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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빈티지

by 김성수 posted Jul 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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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의 스피커 통은 처음 ‘가난한 자(貧者)의 웨스턴755A’라고 하는

젠센P8P를 수납하기 위하여

통의 측면은 중간에 한지를 넣고 얇은 합판을 두 장 집성하여

유니트가 소리를 작동할 때 통의 측면은 북이나 장구처럼 울리게 하면서

저역을 만들어주고, 소리의 공명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근자에 젠센P8P의 원래 효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하여 별도의 통을 제작하기로 하면서,

여기에는 대신 텔레풍켄 극초기형 8인치 깔대기형 유니트를 수납하면

빈티지의 효과가 더 있겠다고 짐작하여 한 번 시도하여 보았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음악을 재생하여 주어 .... 그저 놀랍기만 하여

그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열일곱살의 까까머리 고등학교 1학년 입학 후 첫 음악시간에

음악선생님이 아주 큰 케비넷 속에 잘 보존하고 있던 낡은 야마하 장전축에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십여 분간 들려주셨는데,

그 교향시의 엄청난 장엄함과 머리카락이 쭈삣 설 정도로

거의 쇼크에 가까운 음악적 충격을 받아서

지금도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 나이가 들면서도 여전히 빈티지 오디오를 좋아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위와 같은 <핀란디아> 감상 때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게 되었답니다.

 

위의 빈티지 장전축을 지금 회고하여 보면.... 그 당시에도 매우 낡아서 ....

마치 3년 묵은 묵은지의 맛이 나면서도 신선하고 상큼한 맛을 겸비하여

음악의 해상력이 명료하면서도 약간은 곰삭은 느낌을 풍겨주어야 하고,

팀파니나 북 드럼 등이 퍽퍽거리지 않고 통통거리면서 그 울림과 잔향이 풍부하고

기타의 줄 튕김이나 피아노 타격음의 소리가 명료하고, 그 여음이 길게 남아있어야 하며,

특히 거장들이 연주하는 가야금 연주의 깊고 그윽하며 물결같이 잦아드는

농현(弄絃)이 여실하게 재현되면서,

게다가 가장 많이 듣는 피아노3중주 및 현악4중주 등 현악이 그지없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현재의 저만이 가지고 있는 빈티지 오디오에 대한 편협된 여러 조건들은

아마도 고교시절에 배우고 들었던 클래식 음악에 대한 향수가 뭉쳐진 후 천천히 녹아내리면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초기형 텔레풍켄8인치 풀레인지 유니트를 위의 통에 수납하고

여기에 적합하리라고 예측되는

마그나복스 장전축에서 적출한 6BQ5싱글(볼륨과 옥스단 별도 설치)을 매칭하여

소스로 진공관시디피에 물렸는데, 뒤로 자빠질 정도로 깜짝 놀랐답니다.

 

오디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10여년간 그토록 찾아 헤메던 그 향수에 젖은 소리가

전혀 예기치도 못했던 유니트와 통, 그리고 프리도 없는 상태에서

장전축에서 적출한 주먹 두개만한 파워앰프의 매칭에서 이런 소리가 날 줄이야 ....!!

 

분명 8인치 유니트인데 12인치 이상의 소리와 풍부한 저역과 울림(공명)

그리고 깔락깔락 넘어갈듯한 바이올린 고역 음색의 고운 선율에..... 그저 넋을 잃어.....

대역간의 밸런스가 어떠니, 중고역의 재현이나 음색이 저떠니 하는

평상시의 오디오 테스트에 대한 논의점이나 그 어떤 토론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려서....,

 

무엇보다 빈티지의 조건은

자신의 취향에 가장 근접한 유니트를 손수 발굴하고

거기에 가장 좋은 저역을 재현할 수 있도록 통을 제작하는 일,

그리고 그 스피커를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출력으로

아주 알맞게 밀어줄 수 있는 출력의 앰프를 매칭하고,

원하는 취향에 근접하는 소스기기를 선택하여 물리는 것이

그 해답인가 봅니다.

 

흔히들 ‘스피커는 유니트 반, 통 반’이라 하는데

요즘 탄노이동호회에서 한참 논란이 일고있는 인클로저에 대한 논의나

유니트 가격 거품에 대한 논의도

따지고 보면, 명품 소유에 대한 갈망과 그 접근성에 대한 논란으로 보입니다.

 

스피커나 앰프 할 것 없이, 마음에서 명품 로고 획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내가 이런 명품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라는 명예심(과시욕 포함)이나

‘특별한 나’를 내세우려는 이기심으로 가득찬 ‘이기적인 나’라는 놈의 아상(我相)도 버리고

그저 본인의 취향에 적합한 음악을 듣고자 하는 고요한 마음만 유지한다면

의외로 나에게 알맞은 기기를 선별할 줄 아는 안목이 생기고

또 이상하게 그런 기기와 만나는 조우(遭遇)의 인연도 찾아옴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바의 소리 성향을 가진 유니트를 먼저 찾아내고

거기에 대역간의 밸런스를 잘 맞추어 재현할 수 있는

인클로저(통)의 제작이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위 사진에서 유니트를 수납한 스피커 통은

악기의 개념을 도입하여
그 외부에 악기제조의 필수불가결품인 독일산 천연바니쉬를 도포하고

만 2년 동안 건조되면서 명기 첼로 악기의 몸체와 같이 공명과 울림을 풍부히 하여주는 것이

그야말로 진정한 좋은 소리를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기다림의 미학이 적중한 셈이지요.
 

또한 자기 귀에 가장 적합하고,

통이 없는 알맹이 상태에서도 명징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주는 유니트를 만나는

일종의 사건과 같은 만남이

운명처럼 다가와야 함을 몇 번이나 경험하였답니다.


앰프의 출력관이나 아웃트렌스 또한 소리 재현의 중요한 요인이 되지만

출력관과 초단관 아래 장착되는 카플링에 따라 소리의 성향이 많이 좌우되는 경험을 .....

스프라그 블랙뷰티는 예쁘고 여성스런 소리를 내주고

웨스트캡(구드만, 굿올 등)류는 좀 굵고 묵직하면서도 점잖은 소리를 만들어주는가 봅니다.

 

선재(線材)의 선택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좌우되는 요인....

저는 옛날 삐삐선(전화선) 두 가닥씩 단자에 각각 물렸는데, 이눔이 제법입니다.

소리가 너무 이뻐, 인터선만은 저에게는 좀 비싼 웨스턴 선을

빈티지 단자에 물려 지금의 시스템을 대접해주고 있습니다.

 

빈티지 오디오는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고

돈으로 때우다시피 하며 비싼 명품으로 소리를 만들려고 했던 저의 아둔함도 버리고

나만이 특정 소리를 내어냐 한다는 고질적인 병과도 같은 아상(我相)도 버리고

그저 흐르는 음악의 물결 속에서 약간의 흠(허밍) 마저도 흐뭇하게 들리는 마음을 유지할 때

비로소 아름답고 좋은 음악이 가슴으로 들어 오는가 봅니다.

 

지친 육체와 멍든 마음을 위로하는 소리결 음색으로

눈물로 얼룩진 영혼을 달래주고 승화시켜줄 수 있는

빈티지 음악이 여기 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