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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녀석을 위하여! 프랑켄슈타인-괴물의 탄생

by 항아리 posted Apr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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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진공관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6V6, 6L6, 6Y6 삼형제를 좋아합니다.
 
 진공관 시대는 곧 6V6과 6L6의 시대나 다름없습니다.
 대형기엔 6L6이, 장전축 같은 소형기엔 6V6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그것은 곧 그 두 녀석의 능력이 가장 쓸만하다는 뜻과 같습니다.

 제가 채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를 주도했던 녀석들을 제 입장에선 그렇게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공관의 시대가 저물고 트랜지스터 시대가 열리면서
 6V6과 6L6은 흔해 빠진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두 녀석을 장착한 기성품들은 세월 앞에 퇴색하고,
 오버홀이란 이름으로 본연의 능력을 상실한 채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6V6과 6L6은 몹쓸 하급관 내지는 흔해 빠진 범용관으로 취급받게 되었습니다.

 

 제겐 좋은 흐름이었습니다.

 

저는 해병대를 좋아하지 않고,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말은 더욱 좋아하지 않지만,
 누구나 6V6, 6L6을 최고의 진공관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제가 6V6, 6L6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오디오는 취미이며, 취미는 뭔가 특별한 것일수록 끌리는 속성이 있습니다.
 6V6과 6L6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고전적인 직열3극관을 선택하는 흐름 또한 그런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6V6, 6L6에서 다른 진공관들은 낼 수 없는 소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제가 듣기엔 그것이 가장 정상적인 소리라는 판단을 얻을 수 없었다면,
 그것이야말로 6V6, 6L6을 쳐다보지 않을 분명한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6V6, 6L6, 6Y6, 그 삼형제를 다른 진공관들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소리가 있어 좋아합니다.
 장님 동네에선 애꾸가 특별한 존재이듯,
 특별함이 지나쳐 뭔가 정상적인 범위에서 벗어난 특별함이 기승을 부린다면,
 그땐 오히려 정상적인 범위에 든 녀석을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니, 그런 의미의 특별함입니다.
 
 6V6, 6L6, 6Y6 삼형제에겐 실연에 가까운 톤이 깃들어 있습니다.
 만져질 듯한 소리의 굵기와 줄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곁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 호흡과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 폭넓고 풍부한 음악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똥꼬를 간질간질 잘 간질여주면 그것들을 그대로 풀어내고 토해내는 걸 이미 수도 없이 확인했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Y6이란 놈은 뭔데 6V6, 6L6에 슬쩍 묻어가는 것일까, 하면,
 성향이 같은데, 과한 히터 전류와 낮은 동작전압에 대전류, 그리고 둔감한 성감대(낮은 스크린그리드 전압) 등으로
 만들기부터가 까다로워 진작부터 소외를 당해왔는데,
 그런 까닭에 제가 애정을 보태 끼워넣은 것이니 6Y6 짓이 아닌 제 짓입니다.

 

 6Y6은 6V6, 6L6에 비하면 둔하고 게으르며 무식하고 저능합니다.

 그러면서 밥은 가장 많이 처먹습니다.

 버림받을 조건을 두루두로 갖춘 녀석입니다.


 하지만 밥만 많이 처먹는 녀석은 아닙니다. 적어도 먹는만큼은 밥값 합니다.

 어느 정도 염치도 아는 녀석이라 밥값도 적게 듭니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 놈입니다.
 
 진작부터 삼형제에 주목하고 그 중 6Y6을 굳이 선택해서 곁에 끼고 온지 십여 년입니다.
 그 사이 나름대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은 사진과 같은 흉측한 괴물이 되었습니다.
 내부에 인터스테이지 트랜스 한 조와 드라이버 트랜스 한짝을 어거지로 끼워넣은 까닭에 그 사이 험도 커져서
결국 원래 케이스를 자르고 그 사이에 다른 케이스를 잘라 끼워넣어 기웠습니다.
 트랜스들간 유도험의 주범인 전원트랜스를 좀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고육책인데,
 케이스를 새로 하지 않은 까닭은 단 한가지,
 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저 놈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이 되었습니다.
 6Y6 PP입니다.


 삼년여 전쯤에 모든 진공관에 트랜스가 달라붙었고,
 그럼으로써 이전과 달라진 동작에서 바른 길을 찾고 이해하기를 반복하다가 멈춘 데에 딱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 놈이 저 꼴이 된 건 불과 보름 전입니다.
 완성품입니다.
 제 능력에선 더 손댈 데가 없는 괴물이자, 사람을 제외하고선, 제 가장 좋은 친구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저는 저 녀석이 자랑스럽습니다.


 (아, 그 옆에 오로지 6V6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음악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6V6 프리앰프도 가깝고 좋은 친구지만,
6V6은 저 말고도 아끼고 사랑해주는 분들이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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