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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오디오 동호인분들에게 드리는 글: 학노인

by 조정래 posted Sep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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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소리전자 오디오 동호인 여러분.

 

멀쩡한 제품을 해작질 근성으로 황당하게 비방하니 별로 좋치 아니한 글로 이방에 잠시 왔습니다만 

다른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으로 그전에 제가 자주 사람사는 아나로그 글 올리던 생각으로 요 며칠 글을 하나 만든것이 있어서 올려드리면서 다시 물러 갑니다.

 

아래 원고는 ..다음달 모 문학지에 계재 될 초고입니다. 

 

소리전자 오디오 동호인분들은 대략 60대가 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땅의 마지막 효자 세대들입니다

초봄에 마석 쪽에 갔더니...말기 암으로 곧 자신은 생을 마감할것이니 살아 계시는 노모에게 fm 음악이라도 

즐길 수 있게  오디오 시스탬을 구성해드리고 싶다는 분이 였습니다.

그날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 했습니다.

 

몇년전에는 천안 외곽에 사시는 오디오 동호인 집에를 갔는데

그분은 노모가 덜컥 중풍으로 드러눞자 ..그의 아내는 떠나고.

 

결국 산속으로 이사를 한 이후에

하루종일 누워 계시는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경제폭팔로 얻은 것도 많치만 잃어버린것도   많습니다.

 

지금 6-70대가 이땅의 5천년 역사에서 마지막 효자세대라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곧 정작 자신이 몸이 늙고 불편해지면 ....이제는 지게에 지고 갖다 버리는 고려장이 아니고

애비가 벌어 준 돈으로 고급 외제차로 신 요양원 고려장으로 버려지는  세대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분들에게 아래 글을 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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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술은 없지만 fm  93.1 을 즐기시는 오디오 동호인 여러분 덕분에 전국 내노라하시는 개인 오디오 룸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객관적 비교로 청음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점 고개 숙여 감사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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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노인 

글쓴이ㅣ 조정래 

 


원래 이 마을은 산 밑에 작은 천수답 다락논을 끼고 올망 졸망 아홉 집이나 모여 살았지만  워낙 척박한 땅이라서  먹고 살기 힘드니 60년대 말 부터 하나 둘  도회지로 떠나고  일부는 읍내로 일부는  아랫 마을 큰 동네로 이사를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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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 허물어지는 빈집이 울음을 토 할 듯 을씬 스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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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지막으로 달랑 김 노인네 집만 남았습니다.
정들었던 이웃이 떠 날 때...

"우짜든동 객지 나가서 잘 사이소 잘 사이소 ...동구밖까지 따라 나가면서 눈물 훔치면서 헤어지는 날은

"나는 못 먹고 가난하게 살아도 조상 묘 지키다가  이 산골에서 죽을 란다"

혼자 넑두리로 중얼 중얼 하던 김씨도 이젠 90 중반 폭삭 늙은 노인이 되었고 이 산골이 안태 고향인 아들도 이제 70 중반 중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즉 중늙은 아들이 폭삭 늙은 90 중반 상노인을 모시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 산골 마을에서 사는   마지막 농부입니다.


간 혹 학가산으로 오르는 도시 등산객들은  삐떼기 골  다락논에 있는 두 노인을 보고  

"배운 것이 원체 없으니 아직도 이 첩첩 산골에서 땅 파 묵고 사는구나!"

불쌍타 하였다.

사실되로   객지에 나가서 살 정도로  배운것도 없지만  이 두 늙은 부자지간은  뒷 산에 고조 중조  할아버지 산소가 있고 그 조상들이 순  맨손으로 일군 멧골 땅을 함부로 버리고 고향을 떠 날 수가 없었습니다.


춘봄에 곡우내리고, 삐떼기골에 진달래가 피고, 육이오 때 폭탄 맞은 자국이 커다랗게 난 체로  동구 밖을 겨울 내내 쓸쓸이 지키던  팽나무에 소쩍새가 둥지를 틀고 울기 시작하고
남쪽에서 봄바람이  뻬떽이 골을 타고 봄 아지랭이를  밀고 들어오면  또 한해 농사 일이 시작 되었습니다.
중 늙은  아들은 논밭으로 일을 나갈 때는 자기 보다 월등히 폭삭 늙어서 육신이  늙어 쪼그라 들되로 쪼그라진 늙은 아버지를  집에 홀로 둘 수가  없어서  부친을 항상  지게에 지고 논밭으로 농사 일을  함께 나갑니다.

일평생 땅에 엎드려 골몰한 삶을 사신 아버지가 몇년전부터  허리가  더 굽어져서 ㄱ자 노인으로 지팽이로 겨우 걸어다니시더니 지난해부터는 앞 마당에도 어린아이처럼 겨우 엉금엉금 기어 나갈 정도로 노쇠해졌고 그런 아버지를 돌봐 줄 사람은 자신 뿐이니 혼자 집에 두고 논밭에 나갈 수가 없으니

싸리대로 만든 지게 소가리에 헌 나이롱 이불을 깔고 아들은  바람처럼 가벼워진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삐떼기 골로 올라가서 논 섶에 있는 감나무 아래  늙은 부친을 내려 놓고

아들은 논에 서래질도 하고,  모심기도 하고 , 피도 뽑고 논일을 하는데...

그러면 호호늙은 아버지는 논머리 감나무 아래 앉아서 세살난 아이처럼 꼼지락 거리면서 잡초를 뽑기도 하고 , 손벽을 치며 혼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에 소망이 무엇인가...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근자에는 부쩍 치매끼가 있고 아들에게  잔소리도 늘었습니다.
아들이 논에 엎드려  땀 흘리면서 일하는 것을 보고

"야야 찬물 마시고 해라!"
"야야 소마구 거름을 너르게 뿌리라!"
"야야 논 거머리 물리면 피 난다 조심해라"


이빨이 하나도 없이 잇몸 뿌인지라 말씀도 마치 어린아이 옹알이처럼  들렸습니다만 아들은 그런 폭삭 늙은 아버지 잔소리에 그냥 씨-익 웃으면서 중간 중간 논에서 나와서 아버지 엉덩이 아프실세라 다시 나이롱 이불 깔아 놓은 자리로 옮겨 드리고  물도 챙겨 드리고, 읍내 장날  사 온 초코파이를 드시게하고는 다시 논에 들어가서 엎드려 일하면

건너편 산자락에서는 두견새도  목에 피멍이 들 정도로 슬피  울고,
죽은 며느리 혼으로 날이 새도록 운다는 쪽박새도 울고,
머슴새도 죽죽 거리고

물찬 제비들이 논 위로 날고 ..저만치 까마득한 하늘에서는 노고지리가 가물가물 울었다.

말이 달랑 한채만 남은 외로운 산골이지만 결코 삐떼기 골의 농부는  외롭지만 않았습니다.

어느 날 벼싹이 파릇파릇 돋아날 무렵 ..지게 작댕이로 지게를 두두리면서 혼자 호호 노시던 늙은 아버지가

" 아들아  근데 요새는 논에 학이 안오노 ?"

안하시던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부지요 요즈음은 학이 없니더!"

"옛날에는  삐떼기 골 논에 천지 삐까로로  날러왔는데 우째 요사이는 학이 안 보이노..애비야 애비야 나는 학이 보고접다! 왜 안오노 옛날에 글키 많이오던 학에 다 어디로 갔뿟노!"

" 아부지요 요새는 마카 농약을 많이치니 미꾸라지가 사라지고, 논붕어 새끼도 없어지고  그 이후부터는 학이 먹을게 없으니 삐땍이 골에 는 인제 오라캐도 안 오니더!"

그러자.. 심술이 난 아이처럼 지게 작댕이로 감나무를 툭툭 치고는 고무신을 벗어서 아들 쪽으로 심술로 밀면서   

"에이 아들아  나는 우리 논에 학이 안오면 싫다, 학을 불러다- 오
학머리도 백발이고 나도 인제 늙어서  백발머리인데 내는 학하고 칭구 할란다, 우짜든동 ..학을 불러 다오!"

그날 이후  늙은 아버지는  매일 논으로 일나가는 아들 지게에 올라타고 가면서  어린아이처럼 갑자기 학 타령을 하기 시작 하셨습니다.
어제 했던 말을 오늘 똑 같이 했습니다.

허긴 농약 없이 농사 짓던  1970년대만 해도 이 깊은 산골 논에 뿌리는 거름은 봄풀이니 참나무 여린 가지같은 것을 소먹이  작두로 썰어서 소똥이니 정낭에 쌓인 인분을 적당히 썩어서 지열이 올라오는 거름무더기에 덮어서 어느 정도 발효가 되고나면  그런 자연 똥풀 거름을 논에 뿌렸고

뿌린 거름에 붉은 물이 돋고나면  그 주변에 각종 벌레 씨알이 태생을 기다리면 논 우렁이들이  꾸물 꾸물 몰려오고 , 물방개와 소금쟁이도 기어나오고, 땅 강아지들이 뽀지락거리면서 논두렁에 구멍도 만들고,작은 올챙이들이 녹두알처럼 몰려다니고, 큰 웅덩이에 살던 붕어가 갓바위 쪽에 검은 비 구룸 몰려오면서 소낙비라도 우두둑 떨어지면  씨알 붕어도 논으로 올라와서 산란하여 붕어 새끼들이 벼 사이를 헤엄치고, 웅덩이 논 중간 중간 얼지 않고 물을 조금씩 토하던 물렁 쏘 진흙에서 겨울 잠을 자던  미꾸라지들이  올미싹 사이로 흙탕무리로 설치고 , 그런 논 두렁 섶에 멀리서 온 손님 뜸북새가 뜸북 뜸북 울고, 논물이 따뜻해질 절기가 되면 목이 긴 학들이 삐떼기 산골 논에 날러와서   미꾸라지 통체로 삼키고도 안 먹은 척 의젓하게 천천히 논뚝을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양반스런 ..학이 오지 않습니다

다  독한 농약 때문입니다.

노인이 매일 아들이 지게를 지고 논 섶에 내려 놓기만 하면

"아들아 나는 학이 보고접다 아들아 나는 죽기전에 학이 보고접다!"

중얼거리시더니 어느 날은 훌쩍 훌쩍 눈에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몸은 점점 가벼워지시고 , 중간 중간 한숨도 쉬시고, 기력이 부치니 이젠 어린아이처럼 칭얼칭얼 하셨습니다.

하여 아들은 늙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기로 하고 읍내 농약 방에서 사 온 각종 농약은 뿌리지 아니하고
반대로 이골 저골 버려진 웅덩이에가서 미끄라지를 잡아와서 논에 풀어주고 학이  좋아하는 붕어새끼를 잡으려고 작은 저수지에 반디질 하여 잡은 붕어를 자기 논에 풀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붕어 산란은  이른 봄 따뜻해진 논물에서  합니다,
산란후 작은 새끼 붕어가 안전한 벼 사이에서  1차 성장 이후에 큰 소나기가 내리면 큰 물을 타고 강으로 혹은 큰 저수지로 이동해 갔습니다.

예전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철에는 논둑 중간 중간 있는 물고에 물을 퍼내면 그곳에 작은 붕어 새끼들을 사발로 잡았고, 그러면 농부들은 논두렁에서 앉아서 딱 쏘는 안동 막소주 한잔 마시고 붕어 배를 따고 초장에 찍어서 소주 안주로도 먹었던 이땅의 토종 붕어...이젠  각종 농약으로 다 사라졌습니다.

아무튼 늙어가는 아들은 더 늙은 아버지를 위하여 논에 학을 불러 올 계획으로  날마다  열심이 열심이 저수지로 돌아다니면서 붕어를 잡아다가 자기 다락논에 뿌렸습니다.

그러자 그런 늙은 아들 소문이 읍내 장터에 퍼지고 ..길안천 낚시군들에게도 소문이 퍼져서 씨알 큰  암붕어를 잡으면 낚시꾼들이 그 효자 아들에게 주라면서 읍내 낚시 가게에 맡기기도 하고
드디어  7월이 들어서자  논에 여기저기 붕어 새끼들이 헤엄치고
미끄라지들도 야단을 치며 돌아 다니는 옛날 논으로 돌아 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벼는 농약을 치지 않아선지 성장이 느리고  여기저기 병도 들고 ...결국 가을  큰 소출 하기는 힘들어졌습니다만 . 그래도 늙은 아들은 벼 소출이 줄더라도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싶어서  매일 부친을 지게에 지고 그 논두렁 섶에 내려 놓고 학이 날러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코  벼이삭도 제법 자라 산골 바람에 출렁이자 아들은 혹여 간밤에 학이 뻬떼기 논에 도착 했을까  날 마다 식전에 논에 나갔는데  드디어  어느 날 새벽에 논에 나갔더닌 하이얀 학 한마리가  삐땍이 골에 날러와서

효자 농부 논두렁에서  긴 목을 빼고 의젓하게 어술렁 어슬렁 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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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학을 보자 기쁜 나머지 화들짝 놀라서 급히 집으로 달렸습니다.

반대편 머무리 산골에서는 지난밤에 내린 비 끝의 청명함이 가득피고,
돌고개 넘어 머-언 안동 역에서는 서울서 내려 온 새벽 열차  울음 소리가 그리운  헛소리 귀울림처럼 들렸습니다.

헉헉 ..헉헉 고추밭 지나고 다시  돌 복숭아 나무를 훌쩍 지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마당으로 들어 선  중늙은 아들은

"아부지요 아부지요 학이 왔니더  학이 왔니더  퍼득 일어 나이소 학 보러 논에 가시더!"

숨이 목까지 차오르도록 달려와서는 아직 주무시는 사랑방을 보고 다시한번

" 아부지요 아부지요..퍼덕 일어나시소! 우리 학이 논에 왔니더 아부지가 보고접던 학이  우리 논에  왔니더!"

흥분된 목소리로 알리자 ... 폭삭 늙은 백발의 아버지는 사랑방문을 열치면서

"학이 왔나? 진짜로  학이 왔어?"

하시면서 얼른 아들의 지게어 올라  앉으셨고 아들은 학 털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서둘러 지게에 지고 혹여 아버지가 학을 구경 하기 전에 학이 다른 곳으로 날러 갈세라 허겁 지겁 ...당당 걸음으로  뒷 골 삐떼기 논으로 올라갔습니다.

오오  이게 왠 일입니까!

그 사이 늙은 노인이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학이  서너마리나 더 날러와서 푸른 벼이삭  사이를 의젓하게 거닐었습니다

학을 보자 갑자기 노인은

"학이다 학이로구나! "

호호 깔깔 거리면서 좋아라 좋아라  했습니다.

그러자 논에 학들이 자기들처럼 백발이 성성한  뽀하햔 노인을... 목을 길게 빼고 물그러미 처다 보았고  노인의 백발도 멀리서 본다면  또 다른 한마리 뻬떼기 골의 학이 되었습니다.

'학아 학아 어디갔다 인제왔노! 이제부터 날 버리지 말고 우리 논에서 같이 살자구나!"


그 사이 아들은 집으로 다시 달려가서 아침 밥을 대충 챙겨서 논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렇게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왠 종일 학을 보면서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늙은 아버지와 아들은 논두렁 감나무 아래 마주 앉아서 조용 조용 논에 학들을 견눈질 하면서 아침 식사를 하기 시작 했고 논에서도 뽀하얀 학들이 평화롭게 거닐며 붕어 새끼,미꾸라지, 물방개,참개구리로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감나무 아래도 백발의 학노인이  피고
논에도 여러마리 학들이  피어 있고

그러자  뻬떼기 골 하늘 높이 흰 구름도 학처럼 여기저기 둥둥 피기 시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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