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기

◆● 비 목 ●◆

by 박진석 posted Jun 04,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1964, 강원도 화천군의 최전방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청년장교인 '한명희' 육군소위는

문득

잡초가 무성히 우거진 곳에서

무명용사의 무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때 숨진 어느 이름 모를 용사의 무덤인듯

옆에는 녹슨 철모가 딩굴고

무덤 머리위의 십자가 '비목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화약냄새 (초연)가 휩쓸고 간 깊은 계곡을 물들이는 붉은 석양..

녹슨 철모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새 하얀 수려한 목련...

그 육군장교는

이돌 무덤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젊은이였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비목(裨木)" 을 보면서 느낀 것을 메모하게 됩니다.

 

그 후

그때의 육군장교는 제대하여 TBC(옛 동양방송) PD로 일하면서 4년여가 지난 뒤

 '비목'의 가사는 탄생하게 됩니다.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과 더불어 우리 한국인의 3대 애창곡인 이 가곡.

전쟁의 상흔이 남기고 간 애절한 페이소스...

 

**저는 해마다 6월이 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국을 위해

님들이 겪었던 추위와 외로움의 고통과 부모와 아내, 자식에 대한 그리움

님들이 흘렸던 피를 우리는 꼭 기념일이 돼서야 잠시 되새기다

또 쉽게 잊어버리는 죄인 일지도 모릅니다.

 

그 분들이 남기고 가신, 고귀한 희생을 잊은채

오늘도 우리는 웃고, 떠들고, 맛있는 요리들을 먹으며 육체의 유희를 즐기면서

어쩌면 지금의 이 행복을 영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눈물 흘리며 흐느끼는 서울, 대전의 꼭 그곳이 아니어도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이름없는 산 모퉁이에 피는 꽃들의 향기와 함께

밤새 반짝이는 저 영롱한 별들을 쳐다보며 잠들어있을

짧은 생애를 살다가신 님들...

 

마지막 순간에 눈썹에 맺혔던 그 눈물의 의미를

마지막 남기고 가신 그 말을...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그 젊은이들이

전쟁이 남기고 간, 슬픈 희생양 이었을 지라도 말입니다.

...........           .............          ............        ...........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모윤숙 *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머리엔 끼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옹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믈린 탑까지

밀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누운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로움을 위안해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에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르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지었나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 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어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다.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떼가 강과 산을 날뛴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체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비목사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