 셋팅 해 볼 수도 있다.
세상의 여러 기기들을 모두 섭렵해 본 다는 게 얼마나 감격스런 일일까 마는 그렇게 해 볼 수도 없지만 굳이 자신의 소리를 찾는데 그 같은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쉬운 방법을 개인마다 합당한 생각으로 찾으면 된다.
위에 제시한 방법이 다소 구차하다고 느껴진다면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기 바란다.

기기의 효능에 대하여

오디오 기기들을 구매한 이들이,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는 당연히 소비자의 몫이다.
매장에서의 소리가 좋아서, 아니면 소리보다는 모양이 좋아서, 혹은 과시용으로...
구매의 효용가치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소리만 예를 들자,
분명히 매장에서 들었을 때는, 이 소리가 아니었는데...?
이런 의문, 샾에서 오디오를 구매한 분들이라면, 한 번쯤 가졌을 게다.
그러나 이 같은 의문이나 단순 변심을 이유로 환불을 한다는 것은 모험이며, 우리의 실정에서는 불가능하다.
환불은 차치하고라도, 문제는 이 같은 의문이 많은 곤란한 상황을 야기 하냐는 것에 있다.
소비자는, 처음 구매 시 매장에서 청취했던 소리에 대한 재연을 당연시 하며, 그 점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요구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대부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다른 소리를 듣게 된다.
매장에서의 감미롭고 환상적이던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를...
참으로 불행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소비자가 구매 시 매장에서 청취했던 소리에 대한 재연을 무심코 요구한 그 때부터,
자의든 타의든 판매자에게 요구한 그 소리가 아닌, 듣지 않아도 될 아니, 안 들어야 될 소리를 구매자는 듣기 시작한다.
판매자의 여러 핑계에서부터 온갖 핀잔과 협박과 더불어 여러 경우의 농락까지 당한다.
이때부터 항간에 떠도는 소위, 오디오의 전설이 된 얘기들이 판매자에서 구매자로 자연스레 전수된다.  
소비자가 청취했던 소리의 재연 요구에 대해, 여러 전제 조건이 만족해야 된다는 말을, 이때서야 판매자로부터 듣는다.
이 얼마나 황당한 경우인가!
물론, 처음부터 이런 경우에 안 부딪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런 경우는 천재일우의 상황이니 지금은 예외로 하자.  
이후로, 그 기기는 주인과의 관계 설정에 획기적인 전기를 맞지 않고서는, 주인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어야 한다.
그렇게 몇 년 지나면, 주인의 기억이나 시야에서 사라지기 마련이고, 기기와의 관계가 불쾌감과 아울러 불신감만 조장된 꼴이다.            
비싼 금액 지불하고 어렵게 마련한 공간에 제일 중요한 위치만 차지하고 있다가 버려진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이냐는 거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그 기기의 소리를 듣고 구매한 기기이기에, 매장에서 느꼈던 그 느낌의 소리를 자기만의 공간에서 재생되기를 바란다.
이 바람이 틀렸는가? 아니면 그 바람이 행여, 과분한 요구인가? 하는 거다.
그저 소리만 나는 것을 원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금전 지불을 요하는 기기인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리라 본다.
작업장이나 기타 주변이 시끄러운 환경에서 감상되어지더라도 음질이 좋아서 나쁠 것은 없다고 본다.
들리는 음이 그저 짜증나는 경우라면, 오히려 그것이 더 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한다면, 결론은 판매를 목적으로 팔리는 기기는, 모두 음질이 좋을 필요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아닐까?
물론 공장에서 출고될 시에는 대부분 철저한 품질 검사와 충분한 테스트를 거쳐 생산한다.
일부 처음부터 사기를 목적으로 눈가림식의 허술한 제품을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제품은 저마다의 능력을 부여받고 매장에 출시된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이지 생산된 물품 자체를 탓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가 소리에 대한 혜안을 갖고 선택할 때와 그저 풍문만을 듣고 구매할 때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품은 만들어지는 과정과 소재에 따라 가격이 구분되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소비자가 종종 이 사항을 무시하고 생산자에게 무조건적인 양질의 품질만을 고집한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가격에 따른 품질의 차이만을 놓고 볼 때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고가의 기기가 반드시 모든 소비자를 만족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기기를 선택할 때는 그 기기가 지닌 효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일종의 기기의 성능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기기의 소리에 대한 효과를 함께 고려해 보자.
기기가 처음부터 한 세트로 생산되어졌다면 그 기기에 가장 알맞게 조정 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효율이 낮은 앰프에 성능 좋은 스피커를 조합할 경우나 효율이 낮은 앰프에 성능 좋은 소스 재생기를 연결할 경우
재생 품질에 있어 다소 이득을 볼 수 있다.
당연한 사항이나 기기 간 너무 차이나는 조합은 여러 면에서 낭비를 가져온다.
엇비슷한 성능의 기기 조합을 하면서 극대화한 효과를 거둘 때가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이때 선택하고자 하는 기기의 성능에 확실한 개념이나 믿음이 가지 않는 경우에는 기기의 실제 성능 테스트가 좋다.
실전을 통한 확인이 제일 우선이다.
확인이 어렵고 신품 구매일 경우에는 가격 면에서 비교함도 괜찮은 방법이다.
기기마다 컴퍼넌트 된 경우에는 동종 기기의 가격비교가 비교적 쉬우니 이 방법을 통해 성능을 짐작해 봐도 된다.
중고 기기의 구매는 항시 조심해야 하지만 기기나 판매자에 대한 신뢰가 확실할 경우에는 기기 간 성능 비교를 통해 구입한다.
기기마다 제조사의 엔지니어의 능력에 따른 차이는 있다.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기준은 존재하나 양질의 소리가 어느 제품이나 재생되는 것은 아니다.
양질의 소리에 대한 기준이 존재한다 해도 그 기준에 의문이 남는 것은 사람마다 성격이나 개성이 다름과 같다.
그래서 공학적인 기준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어떤 기준이 어디에 적합한지에 대한 결과를 누가 많이 경험해서 보편적인 생각을 구체화했느냐가 좌우한다고 본다.
이 같은 보편적인 기준이 기기의 성능을 좌우하고 기기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사실 보편적인 기준이란 것이 어떤 경우에는 매우 불편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요즘의 기기에서 특히 그렇다.
MP 3 이나 기타 휴대용 기기에는 음질과 관련한 장치가 있다.
그것도 없던 시절에 비하면 소비자의 기호에 대해 그래도 작으나마 선택권을 부여했다는 것에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장치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수동으로 주파수별로 소비자가 조절케 되어있었으나 어느 시점엔가 몇 가지의 선택사항으로 구별 되어졌다.
예를 들어 클래식, 팝, 노멀 등 서너 경우를 아예 그룹으로 묶어서 재생되어지게 했다.
편리성으로 말한다면 참 편리하기도 하나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구분했는지 궁금하다.
그런 데이터가 나오기까지 여러 연구가 있었겠지만 각각의 개성이 다르듯 한 경우와 같이 좀 더 섬세한 변화된 음을 원하는 경우에는 어쩔 것인가를 볼 때 매우 불편한 생각을 한 것 같다.
물론 소비자가 잘 모를 경우에는 그것이 편리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항시 그 이면도 존재 할 경우가 있는 것이니만큼 이에 대한 연구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수동조절방식이 자동선택과 같이 있는 것도 있다.
역시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에 대해 만족을 주기 위한 영업 전략의 일환이겠지만 반가운 일이다.
이같이 소비자를 배려함은 사실 소비자가 안심하고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제조하는 분들은 참고해 주었으면 한다.
기기가 지닌 기능의 한계는 단지 부품이나 기술적 요인의 적용여부에 따른 결과물이지 그것자체가 소리를 재생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출력이 적은 앰프의 성능이 출력이 큰 앰프의 성능과 비교를 한다면 단지 기능의 차이에서 소리를 크게 확장해서 내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구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출력이 크다고 해서 다른 기능까지도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출력이 크려면 부수적으로 소 출력에서 필요한 기능보다는 더 세고 더 섬세한 기능이 뒤따라야 할 필요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고 가야 할 것은 큰 출력의 제품이 반드시 섬세하고 듣기 좋은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이렇게 알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큰 출력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상당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큰 출력을 소화하려는 스피커가 작지는 않을 것이기에 반경이 큰 스피커를 구입해야한다.
조그만 공간에서 크나큰 우퍼로 울려대니 웅장하기도 하고 섬세하게도 들릴 수 있다.
그것은 그저 소리가 크게 나니까, 스피커의 구경이 크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 결코 바람직한 음악 청취의 방법이 아니다.
5 평 남짓한 공간에 대문짝만한 궤짝을 두 개씩이나 들여놓고 듣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도 그 사용자의 자유이고 나름 개성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족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좁은 공간에서 허구한 날 음악만을 듣고 사는 것도 아니고 음악이 생활에 전부인 것도 아닌데 저렇게 까지 갖춰 놓고 들어야만 할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그렇게 큰 출력을 원하는 것이며 공연장을 꾸민 것도 아닌데 그리도 많은 비용을 들여서 꾸미는 것일까?
주택의 거실이나 기타 음악 청취를 위한 공간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장소면 충분한 것 아닌가?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출력이 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커다란 구경의 스피커라야만 소리가 섬세하게 재생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고가의 오디오만이 좋은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소리는 공간 안에서 반사되고 일부 회절도 하며 가구나 기타 소재에 흡수되기도 한다.
방음이 잘된 공간에서 듣는 음을 항시 트인 공간에서 같은 분위기로 듣기란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주거하는 거실의 경우 벽 커튼이나 부드러운 소재의 소파 같은 가구는 흡음이 잘되는 것으로 굳이 따로 흡음을 위한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흡음을 위한 처리를 안 하는 것보다야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그 효과라는 게 아주 미미한 것이라 여겨지는 것으로 호사가의 입방아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어느 전문가의 이야기를 빌면 20 w 정도의 소리라면 주택가에서 옆집에 피해를 줄 정도의 소리라고 한다.
거리에서 꽝꽝 울리고 다니는 승용차 안의 음악 소리가 30 w 정도의 소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반 주택가에서 그런 큰 소리로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주택에서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서 흡음 공사를 한다고 하여도 공간 자체가 울리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고로, 건물의 옹벽이 울리는 경우인데 위, 아래 옆집의 소음으로 인한 항의 공세를 막을 재간이 있나?
파워 앰프의 한 쪽 출력이 800 w 이네, 500 w 이네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말재간이 특출한 인간이 저런 앰프를 팔았을까?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고, 열대 지방의 부호들에게 모피를 판매할 정도의 재주꾼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저런 물건을 사게 하는 것인지...
앰프의 출력이 클수록 앰프의 볼륨 노브를 9시 방향 이상으로는 올려 보지도 못할 것이고 헤드폰으로 들을 바에야 뭐하러 그런 고가의 스피커를 사?
그러한 커다란 크기의 출력이 높은 고가의 기기들을 소유해야만 지체가 높아지는 것인가?
오디오도 대형 차 모양 고가의 기기를 소유해야만 상류층에 드는 것일까?
섬세하고 웅장한 음은 고출력의 앰프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으며 굳이 고출력을 소화하는 입력이 빵빵한 고가의 스피커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주택에서 소화되는 음량으로 볼 때 20 ~ 30 w 정도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앰프라면 얼마든지 멋진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