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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텍 A7 이야기

by 김공남 posted Jan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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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텍 A7 이야기

                                                                                                                                                                       배홍배

  알텍 스피커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피커는 드물 것이다. 지난 수 십 년간 수많은 스피커를 사용하면서, 하이파이 저널에서 오디오 평론을 하면서 몹쓸 스피커는 만나보지 못했다. 다만 내 취향과 맞지 않는 것이 있었을 뿐 듣기 거북한 스피커는 없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 알텍 대형 스피커들은 몹쓸 소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니 거의 그랬다. 탄노이는 부드러웠고, 제이비엘은 쉽게 소리를 내주었고, 젠센은 화사했고, 트루소닉은 깔끔했고, 일렉트로보이스는 사실적이었고, 보작은 풍성하고 쾌적한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알텍은 언제나 내 귀를 괴롭힐 뿐이었다.

  알텍과 내가 동거한 기간들은 대게 한두 달 이내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우리 집에서 쫓겨난 알텍 스피커들이 다른 집에선 전혀 다른 소릴 내는 것이었다. 내 방에서 부르는 내 노래는 내 스스로 들어주기 힘든데 학교 교실에서 부르면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렇다. 공간의 문제다. 교실에선 직접 음과 간접 음이 적절하게 섞여 풍성하게 들리고 직접 음만 들리는 좁은 방안에선 소리가 메마르게 느껴진다. 물론 좁은 공간에도 반사음은 존재하나 직접 음과의 시간차가 거의 없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알텍 스피커들은 내 방을 들락거렸다. 타 유닛에 비해 값이 싸고 흔한 이유도 있었지만 멋진 뽀대와 오기의 발동 혹은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알텍은 어김없이 내 기대를 저버렸고 오디오에 대한 환멸감까지 안겨주었다. 내 좁은 방과의 타협이라든가 알텍 스피커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 극장에서 경험했던 그 거대하고 광포한 음에 이미 내 영혼은 굴복 당한 상태였다. 나는 거만한 알텍을 영접할 준비가 늘 되어있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오디오질을 하느라 돈을 모을 틈이 없었다. 가난한 교사, 글쟁이에게 할당된 공간은 평생 33평을 넘지 못했다. 영어강사, 과외, 번역, 사진 등으로 약간의 별도 수입은 있었으나 모두 배고픈 오디오의 커다란 입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나의 음악 감상 공간은 책장과 레코드장을 제외한 가로 3.5m 세로 4m 남짓 되는 작은 서재다. 이 방에서 알텍과의 싸움은 언제나 나의 패배로 끝났다. 인파이터 복서 같은 알텍에게 내 좁은 방은 나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사각 링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공간이다.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책이나 타인에게 들어서 알게 된 이론과 방 안에서 직접 큰 북을 두드려가며 실험을 통해 알게 된 스피커와 벽과의 적정 거리 확보는 내겐 불가능했다. 스피커 통 자체에서 직접 음과 간접 음이 나오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저런 궁리 끝에 기존의 알텍 통 형식들을 과감히 버리고 나름대로의 설계에 들어갔다. 유닛에서부터 처음 직접 귀에 소리가 도달하는 시간과 통 내부에서 반사된 음이 귀에 들리는 시간차가 긴 백로드혼형 인클로져를 생각하게 되었다.

  알텍에도 백로드혼형이 있긴 하지만 너무 커서 가로의 길이를 조금 줄인 제이비엘의 C-55통을 택했다. 오래된 미제 18mm 미송합판으로 주문 제작한 인클로저에 미리 준비한 803b 우퍼, 802d 드라이버, 511b 혼 그리고 n500d 네트웍을 부착했다. 과연 원하는 소리가 나올까?! 과거 그 오소독스한 외양을 못잊어 알텍 612통에 젠센, 트루소닉, 제이비엘의 유닛들을 넣어본 적이 있다. 그만큼 알텍의 인클로져들은 내게 있어 한 번도 좋은 소리로 봉사한 적은 없었지만 상상력으로 단련된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근데 이 허술해 보이는 통이 과연..!?

  떨리는 마음으로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렸다. 아-, 우뚝 서 있는 인클로져의 입술은 아직 다 말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침묵을 지키는 거대한 성문이었다. 불사이군의 정신은 여기에도 있는 것인가. 이건 아니다.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제이비엘의 깊은 계곡에 숨어 든 알텍 유닛들이 낮게 읊조리는 한의 어두운 울림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알텍의 정신은 스스로 깊이 침잠하는 병리현상을 보일 뿐 또다시 내 암울한 음의 정서를 현실 안으로 투기시켜 나는 폐허가 된 음악의 풍경의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이었다.

  해외 싸이트를 뒤졌다. 백로드혼형 인클로져를 사용할 땐 드라이버를 우퍼와 역상으로 연결하라는 알텍 본사의 권고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 이틀 사흘...이레가 지나고 상상과 현실의 접경을 구불구불 지나와 음이 멈춘곳, 정적에 순응하며 분노와 용서의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그 곳에서 안온한 비애의 음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 건 익숙한 음악 환경으로부터 멀리 일탈한 후였다. 음악 감상이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대하여 갖는 인식의 폭에 인간 정신의 운동의 폭이 오버랩되어 탄생하는 정의 세계란 걸 알게 된 며칠이었다.

  날이 갈수록 소리가 달라졌다. 저음이 기대만큼 많아진 것은 아니나 기분 좋은 배음이 온 몸을 감싼다. 나 스스로 영문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어쿠스틱이란 말을 실감하지 못했었다. 알텍 고유의 음에 AR(acaustic research)3에서 느꼈던 부드럽고 풍성한 분위기 있는 음이 조금 더해졌다. 가정에선 드라이버를 6db 정도 감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꾸만 드라이버의 음압을 올린다. 나를 스쳐간 알텍 유닛들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것은 604b, 20년 전 쯤 612통에 넣어 피셔400 리시버와 들었는데...좋은 유닛인줄 그 땐 몰랐었다.

  소리전자 알텍 동호회 게시판에 ‘알텍 A7 소리가 이것 밖에 안되나요?’ 라는 질문이 있었다. 질문자는 내노라 하는 고수들의 A7을 들어본 후였고, 우리 집 알텍도 듣게 된다. 그리고 내 것과 같은 통을 제작한다. 그는 내친김에 나와 같은 튜브링크의 TP-1classic도 들였다. 알텍의 시끄럽고 쏘는 소리는 시행착오의 열차와 함께 떠나갔다. 백로드혼 깊은 계곡을 훑는 음의 순수 이념이 내 척박한 정신의 간이역에 다시 어느 방향의 이정표를 세울 것인지..오늘도 연착하는 소리의 완행열차를 기다리며 나는 무엇을 향해 전율해야 하는지...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a단조에 바늘을 내리고 불안과 안정의 소리골을 따라간다.

  나의 알텍 A7은 편법이다. 편법은 1회성이다. 나만의 좁은 공간을 벗어나면 사라질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몇 사람의 오디오 애호가들이 소릴 들어보길 원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는 지금 정형(originality)으로부터 멀리 나와 있다. 낯선 곳에서 조우하게 되는 불안하고 공허한 심리 상태의 한가운데 서있다. 어쩌면 이루지 못한 음의 세계에 대한 보복의 순례를 결행하고 있는지 모른다. 스스로 음악의 황무지에 추방되어 발밑에 지천으로 깔린 외로움을 외면한 채 더 깊은 고독의 들판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ㅡ가입 시 휴대폰이 아내 명으로 되어있어서 아내 명으로 가입했습니다. 글을 올린 이와 글 쓴 이가 다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ㅡ헐한 오디오 에세이 쯤으로 편하게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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