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기

파워앰프 자작의지가 사라졌습니다ㅠㅠ

by 윤영진 posted Oct 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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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신규 자작보다 오래된 빈티지 기기 오버홀이
더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신규 제작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빈티지 오버홀은 원래 있던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려야 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요리보다 설겆이가 더 힘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회로도라도 확보되어 있으면 다행인데,
회로도 없이 오버홀 하자면,

일일이 내부를 측정해서 스스로 회로도부터 그려야 하는데
어렵다기 보다는 짜증나는 일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회로도를 그리다 보면,
먼저 사용자들이 저항 같은 것을 수리하며 교체해 놨는데,
이게 본래의 저항값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도 ADC 파워앰프 오버홀 하면서 이런 경우에 봉착했습니다.

다행이라면, 모노블럭이라 대부분 다른 한 쪽을 참고해서
본래의 저항값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거의 한 달 동안 틈나면 조금씩 오버홀을 하다가
드디어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 작업을 해서 오늘 낮에
완성했습니다.

양 쪽 블럭 간에 각 부위 전압도
거의 2% 오차 범위 안에 들게 페어로 맞췄습니다.


오래된 기기답게, 그리고 전원부 콘덴서와 커플링을
전부 새걸로 갈았기 때문에 아직 에이징은 요원하고...

더욱이 수십년 만에 작동이 되다 보니
웜업 시간도 깁니다.
바이어스가 안정되고 제소리를 내기까지 40분이 넘게 걸립니다.
점점 사용할수록 웜업 시간도 줄고
에이징도 될 겁니다.

......

웜업이 다 된 후 몇 시간 음악을 듣고나서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일단 너무 소리가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습니다.

반면, 그동안 자작한다고 바친 정성과 시간과 돈과 정열이
헛된 것처럼 느껴져서 갑자기 허무감이 찾아왔습니다.

나름 자작을 하면서
자부심도 가지게 되었는데
이 70년 된 앰프가 사뿐히
저의 자작 앰프들을 압도해버렸습니다.

물론 제가 만든 것은 모두 싱글형이라
절대 비교는 어렵지만,
출력 방식의 차이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음질을 보여줍니다.

진공관 앰프에서 최상의 트랜스포머를 쓰지 않고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ADC의 트랜스포머는 주로 프리용을 사용해 보고
좋다고는 느꼈지만,
파워용은 프리용에서 느낀 것보다
더 대단한 트랜스포머입니다.


집 가까이 빈티지 오디오점이 있어서
약 20년 가까이 제 집처럼 드나들면서
온갖 유명하고 값비싼 명품 빈티지 파워앰프들을 거의 다
들어봤습니다.
아마 들어 본 종류 수로는 한국에서
손가락 꼽아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동네 오디오점에서 들을 수 없던
WE이나 KLANGFILM 앰프들은 남의 집이나 샾을 다니며
귀동냥을 했습니다.

이렇게 들어 본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소리가 납니다.

제 평생, 끝까지 보유하고 갈 기기로
LCR이큐 한 대, 프리앰프 3대,
싱글파워 3대, PP파워 2대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PP파워 두 대가 채워졌습니다.
(한 대는 역시 80년 정도된 2A3 PP)

PP파워 2대 정도 만들려고 모아 놓은 트랜스포머와 진공관,
부품들은 모두 처분해야겠습니다.

그동안 구상했던 마지막 자작 프리와 자작 싱글파워
(프리는 출력관 트랜스포머결합형, 파워는 캐소드 쵸크를 사용한
올 트랜스포머 결합형....)
한 대씩만 더 만들고 자작에서 손을 떼어야겠습니다.

이 두 대 만들 부품 외에는
전부 정리를 하고 손을 떼야겠습니다.

한 두 대 만드는 것은 모를까
자작 중독에 빠지면 돈도 건강도 다 잃고 만다는 걸 느낍니다.

그동안 이 자작게시판에서 배운 것도 많은데.....

에고.....ㅠㅠ;

좋은 앰프 장만하고 기분 좋아서 길길이 뛰어야 하는데
기분은 영 찝찝하고 허망하고 맥이 빠집니다.

자작 아무리 해봤자 소용없다는
자기 부정 때문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