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이런게 더 심각합니다

by 신용성 posted Oct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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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많이 낳으라면서… 47개 시·군·구 분만실도 없다

김민철 기자 mckim@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10.01 03:27

'의료수가 너무 낮고 분쟁발생 위험 높아'
산부인과도 점점 줄어
충북 괴산군에 사는 김정희(가명)씨는 지난 2월 셋째 낳을 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늦은 밤 진통이 오면서 양수까지 터졌지만 분만실이 있는 청주까지 한 시간 넘게 운전해 가야 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사는 괴산군에는 분만실은 물론 산부인과 의원도 없다. 지난해 1년 동안 괴산군에선 신생아 출생신고가 173건 있었지만 모두 청주 등 타 도시에 나가 낳아온 아기였다.

첫아이 임신 6개월째인 이순화(34·전남 보성)씨는 요즘 출산만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애를 낳으려면 자동차로 한 시간쯤 걸리는 순천에 있는 병원까지 가야 하는데, 예정일보다 먼저 갑작스럽게 진통을 시작하면 어쩌나 싶은 것이다. 얼마 전 이웃 산모가 밤에 진통을 시작해 부랴부랴 장흥의 산부인과에 갔지만, 담당 의사가 없어서 다시 순천으로 옮겨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걱정이 더 커졌다.

◆분만실 없는 시·군·구 47곳

세계적 저출산국 대한민국엔 '출산 인프라'도 열악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 230개 시·군·구 중 분만실이 없는 곳은 47곳에 달한다. 산부인과가 아예 없거나 산부인과가 있어도 분만실은 운영하지 않는 곳이다.

87개 군 중에선 절반이 넘는 44곳에 분만실이 없다. 이들 지역에 사는 임산부들은 분만을 하려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웃 도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분만실은 물론 산부인과가 하나도 없는 시·군·구도 28곳이나 된다.

서울 리즈산부인과 백은정 원장은 '산부인과는 응급 중에서도 초응급으로 시간을 다투는 분야'라며 '병원까지 접근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면 산모와 태아에게 치명적인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앞서 산부인과 부족에 시달려온 일본에서는 지난해 10월 도쿄에서 36세 임산부가 뇌출혈 증세를 보여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 부재 등으로 7곳의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백 원장은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같은 사고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 산부인과 의원 수는 지난 2006년 1월 1896개에서 2008년 1월 1725개, 올 6월 1647개로 줄어들었다. 3년 반 사이에 약 13%의 산부인과 의원이 사라진 것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을 차량으로 순회하는 '찾아가는 산부인과' 사업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경북과 전남 일부 지역에서 산전(産前) 검사만 해주는 수준이다.

산부인과 의원 중에서도 70%는 분만실을 갖추고 있지 않다. 전국 산부인과 의원과 산부인과를 둔 병원 3615개 중에서 분만이 가능한 곳은 30%(1089곳)에 불과했다(지난해 9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저출산·의료분쟁 등 삼중고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실과 산부인과 병원이 줄어드는 것은 저출산, 낮은 의료 수가(酬價), 잦은 의료분쟁 등 삼중고(三重苦)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분만 건수가 한달에 최소 20~30건은 있어야 분만실을 운영할 수 있는데, 연간 분만 건수가 300건 미만인 곳이 60% 이상'이라며 '이런 산부인과는 지금은 근근이 버티지만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곧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분만실이 없는 시·군·구의 지난해 출생아 수를 파악해보니 대부분 300명 미만이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산부인과는 의료분쟁 발생 위험이 높고 배상액도 고액인 경우가 많아 병원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한 의사는 '산부인과는 우리나라 제1의 의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의료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는 분야'라며 '600건을 분만해 3억원을 벌더라도 의료분쟁 1건으로 2억~3억원 나가면 버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9일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료 수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낮다며 현실화를 요구하는 자료를 냈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정상분만 비용은 국립대병원 115만원, 병·의원 54만원으로 주요국 평균비용 276만원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 의원이 갈수록 줄어들고, 심지어 산부인과 폐쇄를 검토하고 있는 대학병원도 적지 않다고 한 의료계 인사는 전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고광덕 회장은 '산부인과 진료기반의 붕괴가 현실화했다'며 '우리는 세계 최저 출산국으로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펴고 있는데 정작 산부인과 문제는 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