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제가 오프라인에서 자주 지껄이는 말들

by 항아리 posted Jun 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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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앰프들을 보면,

-아, 이 모델이 그 모델이예요? 전 모델번호 모릅니다.
-뭐 소리야 오죽 잘 만들었겠습니까. 제반 기술로나 지식으로나 경험으로나
당대 제일인 사람들이 만들었을 텐데 제가 어찌 그 소리를 이렇다저렇다 하겠습니까.
단지 저는 그 어떤 것도 판매용 완제품엔 아무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아, 이 트랜스는 참 좋은 것 같네요.
-으음, 이 저항은 참 귀한 건데 여기 붙어 있네.
-와, 이 콘덴서 잘 생겼네요. 이 시대의 부품들은 대개 생겨먹은대로
소리가 나던데, 이것도 꽤 사연있는 소리 나오겠는데요.
-이런, 어느 분이 여기다가 이런 만행을 저질러 놓았습니까? 아, 오버홀이요?
그런데 이게 오버홀 한 거랍니까?

-이 부분의 시정수는 현대 소스엔 맞지 않을 겁니다. 저 부분의 시정수는 가정용으로는
적합치 않을 것입니다. 이 물건이 제 물건이라면 마음대로 뜯어고치는 것도 좋겠지만,
귀한 부품들만 적출한 후 나머지는 치워 버리는 방향을 채택할 것 같습니다.
-물건을 들일 때부터 되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라면 애초부터 들이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앰프들을 탓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탓해야할 건 선택의 가벼움일 것입니다.

-그래도 소리가 참 사연과 곡절이 있습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는 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더 나은 소리란 건 겪어보기 전엔 모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셋팅이 완료된 이 물건에서
무엇을, 어떤 것을 원하는지 그 주인이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오래된 부품들로 만든 자작앰프들을 보면,

- 정성 많이 들이셨네요. 보기 좋습니다.
-소리요? 소리는 언제든지 원하는대로 가꿔갈 수 있다는 게 자작앰프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요즘 앰프들을 보면,

- ..................................어쩌다가 이런 걸 쓰시게 되셨습니까?


요즘 부품들로 만든 자작앰프들을 보면,

- .........그게....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지상과제인 대량생산과 부가가치에 부응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그러니까....뭐랄까....가벼움...경박함....앰프란 건 각 부품들의 조합이
어우러지는 부품들의 합창과 같으니까....그게 즉....결국은 어쩔 수 없는...이르자면 시대에
맞춘....뭐 그렇네요.
-아, 직접 만드신 게 아니라 어디의 그 분이.....그렇구나.
그런데 대한민국에 참 고수 많아요. 무슨 놈의 고수들이 그리 많은지......


요즘 것들을 보면 특히 더 구업(口業)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 같습니다.
구업을 쌓은 자,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진다 하였으니,
지옥사자들에게 집게로 혓바닥을 뽑히느니,
미리 스스로 뽑아버리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문득문득 듭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