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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by 조중걸 posted May 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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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탄노이 오토그래프는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제 경험에 비추어서는 사실이 아닙니다. 단순히 유저들이 제대로 된 앰프를 매칭하지 않을 때에만 탄노이는 이상한 스피커가 되고 맙니다. 우선 탄노이는 앰프를 상당히 가립니다. 이것은 비단 탄노이만의 성향이 아니고 영국 계열 스피커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ATC나 하베쓰 등의 영국 스피커들은 모니터적인 성격이 강해서 소스와 앰프의 명령에 매우 수동적으로 응합니다. 그 스피커들은 성격이 이를테면 시냇물처럼 투명합니다. 더하여 탄노이 모니터 시리즈들은 매우 예민합니다. 다른 시스템으로는 별 불만 없이 듣던 소스들도 일단 탄노이에 걸면 도저히 못 들을 정도로 녹음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동시에 악마의 얼굴도 가진 걸까요?

관념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해하시고 다음의 주장들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치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저는 상당히 만족스럽게 - 자기만족일지 모르겠습니다만 - 탄노이를 울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탄노이는 유럽계의 3극 직렬관과 잘 어울립니다. PX4, PX25, Ed, RE604 등을 사용한 파워 앰프에 매칭하면 가슴에 스미는 듯한 감동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여기서 RE604를 제외한 다른 관들은 싱글로도 충분히 탄노이를 울립니다. RE604의 경우 PP나 파라싱글이라야 가능합니다. 300B 싱글의 경우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300B를 싫어하는 것은 제 취향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PX25라 싱글일 경우가 제 경험상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어떤 애호가의 경우 PX25에 대해 심한 악담을 퍼붓습니다. 멍청하다고 하죠. 그러나 제 경우에는 아마도 제 자신이 PX25보다 더 멍청한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좋았습니다. 특히 벌룬관일 경우에는 더욱 좋았습니다. 우선 대역이 넓고 밸런스가 좋습니다. 그리고 음색은 부드럽고 침착하고 관대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슴에 스미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초연하고 의연한 음이면서도 감동적이라는 것이 이상하기조차 했습니다.

두 번째로 조심할 사항이 있습니다. 5극관이나 빔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자신 WE350B PP(124B, 142C)를 사용하고 있는 바 별 다르게 매혹적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부드럽고 푸근한 맛은 있지만 탄노이 모니터 시리즈의 그 매혹적인 섬세함을 끌어내지는 못합니다. 이 경우야말로 진짜 멍청한 경우죠. “상관없다. 난 백치미가 좋다.”라고 주장하신다면 이 경우도 괜찮긴 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5극관은 오히려 알텍이나 독일계의 혼 스피커에 더 잘 어울립니다.

저는 오랫동안 탄노이를 사용해왔고 현재는 15인치 블랙, 12인치 레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읽으신 분들이 마땅치 않다고만 하지 않는다면 차례로 제 경험을 올리겠습니다.

포노단은 어떻게 쓰는 경우가 좋은지, 라인 스테이지는 어떤 형식일 때 가장 좋았는지, 또 다른 3극관들은 어떠했는지 등을 차례로 올리겠습니다.

듣다보면 탄노이에 대해서 별별 이상한 평론이 난무합니다만 그 평론대로라면 이것은 완전히 도깨비 같은 스피커가 되고 맙니다. 제인 오스틴이 전쟁소설에는 형편없는 작가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다면 탄노이는 재즈나 록에는 멍청한 스피커라고 말하는 것도 타당성이 있겠죠.
탄노이 애호가들의 기질은 대부분 점잖고 약간 수줍어하고, 섬세하고, 직설적이지 못하고 조심스럽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제 글이 어느 분 마음이라도 상하게 하지 않았는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