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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 말씀(출력과 효율, 그리고 머니)

by 윤영진 posted Apr 0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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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의 발전은 1940년대 이전의 WE와 Jensen, Klangfilm(Siemens) 정도에서 다 끝났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진공관 앰프 역시 비슷한 생각입니다.
솔직히 알텍이나 JBL이나 마란츠나 하는 등등은 그에 비하면 "염가판 대량생산품"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왜 옛날 스피커들이 좋았냐 하면?

앰프가 시원찮았기 때문입니다.^^

음질적으로 나빴다는 것이 아니고, 증폭소자의 기술이 뒤져서 출력이 낮았다는 의미입니다.
출력이 낮은 앰프로 넓은 곳에서 큰 음량 만들자고 하니, 다른 데 쏟을 머리나 궁리를 온통 스피커에 쏟았습니다. 게다가, 초기 토키영화가 전인류를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 넣고, 다른 오락이라고는 별로 없던 1930년대 전후는 스피커 회사가 원가나 마케팅 생각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앰프 역시 무리하게 대출력(그래봤자 10W 넘기 힘들었지만...)을 내자고 음질을 희생시킨 설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TR이라는 싸고 작고 간편하고 출력 큰 소자가 나오니까, 생각들이 달라진 겁니다.

  "야- 이거 순전히 수공에 의존해야 하고 잘 만들려면 덩치만 커지는 스피커에 힘과 돈을 쓸 필요가 없잖아? 저역이란 것도 작은 콘지를 무겁고 강하게 만들어서 질량을 높이고 앞뒤로 많이 흔들면 대구경 콘지만큼 나오는데 뭘!"

이라고 가버린 겁니다.

게다가 산업화 되면서 도시화되고, 집값과 부동산 값 올라, 주택이 점점 비싸고 좁아지는데,
누가 크고 무거운 스피커 비싸게 사겠습니까?
전에는 극장이나 업무용, 아니면 부자들의 장식용으로 팔리던 스피커들이었지만, 이제는 여피족, 중산층들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데....

한 마디로 앰프의 발전이 스피커의 퇴보를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부터 이상한 기운이 돌았습니다.
값싸고, 신식이라고 소형 스피커와 TR앰프들을 써 봤는데, 이게 영 소리가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진공관앰프을 자작해서 듣는 사람이나 오래된 앰프와 스피커를 되살려 쓰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이와 함께 몇몇 천재적인 디자이너들이 TR앰프의 하이엔드 시대를 엽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서 "비싼 오디오"가 보다 많은 소비층을 확보하면서 부터입니다.
전혀 상반되는 오디오파일들의 지향성이 병행되기 시작한 겁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서.....

박성준님은 앰프가 옛날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고 하는데, 저는 반은 동의하면서 반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페어에 1억원 안팎의 요즘 만든 파워앰프와 페어에 3-4백만원쯤 하는 썩은 빈티지 앰프를 비교해서 요즘 것이 훨씬 발전해다고 하기에는 웬지 쑥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과거의 명품 앰프들은 자기가 가진 약점(저출력) 때문에 고효율 스피커를 전제로 만들어지고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앰프를 설계하거나 제작할 때, 저출력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조건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유리한 조건입니다.
우선 음질이나 음색이 좋은 증폭 소자(필연적으로 저출력)를 선택할 수 있고, 전원부의 설계도 안정적이며 고음질 에 적합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저출력 조건은 노이즈도 낮게 하기 쉽고, 증폭 소자의 나특성도 좋게 하기 쉽고, 회로도 간단해 지고, 만약 같은 돈을 들인다는 조건하에서 고출력 앰프에 비해 투자비용을 훨씬 더 "음질에 도움되는 쪽"으로 배분하기 좋은 여건을 제공합니다.
이건 소자의 차이와는 무관합니다.
예를 들어 TR이나 FET를 사용해서라도 2천만원짜리 파워앰프를 만드는데 하나는 10W출력으로 다른 하나는 200W 출력으로 만들라고 하면 당연히 10W짜리가 더 고급 앰프가 되고 소리도 훨씬 좋은 걸 만들 수 있습니다.

대출력으로 만들다 보면 음질이 훼손되는 요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음질의 훼손을 줄이기 위한 비용 역시 끔찍하게 증가합니다.
48패러럴 정도의 출력단을 음질을 좋게 구성하기 위해 TR이나 FET를 장착하려면 앰프 한 조를 만드는데 하이엔드의 경우 수만개의 TR이나 FET가 필요합니다. 그만큼해서 짝을 맞추지 않으면 약음에서 음이 비틀리고 탁해집니다. 그 결과 몇 십 개 고르고 버려지는 출력소자의 비용은 전부 앰프값에 부가되어 버립니다.(물론 다 버리지는 않고, 나머지는 중하급 메이커의 앰프에 쓰입니다.)
하이엔드 TR앰프에 들어간 출력소자의 실질 비용은 300B나 205D보다 싸지 않습니다.

오래된 명품 앰프들을 요즘의 저효율 스피커에 매칭하면 도저히 제 실력을 낼 수 없기 때문에 퇴보했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고효율 스피커에 물릴 경우는 다른 상황이 됩니다.

1940년대 이전 극장용 앰프들을 사용하거나 수리해 보면 오리지널 상태로는 별로 좋은 음을 듣기 힘듭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저출력 소자로 고출력 위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무리하게 인풋 트랜스로 증폭시키고, 인터스테이지로 드라이브하고, 고전압 걸고, 바이어스 많이 걸어서 만든 것이 대부분입니다. 진공관을 2-3개월에 전면 교체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정말 가혹하게 구동하던 앰프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을 잘 리스토어링해서 들어보면 요즘 만든 BAT나 A.R. 등에 비해 못하지 않습니다.

각설하고, 출력을 제외한 비교를 하자면 같은 가격으로 진공관 앰프와 TR앰프, 그리고 빈티지와 최신 하이엔드의 우위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제작비라면 저출력 앰프는 진공관이 더 좋고, 고출력은 TR이 더 좋다는 정도....

고출력도, 매킨토시의 MI200이나 MC3500 같은 앰프들을 잘 오버홀, 트에이킹해서 틀어보면
마크, 제프, MBL 등과 비교해서 못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격은 훨씬 싸고....

골드문트나 윌슨 같은 하이엔드 스피커를 중심으로 역시 하이엔드 앰프류를 물려서 시스템을 잘 구성하면 3-5억원 정도 될 것으로 추측합니다.

만약 이 돈으로 앰프와 스피커만 빈티지를 사용해서 시스템을 구성한 다음에 서로 어떤 것이 더 좋을 지 비교시청을 벌이자고 하면 저는 빈티지 쪽에 걸겠습니다.^^

아직, 같은 투자비용으로는 빈티지 소리가 더 좋습니다. 왜? 빈티지는 하시라도 앰프 배째고, 스피커 껍질 벗기고, 시스템 매칭이나 튜닝, 트웨이킹 등에 숙련된 손맛이 추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