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김선우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어여쁜 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
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
잘디잔 보랏빛 총총한 꽃마리 어여뻐
사랑한다 말했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흰사슴이 마시고 숨결 흘려놓은 샘물 마셨습니다
샘물 달고 달아 낮별 뜨며 놀았습니다
새 뿔 곱게 올린 사향노루 너무 예뻐서
슬퍼진 내가 비파를 탔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잡아주고 싶은 새들의 가녀린 발목 종종거리며 뛰고
하늬바람을 채집하며 날갯짓하는 나비떼 외로워서
멍석을 펴고 함께 놀았습니다 껍질을 벗는
자작나무 진물 환한 상처가 뜨거워서
함께 가락을 놀았습니다 회화나무 명자나무와 놀고
해당화 패랭이꽃 도라지 작약과 놀고
꽃아그배나무 아래 낮달과 놀았습니다
달과 꽃을 숨구멍에서 흘러나온 빛 어여뻐
아주 잊듯이 한참을 놀았습니다 그대 잃은지 오래인
그대 만나러 가는 길
내가 만나 논 것들 모두 그대였습니다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그대여, 나 괜찮습니다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 등단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 (당선詩 : 피어라, 석유!)
현재 '시힘' 동인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도화 아래 잠들다』
산문집『물 밑에 달이 열릴 때』등
흐헛 두분 보기가 좋네요. 시글도 좋고...
이경순님이 원하는 시는 아마 현대시 인듯하지만...
예전에 알던 서산대사의 유명한 시도 덤으로
여기 얹어놓고 가야겠네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작後人程)
눈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