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한 알텍매니아의 스피커 만들기

by 이만 posted Jun 01, 200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CREF AUDIO社의  CREF MK-1 스피커
●구성: 3way 4speaker ●사용유닛: 25㎜ 티타늄 트위터, 100㎜ 폴리프로필렌 미드레인지, 200㎜ 폴리프로필렌 우퍼×2 (오닥스) 후면 덕트, 싱글 와이어링 ●재생주파수대역: 35㎐~20㎑ ●출력음압레벨: 92㏈ ●임피던스: 8Ω ●크기(WHD): 240×1,200×400㎜ ●무게: 40㎏ [가격: 350만원]

이런 글 여기에 올려도 되나 모르겠습니다만, 이 스피커의 소리가 무척 궁금해 지는군요..

알텍매니아가 오닥스유닛으로 만들어 알텍소리가 난다는 스피커.. 알텍당원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 까 궁금해지기도 하구요.. ^^

우연히 이 스피커 제작자의 열정에 살짝 감동해 퍼왔습니다.. ^^
그리고 이 회사와 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이파이저널 60호 김남의 오디오 인물기행- 크레프 황정섭 사장


딱지 맞은 스피커

지난겨울, 한 쌍의 무거운 스피커를 메고 중년남자 한사람이 어떤 오디오 숍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 전화 드렸던 스피커입니다."
주인은 잠시 스피커를 메고 온 남자를 살펴보더니 매몰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져가세요. 필요 없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며칠 전 전화로 상세하게 설명을 했더니 가져와 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왕 가지고 왔으니 한번 들어나 보시지요."
"필요 없습니다. 우리손님중에 그 스피커 들어본 사람이 있어서 들은거나 다름없습니다."
그 손님이 뭐라고 했을까? 뻔한 것이다. 형편없는 스피커이니 절대 들여놓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남자는 맥이 다 빠진다. 지난 2년여 동안 오직 이 스피커에만 매달렸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만 빼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스피커였다. 눈물이 배어나오려는것을 억누르고 그는 다시 스피커를 싣고 다른 오디오 숍으로 간다. 그곳도 이미 며칠 전에 전화로 구구절절 얘기를 해둔 곳이다. 다행히 그곳에서는 그냥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스피커는 일반적인 톨보이형보다 다소 큰 3웨이 4유닛 구성으로 어떻게보면 다인오디오제품과 흡사한 모양이다.
"만드는데 몇 년이나 걸렸어요?"
"설계는 2년 전부터 시작했고, 튜닝 하는데 1년, 제작하는데 6개월 걸렸습니다."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려가면서 연신 닥치는 대로 CD를 바꾸어 걸기 시작한다. 오디오 숍의 사장이 보기에 이 스피커는 국내의 이름 없는 장인 한 사람이 만들어낸 그냥 별 기대할 것 없는 일반 제품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사장은 고개를 들었다.
"몇 쌍 갖고 오셨나요?"
"2쌍입니다."
"그럼 한 쌍은 진열을 하고 한 쌍은 제가 집에서 써야겠습니다. 집에서
쓸 제품만 원가로 하나 주시죠."

산을 좋아하는 재즈 마니아

황정섭 사장은  올해 45세로, 서울 마포 태생이다. 사실 그는 스피커 장인이라기보다는 산악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코오롱 등산학교를 이수한 후, 한창때부터 암벽 등반에 빠져들었다. 설악산과 북한산이 주무대로, 1년이면 30여 차례 정도 그는 바위위에서 세월을 보냈다. 암벽등반은 보기와 달리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암벽위에도 체증이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경우도 다반사라, 하루 종일을 꼬박 산에서 보내야 할 때도 있다. 떨어진 적도 있어서 깁스를 한 채 2달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유통업체 등에서 월급쟁이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한동안 자영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빠져들었던 것이 암벽등반이었고 음악듣기였다.
필자가 이분을 처음 대변했을 때, 직감적으로 희미하게 산의 냄새가 맡아졌다. 물론 필자는 산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다. 동네 약수터에 가끔 가는 것이 고작이지만 산을 좋아하는 몇 사람을 알고 있다. 후배 방송작가 한사람도 걸핏하면 히말라야 근처에 가는데, 그에게서도 언제나 산의 냄새가 풍긴다. 필자더러 히말라야의 중간까지만 같이 가서 베이스캠프를 지키라고 권유를 하는 바람에 혼비백산했지만 어쨌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사람은 직업별로 인간 됨됨이가 조금씩 다르다. 가장 순수한 직업군을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그것은 종교인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음악인도 아닌, 단연 산악인이다.
그는 바위벽에 매달린 상태에서 어느 순간 이상한 환각을 보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암벽속이 아니라 마치 스피커의 몸체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하다 환각이었다. 바위벽에 매달려 있으면 평지에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여러 소리가 들린다. 멀리 산 아래 시가지 쪽의 소리, 바람소리, 자신의 발 딛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로프 소리, 자신의 거친 숨소리 등 초고역과 중역, 저역이 한꺼번에 들려, 마치 암벽은 볼륨을 잔뜩 켜놓은 스피커처럼 너무도 생생하게 모든 음을 재생시켜 준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스피커의 몸속에 매달려있는 듯 하다 강렬한 느낌을 느낀다. 그것이 결국 그를 스피커제작으로 가는 암벽코스에 매달리게 한 건지도 모른다. 황정섭 사장은 그렇게 일과 산, 그리고 알텍이란 스피커에 매달려 덞은 시절을 다 보냈다.
그는 재즈광이다. 많을 때는 6천장의 LP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절반은 재즈와 록의 앨범들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클래식의 세계로 옮겨왔지만 그는 재즈마니아답게 지금도 알텍을 최고의 스피커로 친가. 따라서 그는 당연히 20년 이상을 구형혼타입의 알텍과 더불어 빈티지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콘덴서 장난이라는 것도 무수하게 해봤다. 열벙처럼 마란츠 7에 빠지기도했고 알텍7과 604, 80년대에 유행된 JBL, AR, 하베스, 쿼드 등과 함께 날밤을 새우기도 여러번 이었다. 스피커뿐만이 아니다. 당시 유명했던 이봉화 프리앰프를 비롯한 여러 앰프를 분해해 볼 정도로 오디오에 푹 빠져있었다. 막역하게 언제인가는 종합 오디오 메이커를 경영해봐야겠다는 소망이 꿈틀거리던 시절이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알텍 스피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불만은 다 알려져있는 것들이다. 저역구동이 힘들다는 점, 초고역이 불가능하다는 점, 중역의 음성위주로 설계되어있다는 점 등등. 알텍을 간편하게 현대화할 수 없을까?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마한 룸에서도 즐길 수 있는 현대판 알텍을 만들 수는 없을까? 고심 끝에 그는 하이엔드 빈티지라는 용어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암벽에 올라가면 죽으나 사나 올라가야한다. 도중에 내려오면 사람들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 끝에 탄생한 스피커

성격이 다소 저돌적이던 그는 마침내 운영하던 자영업을 때려치우고 2002년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했다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마음속의 각오 같은 것이다. 회사이름은 크레프(높은음자리)로 정하고 영등포에 자그마한 사무실을 하나 빌렸다. 물론 회사의 이름을 걸지 않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자신을 재촉하기위해서 이름을 내걸었다.
"사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지요. 좋은 유닛 수입해서 설계대로 네트워크와 통을 조립하고, 거기다 자기 취향에 따라 튜닝을 조금만 하면 될 걸로 믿고……."
스피커를 조금만 알게 되면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유닛 판매회사에서 제공하는 도면만을 보고 통을 주문하고, 또 네트워크 소자도 요즘은 얼마든지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다. 어려움이 없어지는 세상이 되어 가는 추세라, 요즘은 그런 식의 스피커 자작 파들도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아마 황정섭사장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에 그는 오닥스와 비파의 유닛을 택했다. 세상이 온통 스칸 스피크의 유닛으로 넘쳐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저항 같은 것이었다.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데모용으로, 적당한 통을 짜고 코일만 넣은 채 풀 레인지로 들어봤다. 비파는 처음 소리 내는 것이 쉬웠던 반면에 오닥스는 어려웠다. 그가 듣기로는 비파는 AV용에 가까운 것 같아서 포기하고 암벽의 정상을 오닥스로 결정한 후, 드디어 험난한 도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험난할 줄은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그런 시도를 하고 있을 무렵 오닥스의 유닛을 사용한 국내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이러다간 국산 영화처럼 되고 말겠군."
그런걱정이 불쑥 치밀었다.
  이런표현은 하다가 좀 된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든 상에 대한 지적이다. 기술적인 면을 떠나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임시변통으로 만든 인클로저에 유닛과 기본 네트워크를 장착한 뒤 결심을 한다.
  "6개월간 튜닝을 해보자."
"그 안에는 절대로 완성품이란 소리조차 입 밖에 내지말자."
통에 유닛을 장착한 뒤 하루에도 시간을 골라서 들어보았다. 새벽과 밤에, 배고플 때와 식후에, 비올 때와 맑을 때를 구분해서 세밀히 음을 분석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종일 음을 듣다보니 귀에 못이 박힌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또한 중역과 고역을 각각 제외하고 들어보기도 했다.
코일을 직접 감아보기도 했는데, 선재의 굵기에 따라 매번 다른 소리가 들렸다. 감아 놓으면 오차가 생겨 페어 매칭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숱했다. 갖다버린 코일만 해도 3바퀴가 넘었다. 한 바퀴의 무게가 자그마치 30kg이니, 청소하는 아줌마는 질색이고 고물장사는 반색이었다.
콘덴서와 저항을 수없이 버렸다. 하루는 50만원을 들여서 콘덴서와 저항을 여러 종류별로 사왔지만 모두 떼어버린 적도 있다. 응답속도가 느려서 클래식은 몰라도 재즈나 록은 도무지 들어줄 수가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값비싼 오일콘덴서도 사용해 보았지만, 오히려 더 소리가 뭉그러졌다. 하루에도 수십번 수정을 했다. 나중에는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2웨이를 만들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6개월이 지나자 그는 글자 그대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다. 6개월 정도만 튜닝을 하면 완전한 제품이 나올 줄 알았는데, 완벽은커녕 갖다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7개월 만에 손을 들어버린다.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하루 종일 붙어있었지만, 그가 원하던 소리는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그런 그를 만류했다.
"100%완벽한 제품이 어디 있어. 적당히 해서 내보내. 이정도만 되어도 훌륭하구먼."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한 달 간은 아무런 생각도 않고 스피커에서 완전히 떠나버린다. 더 이상 소리를 들어야 할 능력이 없어질 만큼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미쳐버리지."
희미하게 그런 공포마저 스며들어왔다. 암벽에 매달린 심정으로 6개월 간 튜닝 해보자던 계획은 미치기 일보직전에 중단되어버리고만다. 조그마한 콘덴서와 저항, 코일, 그리고 우퍼와의 전쟁에서 그는 1라운드 만에 TKO당해버린 것이었다.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아니지, 마음만 조급해서는 될 게 없지. 그래 일단 정리를 해보자.'
한 달 간 그는 음악이라고는 1분도 듣지 않고 사무실에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한 달이 지나 봄이 한창인 4월에, 그는 다시 백지 상태에서 스피커 앞에 마주 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실망투성이인 소리가들려 나왔다.
유닛을 잘못 선정했나?'
그런 생각도 한동안 들었다. 원래 오닥스의 20cm짜리 우퍼는 좀 무겁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제어를 잘 하기만 하면 뛰어난 저역을 재생해 준다. 이미세계의 명엔지니어들도 컨트롤만 잘하면 페이퍼보다도 더 좋다고 공언을 해온 유닛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베스나 스펜도어처럼 통울림이 좋아야하는데, 도무지 맛이라고는 없이 모니터적인 소리만 튀어 나왔다. 알텍처럼 중역이 강한 소리가 나오고, 저역과 고역이 따로 노는 것이었다. 이상은 없는데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동안 네트워크 소자로 주로 솔렌제 콘덴서를 사용했다. 주위에서 그렇게 권장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솔렌뿐 아니고 바이폴라,필립스,아이셀,스프라그 등 괜찮다는 콘덴서는 값만 비쌀 뿐 소리가 뭉그러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앰프의 내부를 들여다 보다가 붉은 색깔의 비마 콘덴서를 발견하게 된다. 어느 제품을 봐도 이 콘덴서를 사용한 스피커는 없었다. 옛날 타노이에서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클래식은 좋으나 록 같은 장르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동안의 정설이었다.
우퍼와 콘덴서가 맞지 않는다. 그는 기존의 이론을 무시한 채 단호히솔렌을 뜯어내고 비마로 교체하면서 코일도 새로 감았다. 다시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하이 쪽에는 솔렌, 중저역  쪽에는 비마를 사용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리는 좋았지만 임피던스가 1Ω 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저항값을 줄이는 보정 회로를 새로 만들고,코일값도 500이나 450등에서 잘라보는 등 무수한 밤샘이 또 시작되었다.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밤 , 그는 벌떡 일어나 멍한 표정으로 스피커를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비로소 고역과 중역, 저역이 조화되면서 상쾌하고 장중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 소리다."
   그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스피커를 향해 열광적인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튜닝을 시작한 지1년 만이었다. 자정이 넘은시간, 혼자서 스피커를 향해 끝없이 박수를 보내고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아직도 험난한 현실

그는 인클로저를 만들기 위해서도 6차례나 여기저기 헛고생을 했다. 별도로 인클로저를 주문할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원하는 것을 제대로 만들어주는 목공을 찾는 데만도 몇 달이 걸렸다. 2002년부터 시작해서 지난해10월에야 비로소 MK-1이라고 명명한 첫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제품의 인클로저에는 25mm MDF를 사용했는데, 무게가 무려 40kg이나 나간다. 내용적은 최대한 줄여 75ℓ.
필자는 아직 초봄의 쌀쌀한 날씨에, 신촌에 있는 크레프의 사무실에 가서 소리를 들어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 어, 이건 분명 알텍의 소리인데?' 선명하고 상쾌하며 육중하고 매끄러운 중역, 홀을 꽉 채우는 저역의 무게, 게다가 재빠른 저역의 반응과 뛰어난 해상력 등 상당히 놀라운 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더 자세히 들어보지 못하고 아쉬움에 10여 일 후 다시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마치 전혀 새로운 스피커처럼 풍요롭지만 빈티지와 같은 온화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이 스피커가 그때 그 제품 맞습니까?"
몇 번이나 묻다가 무심코 보니 스피커가 벽에 더 가깝게 붙어 있었다. 벽 수리를 하면서 조금 집어넣은 것이라고 한다. 다시 처음처럼 약간 끄집어내 보니 여지없이 알텍처럼 상쾌한 소리가 다시 나왔다. 고급 스피커의 정체란 이런 것이다. 어디에 놓아도 비슷한 소리가 나오는 스피커와는 근본이 다른 것이다.
"나와 있는 이론은 전혀 맞지 않더라구요. 이론은 다만 참조사항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걸 알게 되었지요."
황정섭 사장은 마치 자신이 2년쯤 지옥에 다녀온 기분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공부했습니다."
최고의 유닛과 콘덴서, 그럴듯한 통만 갖추면 최고의 스피커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2년간의 암벽에서 통렬하게 체험 했을 것이다.
그의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이런 통렬한 튜닝 끝에 내놓은 명작이지만 국산품이라는 편견, 부품 값에 인건비만 조금 더 얹어서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 인터넷에 횡행하는 사시안적인 낭설의 벽을 혼자서 힘겹게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스피커가 300만 원대 중반의 가격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이라는 데 ,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들어보고 나서 집에서 사용하겠다는 오디오 숍의 경영자와 똑같은 소리가 필자의 입에서도 몇 번이나 감돌았다. 아니 놓을 자리만 확보가 되면 필자는 아무런 미련없이 꼭 그런 전화를 걸 생각이다.

Articles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