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빈티지 스피커의 핵심체크

by 항아리 posted May 28,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얼마 전
 우리동네 동호인께서 염원이자 숙원이던 2M x 2M짜리 대형평판을 완성했습니다.
 알맹이는 젠센의 A12 필드스피커, 전원부는 제가 꾸몄습니다.

 

 초단관을 인터스테이지로 구동하고, 출력관을 당연히 출력트랜스로 구동하는 제 싱글앰프를
들고가서 대형평판에 물려 소리를 들었습니다.
 

 청음은 역시 대편성부터,
 (대편성이 안되면 실내악, 독주곡, 성악 등이 제아무리 아름답고 예쁜 척 해도 이미 기형이자 불구의 소리,)

 

 오케스트라 파트별로 해상도 좋은 그림을 눈앞에 두고 보듯 제각각 펼쳐지는 소리, 연주...
 올올이, 실실이 횡으로 춤추듯 공간을 긋는 바이올린 파트,
 한 타이밍 뒤따라 따라오며 바닥에서 묵직하게 긁어주는 첼로와 더블베이스 파트,
 너무나도 또렷하고 맑은 목관과 금관들, 
 오케스트라 저 뒤에서 연주가 나직히 흐르는 순간, 살살 굴리는 팀파니 소리까지
 둥....둥....둥....
 몰아칠 땐 콰르르르르릉........쾅쾅쾅! 노도처럼, 천둥처럼.

 그 모든 게 과장과 꾸밈이라곤 없는 지극한 자연스러움. 실제감.
 2M가 괜히 2M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압도적인 음장과 공간감.....

 

 2M짜리 대형평판의 소리는 처음 들어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태연하고 담담하게 감상을 말했습니다.

 

 음...괜찮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대형평판의 소리가 저를 따라오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음악을 틀지 않았습니다.
 이미 제 A7이 시시한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심심해져서 앰프에 불을 넣고 음악을 재생했습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아기자기한 느낌....아니,그래도 알텍인데....말이 아기자기지, 빈약, 왜소, 거기다가 초라........
 으음...빌어먹을 2M 평판.....

 
 다음날 우리동네 동호인이 제 집에 놀러왔습니다.
 뭔가 확인하려는, 자기 평판이 더 낫다는 확인을 하러 온 낌새였습니다.
 선수쳤습니다.

 

 우리집은 2M 평판을 놓을 수가 없어,
 왜? 자리가 안되니까.
 모름지기 인간은 자기 자리에 맞게 할 줄 알아야 돼. 오디오질이든 뭐든.

 나라는 인간은 뭐든 내 형편에 맞게 하지. 가장 좋아하는 오디오질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되며

되었던 적도 없다구.

 

 저는 그런 자세가 참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라고 확신하며,
 진리 앞에서는 2M 평판이고 뭐고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동네 동호인은 딴 얘기를 했습니다.

 

 역시 혼 소리는 혼 소리야.
 나는 꼭 혼 시스템도 꾸미고 말 거야.

 

 저는 그 다짐을 들으면서도 2M 평판의 소리를 기억하면서 열등감과 열패감을 다스리느라 바빴습니다.
 마음껏 뭔가를 해볼만한 공간을 갖지못한 것이 거의 처음으로 한스러운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먼동네 동호인께서 위 사진 중 알텍 A4 인클로저인 H210을 구했다고 자랑질을 해왔습니다.

 

 아아...이렇게 허무할 수가....

 나는 왜 처음부터 이 스피커로 오디오를 하지 않고 뭐하자고 쓸데없는 것들에 그렇게도 매달렸을까....

 

 탄식조였지만, 엄청난 자랑이었습니다. 즉, 염장질.

 그런데 그 염장질 중에 솔깃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이건 양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경첩으로 연결된 건데, 접은 소리 하고 편 소리가 너무 달라서...운운....

 

 그 순간  번개처럼 스치는 한 줄기 빛!
 혼 구조와 평판 구조의 만남!
 
 그거 옆 길이가...
 잠깐만요, 2M, 날개를 펼치면 2M가 되네요.
 헉, 2M....그럼 높이는...
 있어 봐라...2M하고도 17,  217.
 

 윽, 좆나게 크구나.

 2M 대형평판이나 다름없는 크기에 가운데는 혼.

 사진으로만 봤던 아주 오랜 초창기 스피커들의 모습이 앞이마 앞에서 책장이 넘어가듯 지나갔습니다.

 

 그거다!

 시작이 곧 끝이구나.
 그것은 바로 혼+평판!

 

 그것은 깨달음과 같았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닌, 진작 있었던 것에 대한 깨달음.

 하나의 깨달음은 행동으로 옮길 때에만 가치를 갖게 됩니다.

 즉시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목재소가 가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그 목재소 인부들이 해달라는 대로 싫은 내색없이 잘 해준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목재소로 직행하여 어떤 걸림도 없이 순조롭게 합판과 각목을 자르고 
 목재소 옆 철물점에서 맡겨놨던 물건 찾듯 길다란 길이의 경첩도 구하고,
 귀엽고 포동포동한 처녀들이 셋이나 있는 도매문구점으로 폭풍처럼 달려가 먹물도 구입한 뒤,
 집에 도착하자마자 뚝딱뚝딱 짜맞춰 매달고 먹물칠을 했습니다.
 간단히 끝.

 

 비록 2M는 안되지만,
 엄연한 혼+평판의 소리.

 

 그 소리는 소리의 경로 어디를 어떻게 해도 안되고,
 오로지 혼+평판의 구조에서만 나는 소리입니다.

 

 소리에 관한 그런 어김없고 분명한 사실은 소리의 경로 전반에 걸친 구성과 방식의 차이 등...
 어느 부분에서든 자주 확인되긴 하지만,
 혼+평판 구조에서 오는 소리의 차이만큼 기존의 것에 대해 파괴적이고 극적인 부분은 드문 것 같습니다.

 

 혼 만세!
 평판 만세!
 혼+평판 만만세!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