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家에 다녀 오면서

by 박세명 posted Oct 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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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아버지께 사뢰어 올립니다.

당신이 늘 나에게 말씀하시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은 먼저 가십니까?  

나하고 자식은 누가 거두어 어떻게 살라하고 다 던지고 당신만 먼저 가십니까 ?
당신이 나를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당신을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읍니까?  

매양 당신에게 내가 말씀 드리기를 한데 누워서,
     '이 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와 같을까요?'하며 당신에게 말씀
드리더니 어찌 그런일 생각지 아니하여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 ?

당신을 여의고 아무래도 내가 살 힘이 없어 수이 당신에게 가고저 하니 나를 데리고 가소.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잊을수가 없어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이내 마음을 어디에다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며 살까요?
이 내 편지를 보시고 내꿈에 자세히 와서 말씀 하소. 내가 꿈에 이 보신 말씀 자세히 듣고저 하여 이리 써서
넣습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씀하소.
당신, 내가 밴 자식 나거든 보고 말씀하실 일을 두고 그리 가시되 밴 자식 나거든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
하십니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그지그지 가이없어 다 못 써서 대강만 적습니다.

이 나의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꿈에 보이시고 자세히 말씀하소.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보리라 믿습니다.
몰래 보이소. 하도 그지그지 없어 이만 적습니다.

                                                                                                   -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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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아버지께 보내는 이편지의 주인공인, 남편 '이응태'는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났읍니다.
남편은 평상시에도 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라고 했읍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 곁에 누워서,
            '여보 다른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 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와 같을까요?' 묻곤 했읍니다.
이 남편은 형 '이몽태'가 부채에 써서 관에 넣어준 한시(韓詩)에 의하면 '곧음은 대쪽 같았고...
깨끗함은 백지장 같았던' 사람 입니다.
곧고 깨끗하게 사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 절절한 한글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글을 배우고
식견이 있던 아내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한 남편, 이 아름다운 부부의 러브 스토리는 삼십대 초반에
막을 내였읍니다.

남편은 병이 들었고 아내는 병든 남편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읍니다.
남편의 병세가 날로 나빠지자 자기의 머리까락을 뽑아 삼줄기와 섞어 남편의 신게 될 미투리를
삼기도 했읍니다.
옛날이고 지금이고 여인의 머리는 아름다움의 상징 입니다.  
('평강이'도 머리를 매만지는 일로 하루를 시작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머리털로 남편의 신을 만들때는 어떤 심정이겠읍니까?
사랑하는 남편이 죽게 된다면 매만지고 가꾸어야 할 머리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뜻 이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부인의 그런 정성을 뒤로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서른한 살의 나이에 세상과 이별을 하였읍니다.
장례를 모시는 그 경황없는 중에 붓을 들어 못 다한 말들을  화선지에 적어 내려 갔겠지요.
편지 한 줄 쓰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한참을 멈추었을것이고 다시 흔들리는 붓으로... 또 한 줄을 쓰면서,
'당신을 여의고 아무래도 내가 살 힘이 없어 수이 당신에게 가고저 하니 나를 데려가소.' 이렇게 써놓고
빈 방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을까요?  쓰는 동안 편지지에... 그리고 편지를 쓰는 손등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러 내렸을까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잊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하고
써놓고는 다음 글을 못 쓰고 차거운 방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며 삼백예순 뼈마디가 저리고 아팠을것입니다.
         '그지그지 가이없어 다 못 써서 대강만 적'는 그 심정이 어떻 했을까요?

그리고 412년이 지난...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내 한 무덤에서 이 편지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읍니다.
못 다한 사랑, 풀지 못한 한이 사백여 년을 꼼짝 않고 있다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얼마나 한이 깊고 서러웠으면 글자 한 자 상하지 않고 사백년을 그대로 있었을까요?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표가 난다.'라는 말이 생각 납니다.
시공(時空)을 뛰어 넘어, 이른 아침...상가에 다녀 오면서... 스무해가 훨씬 넘도록 나만을 바라보며 살고있는 '평강'이 생각을 해 보았읍니다.

어제의 공모자였던 부부가 오늘,  밀고자가 되는 세상에... 가끔 꺼내보는 애절한 편지 한통 이었읍니다.
저녁에 '평강'이 병원에 오면... 손을 살짝 잡아 줄 심산 입니다.



푸른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