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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중독(An)

by 윤영진 posted Mar 3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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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아파서 경어 생략/ 양해^^)

오디오 취미는 가볍게 즐기는 수준에서 매우 쉽게 "중증 중독"으로 전이되기 쉽다. 그러나 다른 중독성 취미와 다르게 이를 "신경 병리학적"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으로 보아 넘기기 쉽다.
이처럼 오디오 취미는 사회병적인 특성이 적기 때문에 그 '특성과 본질'에 대해서 깊은 관심과 논의도 적었다. 그러나 오디오 취미도 주로 남성들이 빠지기 쉬운 "도파민 중독"의 일종이다.

도파민은 양귀비에서 추출되는 몰핀보다 몇 만 배 강력한 "인체내 분비 마약 성분"이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긴장과 성취감, 이완, 더 강력한 긴장과 성취감으로 기분이 상승된다.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뇌에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몰입과 기대치"를 높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unreliability(불확실성)가 전제조건으로 작용해서 reward(보상)이 주어지는 상황이면 도파민 분비를 위한 준비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의 대표적인 것이 도박이다.

그러나 오디오 취미도 도박이나 약물 중독보다는 강도가 낮지만 '도파민 중독'의 일종이다.
시스템에 투입되는 다양한 오디오 기기를 선택해서 '매칭과 튜닝'을 통해 결과를 얻는 과정은 불확실성의 조건을 형성한다. 기기의 매칭, 이게 얼핏 보면 쉬울 것 같지만 이처럼 불확실성을 가진 경우도 드물다. 다양한 선배들의 경험을 사전에 학습해서 추종해 보지만, 막상 해보면 늘 다양한 결과를 경험하게 된다. 일단 원했던 수준의 결과를 얻기는 무지 어렵다.
경마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말과 어떤 기수, 승률 등등 수많은 선행 데이터를 종합해서 돈을 걸지만, 실제로 경주가 끝나보면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수년 정도 기기 매칭에 학습비를 지출하다 보면, 어느 정도 불확실성이 낮아지고 대충 매칭의 묘를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불확실성과 리워드(보상) 사이의 관계가 루즈해지고, 도파민 분비가 낮아진다. 한 마디로 시들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강도 높은 자극을 찾게 된다. 직접 기기의 뚜껑을 열고, 온갖 트웨이킹과 리스토어링을 하는 단계이다. 그 단계도 시들해지면 직접 자작을 하고 기기 개발까지 하는 단계로 나간다.

즉, 인간은 자신의 예상과 결과가 쉽게 맞아 떨어지면 도파민 분비가 낮아져서 쾌감을 덜 느끼게 된다. 보다 어렵고 복잡한 상황을 스스로 조성해서 그로 인해 얻어지는 "낮은 승률의 높은 보상"을 자꾸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마라톤의 경우도 같다. 인체는 괴로운 상황이 되면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역시 도파민을 분비한다. 숨이 폐를 찢을 듯이 괴롭도록 뛰면 도파민 분비는 활발해지고, 이를 통해 희열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몸이 뛰는 데 익숙해지면, 도파민 분비는 줄어든다. 한번 맛 본 도파민 중독의 쾌감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강도 높은 달리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아침 조깅으로 시작된 달리기가, 단축 마라톤, 풀 코스 마라톤, 철인 3종 경기, 울트라 마라톤 등으로 자꾸 지경을 높여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다행히 오디오 중독은 그 끝이 그리 파멸적이지는 않다.
크게 보아 두 가지 결말을 갖게 된다.

1) 도저히 욕망을 경제력이 뒷받침 못할 경우-카드 빚과 은행 빚으로 파산 직전에 주로 마눌님이 브레이크를 걸어 준다.

2)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실력도 한계에 달해서 더 이상 "불확실한 상황"을 연출하기 어려운 경우. - 직접 오디오 개발회사를 차리지 않는다면, 그냥 시들해져서 풀레인지에 인티앰프 하나로도 만족한다.

그래도 한번 빠지면 이런 결말을 맞기까지는 일단 멈추기 힘들다.

그러나 억지로 멈추면 부작용도 크다. 오디오 중독증이 심한 사람이라면 일단 "도파민 중독의 가능성"이 큰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억지로 멈춰 놓으면 다른 쪽에서 도파민 분비를 추구하기 십상이다. 도박이나 술, 약물 등등....

우리끼리 서로를 환자라로 부르는데, 이는 의학적으로도 정확한 진단이다.
문제는 이 중독증에는 의사도 병원도 없다는 점이다. 도박중독은 이미 의학계에서 이론이 정립되고 전문병원도 생겼다.

어쩜, 오디오 중독 전문 병원도 생길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