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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과 청감심리

by 윤영진 posted Oct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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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뜨거운 그릇을 손으로 잡거나 들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고
우리들이 손을 댔다가 너무 뜨거워 놀란 경험은 누구나 했을 겁니다.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님이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안 뜨겁다고 속인 줄 알았습니다.^^
그 분들은 오랜 동안 부엌일을 하면서 손의 감각이 둔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저는 어머님의 뜨거움에 대한 감각을 이해 못합니다.
나의 감각이 동일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감각은 개인차나 경험이나 훈련 차이에 의해 크게 달라집니다.
누구는 섭씨 40도를 뜨겁다고 판단하고, 누구는 60도를 같은 뜨거움으로 느낍니다.

문제는 각자 느끼는 기준에서는 그 뜨거운 정도가 "주관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10,000Hz까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10,000가 초고음 한계이고, 20,000Hz까지 듣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초고음 한계인데, 두 사람이 느끼는 "주관적 초고음의 가치 판단"은 동일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00Hz까지 듣는 사람이 10,000Hz까지 밖에 재생 못하는 기기의 소리를 놓고 고음이 부족하다고 얘기해도 10,000Hz까지 밖에 못 듣는 사람으로서는 그 얘기를 전혀 인정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투어도 서로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릴 것입니다.

청각의 개인차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13,000Hz 이상이 되면 음량을 높여도 전혀 못 듣고, 어떤 사람은 낮은 음량에서는 못 듣다가 음량을 높이면 듣습니다.
고막에서 수음한 진동을 뇌로 전달하는 융모세포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기능이 떨어지거나 사멸하면서 청각이 감퇴합니다.

어느 주파수 이상을 음량을 높여도 못 듣는 사람은 세포가 완전히 소멸된 것이고,
음량을 높이면 듣는다는 것은 세포 기능이 낮아졌지만 아직 활동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체의 모든 기관과 세포가 그러하듯이 자주 활용을 하고 신경을 쓰다 보면 그 대상 세포의 노화가 늦어집니다.
따라서 아직 음량을 높이면 고음이 들리는 분들은 고음을 듣는 훈련을 신경써서 자꾸 하면서 세포의 노화도 막고 가청력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청각심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젊어서 청각이 좋을 때, 주의를 기울여서 초고음을 자주 듣고 그것을 뇌에 기억시켰던 사람은
나중에도 청각신경이 퇴화되면서도 초고음을 인지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높습니다.

초고음을 "지각적"으로 인지했던 경험이 없는(들려도 그냥 무관심하게 흘려듣는) 사람은 실제로는 듣고 있으면서도 본인이 듣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소리는 물리적 운동 에너지를 가진 파동입니다.
소리는 귀를 통해서만 뇌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얼마전 광대뼈에 부착해서 소리를 듣는 헤드폰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두개골 어디에건 진동을 전달하면 뇌는 소리로 인지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소리의 파동을 전신을 통해서 취음합니다.

귀의 고막 외에 소리를 주로 취음하는 것은 피부(피하 촉각)와 뼈입니다.

낮은 저주파 진동은 뼈를 거치고 신경세포를 통해서 뇌로 전달됩니다.
초고음은 피부를 통해서도 느껴집니다.

그렇다 보니, 귀의 융모세포가 죽어서 고역을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도
가청 영역 이상의 고역을 나오게 하고 안 나오게 하는 A-B 테스트를 하면 상당수가 감지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초고음이 있고 없을 때 중역대와 저역대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가청영역 이상의 초고음까지 나오게 했을 때의 중음과 저음의 음색은 일부러 측정대역 이상의 고역을 없애고 들었을 때와 달라집니다.
배음이 위 뿐만 아니라 아래대역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고역을 못 듣는 사람도 중역과 저역의 음색 변화를 통해서 초고역이 나오는지 안나오는지를 간접적으로 알아챕니다.

문제는 젊어서 이런 차이를 경험하고 뇌가 기억하는 사람과 달리, 그런 지각 훈련이 안 된 채
나이먹고 고역을 못 듣는 경우입니다.
그런 분들은 초고역의 존재여부를 거의 감지 못합니다.
인체의 수음 세포는 음파를 인지해도 그것을 뇌가 정보화해서 감지 못하는 것이지요.

요리사(귀)는 특별한 요리를 할 능력이 있는데, 먹는 사람(뇌)이 그것을 몰라서 주문을 않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병아리 감별사들이 빠른 시간에 미세한 손의 감촉만으로 감별을 하는 능력도
뇌에서 손 끝의 촉각세포에게 지속적으로 "촉각의 발달"을 요구해서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나 기계 점검을 오래 한 분들은 미세한 기계 소리만 들어도 고장이나 이상 여부를 알아챕니다. 역시 훈련에 의한 것이지요.

청각도, 뇌가 특정 음역을 인식하고, 그 인식된 음역을 듣고 전달해 달라고 끊임없이 청각신경과 세포에 요구를 하면 세포도 활성화되고 감각도 강화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젊어서부터 귀를 혹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며 초고음까지 귀 기울여 주의깊게 감상을 꾸준히 했던 사람은 청각세포가 나이들면서 노쇠해도 거의 소리를 감지합니다.

젊어서 듣고 기억했던 감각, 중역과 저역의 음색 차이, 피부와 뼈를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감각 차이 등을 종합하여 느끼는 것입니다.

음반가게에 가면 20-20,000Hz 를 단위별로 구분해서 녹음해 놓은 테스트 CD를 구할 수 있읍니다. 이것을 반복 재생하면서 지속적으로 초고음을 들어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15,000Hz 를 재생해 놓고 음을 켰다 껐다 하면서 그 차이를 반복해서 집중해 보는 훈련을 하다 보면 점차 감각이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볼륨을 조절하면서 높은 음량에서 들을 수 있는 주파수를 듣다가 조금씩 낮춰가면서 집중하는 훈련도 좋습니다.

요즘 치통 때문에 며칠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미식을 앞에 놓고도 맛을 제대로 못 보고 아쉬움을 삼키곤 합니다.

조금 엇나간 얘기지만 혀의 미각기능 중에 "매운 맛"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매운 맛은 미각으로 느끼지 않고 '통각'으로 느낍니다. "매운 맛=아픈 맛" 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 아픈 맛을 무지 좋아하지요.

오디오 매니아들이 가진 돈 퍼붓고, 밤 잠 설치며 노력해서 좋은 음을 가꾸어 놓고 귀와 청각이 문제가 되어 그 좋은 소리를 제대로 다 듣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픕니까?
이빨 아파서 진수성찬 앞에 놓고 물만 마시는 기분과 비슷할 것입니다.

나이 먹으면서 연애를 한다고 "최고의 여성"만을 찾고 사귀는 것으로는 균형이 맞지 않지요.
최고의 파트너에 걸 맞도록 본인도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과 몸매를 가꾸어야지요.^^

문제는 이런 조언이 거의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인정합니다.

자신의 귀가 듣고 자신의 뇌가 인지하는 개인별 가청영역을 벗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남이 얘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도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뜨거운 그릇을 놓고 뜨겁다 안 뜨겁다고 다투는 것이나 같지요.
어쩌면 소용 없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먼 훗날, '마춤양복점'처럼 '마춤 오디오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손님이 오면 정밀 '청각검사'와 '청각심리검사'를 거쳐서 프로파일을 만들고,
이에 가장 잘 맞는 기기를 조합해 주는 그런 오디오점이.....

이렇게 만든 공인 프로파일은 어느 오디오점에나 가도 표준화되어 잘 맞는 오디오 세트를 쉬 구성해 줄 수 있는 자료가 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