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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노이 오토그래프와 오디오 바꿈질

by 주진환 posted Jul 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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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노이 오토그래프와 오디오 바꿈질

<< 이글은 시공사에서 발간된 윤광준 에세이 \"내 인생의 친구\"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몇 년을 보태면 오디오에 빠져 허우적거린 지 삼십 년이 된다. 청계천표 조립전축으로 시작해서 오디오의 궁극이라는 하이엔드 기종들까지 두루 섭렵해 보았다. 값비싸고 거창한 오디오를 마음대로 들어볼 수 있었다. 그 바탕은 ‘오디오 평론가’란 직함 때문이다. 오디오 잡지의 관련 칼럼과 기사를 위해 수입사들은 세상의 좋다는 오디오 기기를 끊임없이 보내주고 있다.

속사정 모르는 오디오파일(audiophile: 오디오에 심취해 있는 하이파이 애호가)들은 얼마나 좋겠느냐고 부러워할지 모른다. 겉모습만 본다면 맞는 얘기다. 싫건 좋건 적어도 오디오에 관한 한 일반 오디오 파일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호사를 누린 것은 분명하다. 오디오를 매개로 지겨울 만큼 온갖 짓거리를 해보았고 사람들을 만났으며 되지도 않는 말들을 하고 다녔다. 오디오가 삶의 큰 축임을 부정하긴 힘들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는 직업이 되면 괴롭다. 마치 사랑의 갈구가 현실이 되면 피곤해지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도 적당한 관계의 유격과 뒷걸음 질 칠 퇴로가 있어야 편해지는 법이다. 똑같은 긴장이 계속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은 워커홀릭(workaholic)말고 누가 또 있을까?

나는 놀기 좋아하는 배짱이형 인간이다. 배짱이가 개미처럼 살면 이미 배짱이가 아니다. 열심히 놀아야 할 본분을 잊고 일을 해야 하는 배짱이의 비애는 더 큰 고통이다. 각각의 역할에 충실할 때 더 큰 기여의 방법이 생긴다는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다. 좋아하는 오디오가 일이 되어버린 출발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쥐지도 놓지도 못하는 오디오 평론가란 직업은 놀기 좋아하는 중년 남자의 고민을 하나 더 얹어 주었다.

일로서의 오디오는 음악을 듣기 위한 고상한 행위가 아니다. 웬만한 애들 몸무게쯤 되는 무거운 파워앰프나 어른 키만 한 높이의 스피커를 옮기는 일은 ‘헤라클레스’의 괴력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다. 여기에 흩트러진 국수 면발 같은 복잡한 케이블을 빼고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을 반복하는 일은 심성을 다스려야 할 만큼 짜증스럽다.

마감시간에 쫓겨 하루 종일 몇 대의 오디오 기기를 바꾸어가며 똑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일은 하나도 즐겁지 않다. 천상의 음악과 사운드는 고역이 어떻고 저역이 어떻고 하는 문장의 수사로 바꿔야 한다. 음악이 화음으로 들리지 않고 좋은 사운드가 쾌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의 오디오 라이프는 어느 때부터인가 테스트, 테스트로 점철되었다. 오호 통재라! 음악의 즐거움이 불감증으로 바뀐 불쌍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얼마 전 미혼의 여자 후배가 작업실에 들렀다. 그녀는 문짝만 한 크기의 스피커가 작업실 한쪽 면을 채우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우와! 하는 감탄과 함께 이렇게 큰 스피커도 있느냐고 물어왔다. 하긴 요즘 고만고만한 크기의 스피커가 전부인 줄 알았던 후배의 경탄은 당연했다. 환영의 뜻으로 아론 코플랜드의 ‘평민을 위한 팡파레’를 틀어 주었다. 후배는 스피커의 크기에 걸맞은 웅장하고 위력적인 사운드에 또 다시 감탄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오디오파일의 세계를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곡이 끝나자 그녀는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 이래서 오디오에 빠지는구나.”

몇 곡의 음악을 더 들려 주었다. 자기도 쓸 만한 오디오 세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새로 살 것 없이 오디오파일인 남편을 만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는 말, “오디오 하는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말래요. 오디오에 빠져 여자를 개가 닭 쳐다보듯 하거든요.” 내가 거들었다. “아니, 오디오처럼 마누라 갈아치울까봐 그러는 거지.” 우리는 같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녀는 오디오에 빠진 남자의 습성을 이미 다 아는 듯했다.

음이 좋아진다면 쥐약이라도 먹을 자세가 되어 있다는 오디오파일의 기기 바꿈질이라는 습벽을 공통적이다. 아무리 성격이 느긋해도 오디오 문제에 관한 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세상이 두 쪽 나도 바꿈질은 당장 해결해야 하며 오전에 들여놓은 기기를 오후에 다시 무르는 경망스러움도 얼마든지 감수한다. 동료에게 밥 한 끼 사지 않는 짠돌이라도 오디오에 관한 한 화폐가치 감각이 무뎌져 몇백만 원 정도를 기꺼이 쓰는 기행은 보통이다.

더 이상의 사례를 말하면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므로 이 정도로 그쳐야겠다. 나 역시 똑같은 과정을 답습하며 오디오를 바꾸어댔다. 누구 말대로 마누라 갈아치우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어떻든 이 바꿈질의 결과로 오디오는 취미가 아니라 직업으로 발전했다. 일과 함께 오디오 바꿈질은 겨우 진정되었다.

오디오 바꿈질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능의 문제보다는 기기의 존재감을 좇는 데 있다. 존재감이란 사물의 가치가 총체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힘이라 불러도 좋다. 오디오 기기의 존재감은 진정 좋은 기기에서 더 크게 발산되게 마련이다. 이런 기기는 당연히 음도 좋다. 물건의 신화가 탄생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디오 기기의 존재감은 마치 빼어난 미인이 갖는 프리미엄과 비슷할지 모른다. 더 좋고 아름다운 물건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눈과 귀를 현혹시킨다. 미인에 대한 갈망이 잠재워지지 않듯이 좋은 오디오 기기에 대한 소유욕은 커져만 간다. 나 역시 존재감이 넘치는 기기를 명기라 부르는 이유를 함께 진심으로 납득하고 있다. 바꿈질, 이는 결국 명기에의 갈망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일의 부담을 덜고 나만의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일은 행복하다. 이제 오디오 주무르는 일이 지겨워지긴 했지만 음악을 듣지 않고 살 자신은 없다. 스산한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브람스나 밀러의 교향곡을 들어야 한다. 늦은 밤 요절한 여가수 ‘에바 캐시디’의 잔잔한 음성이나, 걸걸한 목소리로 부르는 ‘톰 웨이츠’의 노래로 인생의 깊은 맛을 느껴보는 맛도 각별하다. 생활 속에서 음악의 즐거움을 실감하기 위해선 좋은 오디오가 아니면 어림도 없다.

나이에 따라 음악 취향도 변해가는지 예전에 잘 듣지 않았던 교향곡이나 오페라, 솔로 보컬이 좋아졌다. 교향곡과 오페라에 잘 어울리는 새로운 스피커가 슬슬 탐나기 시작한다. 이는 대형 스피커가 아니면 안 된다. 좋다고 듣고 있던 스피커가 좀스럽게 여겨지고 결점만이 크게 다가온다. 바꿈질의 전조다.

탄노이 오토그래프를 보았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래 전에 만들어진 낡은 스피커로 여전히 명기(名器) 대접을 받고 있는 백전노장. 그 명성이야 알고 있었지만 지나온 이력을 통해 한 번도 내 것으로 만들어보지 못했던 스피커다. 젊었을 땐 돈과 공간이 없었고 여유가 생겼을 땐 이 스피커가 절실하지 않았다. 젊었을 땐 돈과 공간이 없었고 여유가 생겼을 땐 이 스피커가 절실하지 않았다. “너무 멀리 있거나 가까운 꿈은 절망이다.” 둘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첨단의 끝까지 가보고서야 오토그래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거 명기의 신화를 내 것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동안 엄청난 가격 때문에 꿈도 꾸지 못했던 오토그래프다. 세월은 이 환상의 명기마저 고물로 만들어 버렸다. 고물 값 정도면 꿈이 아니라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토그래프가 이번엔 적당한 거리에서 어른거렸다.

물건도 운명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우연히 들른 용산 전자상가에서 오디오숍을 하는 정 사장을 만났다. 그의 매장에서는 평소 눈에 띄지 않던 오토그래프가 고고한 자태로 서 있었다. 실물을 보는 순간, ‘넌 내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눈에 띄지 않았다면 욕심도 생기지 않았을 터이다. 이 환상의 명기는 이제야 자신을 발견한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오토그래프의 음을 다시 들어보았다. 그동안 스쳐버렸던 탄노이 특유의 미음(美音)은 이상하게도 첨단의 사운드보다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요즘 스피커와 다른 충만한 밀도의 음향은 위력적이기까지 했다. 자잘한 세부 대신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는 대형 연주홀의 느낌처럼 풍부한 음량이 넘실넘실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를 이야기해야 하는 세칭 오디오 평론가는 과거의 물건에서 더 큰 가능성을 보았다. 환상의 명기는 바로 그날 멀쩡히 있던 스피커를 밀어내고 슬그머니 나의 공간에 자리잡았다. 꿈에 그리던 오토그래프는 사십 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값이 얼마인지는 말할 수 없다. 무서운 마누라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이상 잠잠했던 바꿈질은 오토그래프로 인해 다시 도졌다. 스피커가 결정되면 거기에 맞는 앰프로 바꾸어야 한다. 앰프가 바뀌면 또 그 특성에 맞는 턴테이블과 카트리지를 맞추어야 한다. 바뀐 기기에 맞는 잡다한 장치와 케이블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단순한 출발은 언제나 모든 것을 뒤엎는 것으로 끝난다. 아! 수없이 경험했던 이 지긋지긋한 오디오의 고정법칙. 온갖 재주를 발휘해 봐도 바꿈질 없이 이 환상의 명기를 울릴 방법은 없다.

탄노이 오토그래프를 울리기 위해 별의별 앰프들이 들락거렸다. 이들 가운데는 무게 100kg도 넘는 무지막지한 덩치의 앰프도, 최신 기술로 무장한 신예의 제품들도 잇다. 하지만 원하는 음색과 깊이감은 얻어지지 않았다. 과정의 잡다함은 이만 접어두기로 하자. 현대의 좋다는 물건과 고물 탄노이 오토그래프가 불화했다는 사실만 중요하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빈티지 오디오(과거의 오디오 기기)가유일한 대안이었다. ‘웨스턴 일렉트릭’(1930~1940년대 통신기재, 영화용 토키를 만들던 미국회사, 이 회사의 앰프와 스피커는 오디오파일 사이에 전설의 명기로 통한다.)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86이란 제품을 복각한 앰프가 자리를 잡았다.

이들 조합은 그런대로 오토그래프를 울려 주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음색은 곱지만 힘이 모자랐다. 애꿎은 사람들에게 전화질을 해대고 밤을 꼬박 새워 인터넷 오디오 사이트를 뒤졌다. 왕년의 명기 매킨토시 60이나 75가 아니면 해결되지 않을 듯했다. 그다음 어떻게 되었느냐고? 잘 알면서…….


바꿈질은 결국 비원에 왕년의 명기들을 채우는 것으로 끝냈다. 할 짓은 얼추 다 해본 셈이다. 오랜만에 나만의 오디오를 위한 생난리를 쳐보았다. 정말 신선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더 흡족한 상태를 만들려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탄노이 오토그래프는 최고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음악을 듣기에 모자랄 수준은 아니다.

음악만이 절실했던 대학 시절에는 조악한 오디오 시스템 때문에 음악의 멜로디만 귀에 들어왔다. 이후 제대로 된 오디오를 갖추게 되었을 때는 아파트 생활로 주위의 눈치를 보느라 큰 음향으로 음악을 듣지 못했다. 곡은 익숙하지만 그 이면의 깊이와 감동을 느껴보지 못했던 이유였다. 명곡의 의미와 가치는 온전하게 내 것이 되지 못했다. 표피를 겉도는 이해의 폭을 감동과 앎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오토그래프를 통해 듣는 음악은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왔다. 커다란 스피커가 터질 때까지는 볼륨을 높여도 뭐랄 사람이 없는 탓이다. 그리고 사면이 차단된 지하 공간의 격리는 음악에 집중하게 했다. 오토그래프가 들어온 이후 언제나 큰 음량으로 작업실을 채웠다. 과거 마음대로 볼륨을 높일 수 없었던 시절의 한풀이일 것이다.

오토그래프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음악의 내용과 비밀들을 풍성하게 풀어내고 있다. ‘밀러’ 교향곡의 비통한 서정의 바탕이 인간의 이면에 감추어진 불안과 공포였음을 비로소 이해한다. 익숙하게 듣던 오페라의 아리아는 전후의 음악적 배경이 깔릴 때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카운트 베이시’의 신들린 듯한 피아노 즉흥연주가 전기 증폭하지 않은 실황 녹음이란 사실은 감흥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제야 음악이 음악으로 들리고 있다.

오디오 바꿈질의 효용성이 이 정도라면 성공이다. 그동안 들어간 돈도 자잘한 사건들도 모두 잊어버렸다. 나의 오토그래프 사운드를 들었던 친구들은 이제 술집을 전전하지 않는다. 멋진 음악이 흐르는 작업실보다 더 나은 장소도 드물기 때문이다. 졸지에 비원은 분위기 좋은 카페가 되었다. 다 바꿈질의 결과다.

어떤 분야에 깊이 빠져보면 대개 교훈 하나쯤은 얻게 마련이다. 오디오에 미쳐 허우적거렸던 과정을 통해 하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그것은 일상 너머의 가치가 주는 희열의 힘이다. 그 힘은 다시 일상의 자양이 되어 고단한 삶을 버티게 한다. 음악과 오디오가 있는 한 한 번도 무료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허무와 비탄에 빠져 실의의 나날을 보내지도 않았다. 천상의 음악을 향해 다가서는 일은 곧 자신을 일깨우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구체적 방법이었다. 나의 오디오 바꿈질은 이런 이유로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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