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장현 1집 (신중현 작,편곡집)
1. 기다려주오
2. 무소식이 희소식
3. 안개 속에 여인
4. 타향에서 만난 사람
5. 외롭지 않아요
1. 초원 (히-식스)
2. 님은 먼 곳에
3. 마음 (이정화)
4. 내 마음 모두 주오 (임희숙)
5. 슬픈 고백 (임희숙)
신중현 사단의 최고 인기 남자가수 장현
신중현 사단의 최고 인기가수 장현의 데뷔 음반이다. 현재 매우 희귀해 고가의 앨범으로 대접받고 있는 이 음반의 재발매는 이번이 처음이다. 쓸쓸한 감정이 실린 느린 소울 풍의 창법을 구사했던 장현은 신중현 사단의 가수 중에서 이질적이고 개성 넘치는 보컬로 사랑받았던 가수로 기억된다.
신중현 사단 가수들은 대부분 감정을 토해내는 드라마틱한 창법을 구사했지만 중저음의 음색을 지닌 장현은 오히려 감정을 절제하는 독창적인 창법으로 신중현의 창작곡을 맛깔나게 소화했다. 이 진귀한 음반은 독집은 아니지만 장현의 노래가 처음으로 담긴 데뷔음반이란 점에서 가치가 높다. 데뷔곡 <기다려주오>를 히트시키며 단숨에 주목받았던 장현은 이후 신중현 사단의 간판가수로 떠오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무명 가수 장현과 신중현의 만남
신중현은 1968년 펄씨스터스와 1969년 김추자의 데뷔 앨범을 히트시키면서 자신의 사단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히트곡 제조기’로 각광받기 시작한 그의 사무실에는 기존 가수들은 물론이고 무수한 가수 지망생들이 곡을 받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주가가 오른 신중현은 이 음반이 발매된 1970년 서울 명동의 오비스 캐빈 3층에 위치한 코스코스 살롱 클럽의 하우스밴드인 신중현 오케스트라와 해변 피서지용으로 급조한 제로악단 그리고 신중현 사단 가수들의 음반 녹음을 위한 캄보밴드까지 동시에 3개 밴드를 용도에 따라 운영했다. 제로악단 그리고 신중현 사단 가수들의 음반 녹음을 위한 캄보밴드였다.
장현(본명 장준기)는 대구에서 출생한 것으로 일부 알려져 있지만 실은 경상북도 울진에서 해방을 앞둔 1945년 4월 27일에 태어났다. 울진 매화중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상경해 서울 청운중학교로 전학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노래에 재능이 탁월하지는 않았지만 노력파였던 그는 진로를 바꿔 무명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지방의 밤무대를 전전하며 몇 년 동안 고단한 생활을 계속했던 장현은 록의 대부 신중현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장현의 데뷔앨범이 발표된 1970년은 신중현이 가장 왕성하게 신인가수 양성에 몰두하며 음반기획에 열정을 다했던 시기였다.
실제로 장현이 데뷔한 1970년만 해도 박인수, 임희숙, 임성훈, 바니걸스, 민아, 주현 등 수많은 가수들이 신중현의 조련을 통해 음반 데뷔했다. 사실상 사단을 구축하기 시작한 신중현은 최고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던 해였다. 지방공연을 다녔던 신중현은 대구 수성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하게 장현의 노래를 듣게 된다.
신인발굴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그의 레이더망에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중저음의 음색으로 노래하는 무명가수 장현이 포착되었다. 일주일간 호텔에 머물렀던 신중현은 장현의 데뷔음반 취입을 염두에 두고 <기다려주오>를 비롯해 <안개 속에 여인> 등 5곡을 만들었다.
신중현은 데뷔시절의 장현에 대해 “장현은 노래를 썩 잘하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패기와 끈기에 감동을 받았다. 좋은 목청과 음악적 재질을 천부적으로 타고나고도 노력하지 않는 것 보다 장현의 경우처럼 재질은 떨어지더라고 끈기 있게 노력하는 가수가 더 생명력이 길다.”고 회고했었다.
신중현 사단의 인기 가수 장현의 데뷔 음반
깔끔한 정장차림의 장현 사진이 커버를 장식한 이 음반은 장현의 독집은 아니다. 타이틀곡 <기다려주오> 등 장현이 노래한 5곡은 1면을 장식했고 2면에 수록된 김추자가 먼저 발표했던 <님은 먼 곳에>의 리메이크 버전까지 총 6곡을 노래했다. 나머지 곡은 이정화, 임희숙, 히식스가 이미 발표한 곡을 재 수록했다.
1면을 장식한 느릿느릿한 화성으로 이뤄진 신중현의 신곡들은 장현의 중저음 음색과 절묘하게 화학작용을 이루며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타이틀곡 <기다려주오>와 <안개 속에 여인>이 발매 직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장현은 단숨에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다. 장현은 특유의 저음과 느릿한 창법으로 인해 나이보다 노숙하게 보여 ‘애늙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2면 타이틀곡인 히식스의 <초원>은 신중현 작곡으로 표기되었지만 오류이다. <초원>을 제외한 나머지 9곡 모두는 신중현이 창작했다. 음반을 채우기에는 장현의 취입곡이 부족해 B면에는 히식스의 <초원>을 비롯해 이정화의 <마음>, 임희숙의 <내 마음 모두주오>, <슬픈 고백>이 함께 수록되었다.
히식스의 <초원>은 이미 1969년 발표된 양미란과 히파이브의 스플릿 음반을 통해 발표된 히트곡이다. 이정화의 <마음>은 덩키스 독집, 임희숙의 <내 마음 모두주오>, <슬픈 고백>은 신중현밴드 퀘션스의 독집을 통해 먼저 발표되었다.
신중현 사단의 핵심 가수로 성장한 장현
전성기 시절 지상파 TV에 등장한 다소 칙칙한 장현의 모습으로 인해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린 시절에 구두닦이까지 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런 소문으로 인해 측은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대중이 많았지만 장현은 가창력만큼은 자신감을 넘쳤다. 당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신중현 사단 가수 중 절창의 가창력을 구사해 최고의 소울 가수로 평가받았던 박인수와 공개적인 노래대결을 언론을 통해 요구했었다.
데뷔앨범이후 장현은 1972년 신중현 밴드 더멘과 함께 ‘장현 & The Men’이라는 이름의 앨범을 발표했다. 역시나 장현의 독집이 아니지만 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은 그가 이미 데뷔앨범에서 히트곡을 배출하며 신중현 사단의 간판 남자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음을 증명한다.
이후 장현은 발표하는 독집마다 <미련>, <석양>, <마른 잎>, <오솔길을 따라서>, <나는 너를> 등의 히트곡을 쏟아냈다.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던 그는 70년대를 대표하는 탁월한 중저음의 남성 보컬리스트로 기억된다. 하지만 활동 금지된 신중현과 마찬가지로 장현도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가수 활동을 접고 의류관련 사업가로 변신했다.
1976년부터 18년간 사업에 전념했던 그는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이후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투병과 회복기간 동안 콘도 사업을 새롭게 시작해 성공했다. 이후 현지에서 라이브 카페 ‘미련’을 경영하며 음악에 대한 미련을 놓지 않았다. 장현은 2008년 11월 30일 지병인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발표 된지 반세기가 넘어 LP버전으로 재발매된 이 음반은 현재 신중현 관련 음반 중에서도 실물을 보기 힘든 매우 희귀한 앨범으로 대접받고 있다.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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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컬러 음반은 제작 공정상 색상의 차이나, 얼룩이 있을 수 있습니다.
2. 재생에 지장이 없는 미세한 스크레치가 있을 수 있읍니다.
3. 음반의 튀는 현상은 음반 불량이 아닌 톤암과 침압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생기는 현상입니다.
4. 조절 기능이 있는 턴테이블을 사용하거나 무게 중심을 바늘 쪽으로 조정함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