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백로 노는 곳에 까마귀야 가지 마라

by 항아리 posted Mar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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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로는 우아함과 고상함의 상징입니다.
  전통적인 표현을 빌면 선계에서 노니는 신선들의 동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보여지는 이미지의 이면에 있는 백로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까마귀는 불길함과 재수없음의 상징입니다.
  그 생김새와 울음 소리가 죽음과 매칭이 잘되는지 무덤가나 썩은 시체들
주위에서 많이 묘사되어 왔습니다.

  전설 속에서 백로는 이미지대로 표현됩니다. 여전히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반면 까마귀는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반포지효로 표현되는 효도와 보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의 희생조,
  그리고 고구려의 삼족오로 대치되는 태양의 새 등입니다.
  -옛 선조들은 달에는 옥토끼가 살고 해에는 금까마귀가 살았다고 이야기하곤
했던 모양입니다.
  
까마귀는 백로와 달리 겉이미지와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까마귀를 애완조로 키우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이 놈이 머리맡에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답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그 놈의 눈이 하도 깊고 그윽해 보여서 감탄이 절로 난다더군요.
대견해서 미소지으면 그 놈이 대답이라도 하듯 부리로 자기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다듬어 준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누군들 까마귀를 한 번 길러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 얘기로 까마귀의 정체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역시 불길하고 재수없는 이미지와는 영 맞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보여지는 이미지-어떤 이미지를 창조해 그대로 보여지길 원하는 의도까지 포함한 그런
이미지에 스스로 말려들고 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보여지는 이미지대로 보고, 그것이 전부인 양 믿어버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을
주장 삼고 결론 삼는 것도 그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다른 분야와 계통들과 마찬가지로,
까마귀 이미지 보다는 백로 이미지가 넘쳐나는 오디오와 음악 동호인의 세계에서도
가끔은 생각을 뒤집어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백로 노는 곳에 까마귀야 가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