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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6

by 조중걸 posted Jun 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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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6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구조주의를 들고 나왔을 때 학계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까지는 언어의 연구가 기껏해야 어원부터 따져 나오는 계기적(시간적) 학습이었는데 이때부터는 동시각에 공존하는 언어의 관계 자체를 동일한 비중, 아니 그 이상의 비중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으니까요.

오디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기들 사이의 관계와 조화가 중요합니다. 가령 어마어마하게 좋은 스피커와 그 이상으로 좋은 파워앰프에 형편없는 프리앰프를 사용한다면 그 소리는 유감스럽게도 프리앰프의 수준에 맞춰집니다. 모든 것이 다 좋아도 카트리지가 형편없다면 이건 정말 애석한 경우입니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경우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좋은데 스피커가 형편없다면 “아무리 좋은 걸 먹여도 소용없다. 그래봤자 스피커 소리다.”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어느 수준의 시스템을 원하는가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그 기준은 스피커입니다. 나의 여유와 나의 성향에 따라 스피커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전체 시스템의 수준을 결정하는 공시적(synchronistique) 판단을 했다면 그 다음으로는 그 시스템에 있어서 순서적(diachronistique) 고려를 해야 하고 가장 먼저 스피커를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마구잡이로 되는 일은 개울에서 미꾸라지 잡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 대한 남아는 누구라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소총의 분해, 결합이나 애인의 옷 벗기는 데 있어서 순서는 결정적입니다. 공이를 먼저 넣고 노리쇠를 넣어야지 그 반대면 이제 나가서 연병장 뛰는 일밖에는 남은 게 없습니다. 바지 입고 팬티 입을 수는 없지요.

스피커가 정해지면 그 다음에는 그 스피커와 매칭이 잘 되는 파워앰프를 정해야 합니다. 파워앰프가 정해지면 그 파워앰프와 잘 어울리는 프리앰프 혹은 라인스테이지를 골라야 하는데 이 부분이 오디오 라이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스피커와 파워앰프를 건물의 골조라고 한다면 프리단이 건물의 인테리어와 외부 마감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집을 지은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압니다. 마감이 훨씬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것을요. 사실 어떤 오디오 매니아가 프리부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그 수준은 이미 범상한 매니아의 수준을 넘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범상치 않은 애호가께서 오디오를 포기하고 몽땅 팔아치우는 시점도 주로 여기입니다. 이렇게 해봐도 안 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 되고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때려치우는 거지요.

제 경험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느낀 것은 트랜스매칭 라인단과 그 라인단 아웃풋 트랜스의 임피던스와 특성에 맞춰진 인풋 트랜스를 파워앰프에 장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증폭률입니다. 보통 파워앰프는 볼륨이나 어테뉴에이터 없이 무한대로 열어놓습니다. 이 경우 인터스테이지, 인풋 트랜스, 드라이브관 등이 모두 증폭률에 관계됩니다. 그리고 파워앰프의 증폭률은 라인단의 증폭률과도 상호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가령 REN 904 두 개로 증폭할 경우 증폭률(보통 ‘뮤’값이라 합니다만)이 무려 900이나 됩니다. 여기에 인풋 트랜스와 인터 스테이지가 들어가면 이제 못 들을 정도로 사나운 파워앰프가 됩니다. 더하여 라인단의 게인이 높을 경우 그 결과는 엄청난 험입니다. 망하는 거지요.

단언컨대 저는 상당한 가격표를 달고 나오는 기성품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이제 그럴듯한 외관을 가졌다면 수천만 원은 보통이지요. 부품값은 아마도 10%도 안 될 것이고 그 10%의 대부분도 샤시값일 것 같습니다. 저는 몇 번인가 초고가 하이엔드 오디오를 열어본 적이 있는데 공허했습니다. 엄청나게 큰 방열판 안에 엄청나게 큰 전원트랜스 하나와 PCB 한 장 - 이것이 끝이었습니다. 어느 평론가가 스위스 G사의 앰프에 대하여 ‘순백의 소리’라나 했습니다만 저는 ‘순백의 공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크 레빈슨>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제 오디오 업계는 더 이상 썩을 수 없을 정도로 썩었습니다.

우리가 오디오에 대한 지식을 얻기를 원하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래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식놈을 대학 보내기 위해서는 공부를 스스로 하는 자식님을 대학에 보내는 것보다 몇 배의 돈이 더 듭니다. 스스로 지식을 갖춰 나가지 않으니 돈을 퍼 들여서 과외를 시켜야 하니까요. 오디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기의 메카니즘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스스로 갖춰나가면 확실히 용산에 가서 바가지 뒤집어 쓸 일도 없고 A사(社)나 G사나 B사에 돈 퍼줄 일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왜 우리가 밥을 먹여줘야 하나요. 우리나라에도 충분한 기술은 있는데요. 그리고 오디오 기기처럼 단순하고 간단한 것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잘 알고 있는 선배 한 분이 저에게 말하더군요. “오디오 기술이 제일 쉬운 기술이고 휴대전화 기술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기술일 것”이라고요. 많은 회사들이 ‘획기적인 회로도’ 운운하며 무지몽매한 우리에게 바가지를 뒤집어씌우려하지만 어떤 엔지니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디오에 관한 한 우리 할아버지 대에서 모든 기술이 완성되었다.”고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우리 스스로 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자작 이외에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PX25 싱글에 대하여 말해보지요. 기성품은 없습니다. 어느 회사도 출력관 하나에 백만 원이 넘는 앰프를 만들고자 하지 않습니다. 싸구려 부품으로 샤시만 그럴 듯하게 만들기를 원하지요. 그리고 고전관들은 회사에서 사용할 만큼 무한정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PX4나 RE604나 Ed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300B의 경우는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기성품이 있고 AD1의 경우 클랑필름과 쾨르팅사의 것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가격이지요. 3극 고신뢰관 앰프의 경우 사실상 자작 이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싱글용 아웃트랜스만 구할 수 있다면 500만원 이내에서 PX25 싱글 앰프를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매우 성실하고 양심적인 엔지니어 한 분은 인건비로 한 조에 50만원만 받겠다더군요.

자작의 불리한 점은 매각하고자 할 때 제 값을 받기 힘들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작을 할 경우에는 평생 쓰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독일 진공관 라디오의 아웃풋트랜스를 사용하면 정말 예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추천할 만한 것으로는 Mende, Sachsenwerk, Isophone 등이 있고 PX25나 300B와 같은 대출력관에는 V54B가 좋습니다. 어떤 전문가의 경우 독일 트랜스는 특성이 형편없어서 소리가 뻣뻣하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위에 열거한 모든 트랜스로 제작한 싱글들을 다 들어보았습니다만 뻣뻣한 소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백만 원짜리 partridge 2207보다 훨씬 낫게 느꼈습니다. 라디오 아웃풋트랜스는 40-60만원 정도이고 V54B의 경우는 100-150만원 정도면 아마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트랜스와 3극 고신뢰관으로 앰프를 제대로 자작했을 경우 이것을 내다 파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파워앰프니까요. 더 좋은 파워앰프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국이나 미국 계열의 싱글 아웃트랜스 중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음이 품위나 고풍스러움은 전혀 없고 시끄럽기만 하거나 조잡하기만 하였습니다. 이러한 트랜스로 어설프게 자작된 300B앰프는 널린 채로 돌아다니지만 구매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본래 영국과 미국에서는 싱글 엔디드 앰프를 하이파이로 분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즉 푸시풀 회로만을 최고로 간주했던 것이지요. 이런 사고방식 하에서 훌륭한 싱글 트랜스가 나올 수는 없지요.

저는 두어 달쯤 전에 한 매니아가 Sachsenwerk 아웃풋과 RS 241관으로 싱글을 만들어서 자이스 이콘에 물려 듣고 있는 것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이지 놀랐습니다. 눈치 채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리뷰를 하고 있는 바, 어떤 기기에도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자작 싱글은 경이로웠습니다. 수천만 원짜리 기성품은 정말이지 빛을 잃더군요. 총 450만원이 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이제 탄노이 스피커와 파워앰프의 매칭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PX25 싱글을 권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취향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쁘고 살랑거리는 음보다는 심지가 굳고 덤덤하면서도 푸근한 음을 좋아합니다. 안정되고 한결같은 음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음이지요. 그렇다고 냉담해서도 안 됩니다. 저는 응답특성이 지나치게 빠르거나 예민한 관에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PX25는 뮤 값이 6으로서 상당히 응답특성이 빠른 편이지만 온순하고 수더분하면서 한결같고 깊은 맛이 있는 음이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참으로 깊이가 있습니다. 특히 탄노이와 어울렸을 때에는 그 특질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대체로 혈액형이 A형인 분들이 탄노이와 PX25를 좋아합니다. 혈액형 O형 분들이 대체로 RE604와 독일 계열 스피커를 선호합니다. 여러분은 웃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개떡 같은 분류냐고. 정말이지 저도 이상하게 생각됩니다만 제 주위의 한 50여 명에 대한 관찰은 위의 분류가 5%의 유의 수준 정도로 맞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B형이나 AB형 등은 좀 변덕스럽고 일관성이 없고 줏대가 없습니다. 술 취했을 때에는 RE604를 좋아하다가 멀쩡할 때에는 PX25가 좋다고 하니 도대체 취향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혈액형을 한 번 맞혀보세요.)

PX25가 좀 지나치게 무표정하다고 느낀다면 (저는 절대로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만) PX4 싱글도 좋습니다. 예전에 여기 탄노이 동호회에서 PX4가 낫다, PX25가 낫다 등의 토론이 있었던 것을 읽은 적이 있는 바, 사실은 둘 다 좋습니다. PX4의 경우는 특히 PP일 경우 PX25 PP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싱글일 경우에는 PX25가 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해도 PX4는 PX25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쁘고 표현적인 음을 지닌다는 거죠. 물론 예쁘다고 해도 조잡하게 예쁘지는 않습니다. 품위 있고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지니죠. 그리고 한 가지 이상한 것은 PX4는 4W의 출력밖에 나오지 않는데 탄노이를 충분히 구동한다는 것입니다. ED관의 경우도 4W로 같은데, 구동력은 PX4가 확실히 낫습니다. PX4의 뮤 값이 높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PX25, PX4 싱글 등은 탄노이 스피커를 충분히 구동하고 또 가장 좋은 매칭인 것 같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탄노이는 능률이 높은 스피커라 해도 아주 높은 스피커는 아닙니다. 더하여 블랙 -> 실버 -> 레드 -> 골드로 갈수록 능률은 낮아져서 더욱 구동력이 있는 앰프를 요구합니다. 특히 밀폐형 인클로저의 경우 4W로 구동하기에는 힘이 부족합니다. 저는 밀폐형보다는 저음반사형 인클로저를 권합니다. 물론 저음반사형이 저음부의 일정 주파수 대역 이하에서 급격히 무너지는 약점을 지니긴 하지만 프리앰프의 라인단을 잘 만들 경우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밀폐형 인클로저라면 PX25와 300B 이외의 싱글로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푸시풀 앰프라면 물론 걱정거리는 없습니다. 같은 출력이라 해도 푸시풀은 구동력이 더욱 커집니다. 예를 들면 ED 싱글이 4W이고 RE604 푸시풀도 4W이지만 RE604 푸시풀이 더 큰 스피커 구동력을 지닙니다. 사실 스피커 구동력은 단지 출력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러나 싱글엔디드 회로 앰프에 대하여만 우리의 주제를 한정하도록 하지요. 출력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U52를 WE274B로, 다시 274B를 WE274 각인으로 바꾸었을 때 충격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더욱 선명하고 부드러워지면서도 음이 시원스럽게 나오고 스피커 구동력도 훨씬 더 커졌습니다. 정류관 역시도 중요한 것이지요. 저는 정류관은 5U4G를 권합니다. 그 경우 상황에 따라 정류관의 업그레이드가 5U4G -> U52 -> 274B -> 274B 각인으로 가능해지니까요. 초단관의 경우에는 6SN7을 권합니다. 이 경우에도 여건이 나아짐에 따라 Mullard ECC32로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Mullard ECC32의 경우 전 세계의 평론가들로부터 거의 만점을 받은 드라이브관입니다. 고역은 아름답고 대역은 넓습니다. 저역이 깊게 내려가지요.

나머지 문제 중 중요한 것은 샤시(chassis)입니다. 샤시는 동호인들이 모여서 일괄적으로 몇 조를 한꺼번에 주문하면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디자이너이며 오디오 매니아인 동료분이 한 분 계십니다. 지금 샤시를 디자인해서 주문에 들어갔는데 제가 여태까지 보아온 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듀랄루민과 동판과 가죽과 나무로 제작된 것인데 동호인 여러분 중 제작에 가입할 의사가 있는 분은 댓글에 전화번호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 몇 개 정도의 여유는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PX25 싱글, PX4 싱글, 300B 싱글 RE604 싱글, ED 싱글 등에 두루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저렴합니다. 세련되었으면서도 고풍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출력 트랜스만은 30년대, 40년대, 50년대의 것을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제 경험상 탱고, 타무라, 파트리지(80년대 이후의) 등의 현대 트랜스는 고전관 특유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관이 제조된 그 시기에 같이 제조된 트랜스들이 더욱 아름다운 음을 내는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분은 “고전 트랜스는 특성이 나쁘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소리가 난다.”고 하시는데 적절한 판단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