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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by 조중걸 posted May 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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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4-a
탄노이사에서는 애초에는 인클로저(이하‘통’이라고 하죠)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단지 설계도만을 제시하였죠. 탄노이사가 1949년도에 런던 CES에 출품했을 때에도 15인치 블랙 유닛만을 내보냈습니다. 탄노이사가 적극적으로 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53년에 15인치를 위한 오토그래프를 뉴욕 CES에 출품했을 때부터입니다. 탄노이사가 직접 만들거나 설계도 만을 제시한 것을 다 합치면 통의 종류는 13가지가 됩니다. 많죠?

그러나 이 13개의 통들은 사실은 세 가지 통의 변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세 가지는 우선 미로형 (오토그래프, 메모리...) 저음 반사형(일부의 코너요크, 벨베도르, 랑카스터...) 밀폐형 (10인치 북셀프형, 일부의 코너요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7가지 통을 사용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은 15인치 오토그래프와 12인치 저음 반사형(측면개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닛의 종류에 따라, 유닛의 크기에 따라, 통의 형식에 따라 매칭되는 파워 앰프의 출력과 회로와 프리앰프의 양식이 모두 달라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경험상 중요한(거의 결정적인)사항이었습니다. 제가 이 조합에서 경우의 수를 따져 보니 무려 54개였습니다. 어찌할까요. 제가 54편의 <두 얼굴>을 쓸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애초에 계획한 것은 20회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먼저 밝히겠습니다. 우선 놀랍게도 탄노이는 같은 형태의 통일 경우 12인치 블랙이나 12인치 실버가 15인치 블랙이나 15인치 실버보다 출력을 더 요구하고 볼륨도 더 먹습니다. 10인치 레드 밀폐 형으로 갈 경우 최소 출력이 10W나 됩니다. 고운 소리를 얻기가 힘들죠. 왜냐하면 같은 조건일 경우 낮은 출력일수록 더 고운 소리가 나니까요. 가령 발보 Aa는 0.2W의 출력을 냅니다. 푸시풀일 경우 0.7W 정도지요. 그러나 그 소리는 형언할 수 없습니다. 애교스럽고 예쁜 소리가 납니다.

발매 당시에는 15인치의 가격이 159$였고 12인치의 가격이 139$였습니다만, 지금은 어느 경우에나 15인치의 가격이 12인치 가격의 거의 두 배에 이릅니다. 이 이유는 말씀드린 바대로 15인치의 소리가 더 곱기 때문입니다. 상식과는 상반됩니다. 이것은 탄노이의 모든 경우에 해당됩니다. 일단 논의를 모니터 시리즈에 한정시킬 때, 같은 통일 경우 작은 유닛이 큰 유닛보다 더 큰 출력을 요구합니다. 15인치 레드가 12인치 레드 보다 출력을 덜 요구하고, 12인치 레드는 10인치 레드보다 출력을 덜 요구합니다. 또한 같은 통일 경우 저음 반사형-오토그래프-밀폐형의 순서로 출력을 더 먹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조합을 통틀어 15인치 블랙 저음반사형이 가장 출력을 덜먹고 10인치 골드 밀페형이 가장 출력을 많이 요구합니다. 예를 들면 15인치 블랙의 경우 4W정도면 제법 만족스럽고 8W정도면 이제 충분합니다. PX4 푸시풀일 경우 볼륨 올리기가 겁납니다. 아래층에서 뛰어 올라옵니다.

탄노이는 통 울림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특히 오토그래프는 3m나 되는 긴 미로를 사용하여 저음부의 위상을 반전 시킵니다. 이것이 음의 왜곡을 일으킨다는 비난을 듣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가짜 소리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비난에 대하여는 두 개의 변명을 해야겠습니다. 연주회장에서는 저음부 악기를 뒤쪽에 배치시킵니다. 저음부 악기들은 오케스트라에 있어서는 화음을 담당하는 보조적 입장에 있게 됩니다. 주선율과 보조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들을 화음으로 싸는 것이 목적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연주회장에서는 주선율이 우리 귀에 먼저 도착하고 화음이 천천히 도달합니다. 그러나 마이크 녹음에서는 이러한 시간차가 없습니다. 공중에 매달린 마이크가 동시에 녹음하기 때문에 시간차가 없지요. 이것을 전면으로 향하는 유닛이 재생한다면 모든 대역의 악기가 동시에 소리를 내는 것이 됩니다. 탄노이는 시차를 둬서 저음부의 소리를 천천히 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미로를 사용하여 위상을 반전시킨 겁니다. 커다란 도전에 대하여 대단히 창조적으로 대응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인클로저 자체를 유닛의 세 번째 부분으로 만든 겁니다.

그렇게 되어 탄노이는 전 대역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탄노이는 대역의 분리라는 선명성을 희생시키고 화음과 실제연주라는 이득을 취했습니다. 독일계열 스피커에 심취해 있는 분들은 탄노이 소리를 듣고는 ‘마치 막이 끼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만, 탄노이도 벗겨놓고 들을 수 있습니다. 누드 스피커라고 장난스럽게 부르는 그것이지요. 독일 계열 스피커들은 어차피 누드고요. 이 경우 탄노이 소리는 제 경험상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유닛보다도 선명합니다. 다른 유닛들은 스피커라고도 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물론 연주회장 소리는 아니지만요. 독일 스피커처럼 평판에 부착시키면 독일 스피커에서 얻는 선명성에 탄노이특유의 화음도 어느정도 얻게 되지요. x-ray로 뼈만 찍어 놓으면 그것이 인간일까요? 근육과 지방과 털이 붙어 있어야 진짜 인간 아닌가요? 탄노이에는 옷을 입힙시다! 저는 먼저 피아노를 직접 연주해서(쇼팽의 C# minor Waltz 였습니다.) 독일 매니아께 들려주고, 옷 입힌 탄노이를 들려 주였습니다. “자 진짜 피아노 소리지요!”

왜곡? 이것이 왜곡일까요? 도대체 이런 단어를 배짱 좋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용감한 사람들인가요? 우리는 다 같이 어리석은 중생이어서 자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지도 않은 채로 짖어댑니다. 소크라테스가 개탄한 바로 그것이지요. 이렇게 보자면 저도 훈장 짓 그만두고 산으로 은퇴해야 합니다.  

왜곡된 음이 있다는 것은 왜곡되지 않은 실제적 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실체적 음>이란 것은 신기루입니다. 실체적 음이란 아마도 음향의 매개체 (악기)에서 나오는 바로 그 소리를 말하는 것일 테지요. 그러나 ‘듣는다’ 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음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존재란 곧 인식’ 인 것이지요. 그러면 악기 전방에서 듣는 소리가 실체적 인가요 아니면 악기 측면에서 듣는 소리가 실체적 인가요? 전방 몇 미터에서 듣는 소리가 실체적 인가요? 80%의 습도에서 듣는 것이 실체적 인가요, 20%의 습도에서 듣는 것이 실체적 인가요? 3m의 천장을 가진 홀이 실체적 음을 내나요, 아니면 5m의 천장을 가진 홀이 실체적 음을 내나요?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관련해서 더욱 큰 문제가 발생 합니다. 행복할 때 들었을 때가 실체적 음인가요, 아니면 슬플 때 들었을 때가 실체적 음인가요? 배고플 때 들었을 때와 식사 후에 들었을 때 사이에도 차이가 큽니다. 오줌 마려서 미치겠을 때 연주 회장에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바이올린의 비브라토가 마치 방앗간 모터 소리보다도 더 듣기 싫었습니다. 실체적 음인가요? 도대체 <실체> 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요? 이제는 법에서 조차도 실체적 진실을 포기하고 <절차적 진실>만을 다룹니다. 저는 여러분을 끌고 <철학적 인식론>이라고 이름 붙은 그 지저분하고 찜찜한 늪으로 들어가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실체적 음의 개수는 음악 매니아의 머리 수 만큼이나 많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매트릭스>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삶 전체가 지극히 주관적인 허상적 존재인 것이지요. 우리 삶과 그 인식이 이와 같을 때 우리의 사랑하는 오디오 기기 역시도 하나의 왜곡된 세계를 우리 앞에 제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오디오는 환각과 왜곡의 매개체인 것이지요. 여기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단지 우리의 취향일 것입니다. 즉 우리가 원하는 왜곡은 어떤 종류의 왜곡이냐 이지요.

더 좋은 탄노이와 더 나쁜 탄노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잘 관리 되지도 잘 튜닝되지도 않았을 때에 나쁜 탄노이가 되는 것은 불가피 합니다. 그러나 탄노이가 나쁘거나 기타 스피커가 좋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탄노이는 탄노이 일 뿐이고 와트 퍼피는 와트 퍼피일 뿐입니다. 탄노이는 우리가 마치 연주 회장의 중간쯤에 앉아 있고 아마도 50%의 습도쯤되는 날씨 속에서 듣는 표준적인 소리를 기준으로 왜곡을 감행했을 것이고, 여기에서 블랙은 90%쯤 성공했고 레드는 80%쯤 성공했을 것입니다. 와트퍼피는 재즈바의 열기띤 연주자들 사이에서 스스로 흥겨워 하는 분위기를 시도 했고 역시 80% 쯤 성공한 것 같습니다. 멋진 스피커지요. 단지 제 취향이 아닐 뿐입니다. 와트퍼피를 수입하시는 분의 취향은 저와는 상반되겠지요. 상황이 이러하니 취미 판단과 관련된 모든 언급은 조건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그 중 가장 큰 조건은 <내 취향에 비추어...> 라거나 <내가 듣고자 하는 음악에 비추어...>라거나 <재즈를 듣기에는...> 등등일 것입니다. 탄노이에게서 구해야 할것을 와트퍼피에서 구하거나 혹은 그 반대 일 때에는 이제 우리의 오디오 인생은 망가지는 것이지요.

탄노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역과잉이라든가 벙벙거린다거나 하는 비난을 듣습니다. 탄노이 모니터 시리즈는 본래 가정을 위한 것은 아니었고 더군다나 아파트를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탄노이는 초기에는 100% 영국 정부 조달청에 납품되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것을 주로 공공기관에서 사용했고 외국 정부에 수출했습니다. 탄노이는 영국 하원, UN 본부, 인디아의 뉴델리 국회, 버킹검 궁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때때로 인도나 호주 등의 영연방국가에서 매끈한 블랙들이 발견되는 일이 있는데 원래 조달청 소유였던 것이지요.

탄노이사 에서는 50년부터 가정을 위한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12인치 모니터 블랙입니다. 그때에는 이미 15인치 블랙은 실버로 바뀌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12인치에 있어서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블랙은 없습니다. 저는 바로 얼마 전까지 12인치 블랙을 갖고 있었는데, 15인치 블랙과 비교해 보면 음색은 상당히 달랐고 오히려 15인치 초기 실버 소리와 같았습니다. 우습게도 12인치 블랙이 15인치 블랙보다도 더 큰 출력을 요구합니다. 볼륨도 더 먹습니다. 사실은 실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터무니없이 비쌀 이유가 없지요. 가치가 아니라 상업주의가 가격을 결정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12인치조차도 가정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컸고 너무 비쌌습니다. 당시 맨허튼의 대 저택이 800불이었을 때 12인치 한 조각이 139불 이었습니다.

만약 천장이 성당처럼 높고 면적이 상당하다면 탄노이의 벙벙거림은 역시 연주회장의 저음부 소리와 흡사 합니다. 소위 말하는 홀 톤인 것이지요. 예일 대학의 대형 강의실에 탄노이 오토그래프 실버가 모노로 있었는데 정말 멋진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문제는 탄노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조건에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 오디오 해결책이 있을까요?

먼저 5cm 정도의 대리석을 스피커 밑에 깔면 상당히 개선됩니다. 저는 총각시절 (그리워라) 에 깔아 본적이 있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연주 회장에서는 보통 피아노를 부양시키는데 그건 효과인 셈이지요. 집안에 돌멩이 들어오는거 싫다는 마누라 주장에 제 탄노이는 그냥 벙벙거리고 있습니다. 대리석이 무겁고 번거롭다면 실리콘 매트도 상당한 두께만 있다면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대리석 보단 못하지요. 그러나 그 경우 탄노이 특유의 목질의 부드러운 울림은 희생됩니다. 소리가 딱딱해지지요. 콜라도 마시고 돈도 쥐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해결책은 놀랍게도 스피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라인 스테이지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저음부의 지저분함은 상당부분 시원찮은 프리앰프 때문에 발생합니다. 탄노이의 벙벙거림은 저음부의 위상 반전이 한 원인일 수 있습니다. 라인단이 시원치 않을 경우 응답특성이 느려지고 나중 나오는 고음과 중음이 앞서 나가야할 저음에 참견합니다. 이 경우 악마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저음부가 제대로 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라인단의 3극 직렬관과 트랜스매칭은 필수입니다. 저는 마란츠7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 경우 언제나 이러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오토그래프와 마란츠7의 라인단은 미스매치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 해결책은 잘못하면 돈이 많이 들게 됩니다. 3극 직렬관을 더블게인으로 트랜스 매칭시키면 대리석조차도 필요 없게 됩니다. 즉  입력트랜스 - 증폭관 - 인터스테이지 -증폭관 -출력트랜스 의 구성을 지닌 라인 스테이지면 저음부가 훌륭해 집니다. 만약 적절히 준비하고 많은 공부가 있으면 150만원 정도의 부품 값으로 자작할 수 있습니다. 포노부는 70만원 정도로 가능하고요. 마란츠 신형보다 적게 듭니다. 이것을 어떻게 제가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 드릴 수 있을까요? 선량하고 품위있는 탄노이 애호가들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 있어 인생의 큰 기쁨이 되겠지요.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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