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옛 물건이 주는 기쁨

by 윤영진 posted Aug 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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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로 구분되는 취미의 대상은 무궁무진합니다.
아마 수 천 가지 이상은 족히 넘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고참께서 "매니아의 마지막 종점'은 바로 '골동품(예술품)'이다 라고 하신 게 기억납니다.

오디오 매니아도 공부 많이 해야 하지만, 골동품이나 서화작품 등을 수집하려면 공부해야 할 범위가 인간의 능력을 쉬 상회합니다.
특히 감식안(안목)이 뛰어나야 사기를 안 당합니다.

얼마 전 인천의 유명기업 회장님께서 평생을 모은 골동품과 서화를 기증을 해서 박물관 측이 점검을 하는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위조품으로 드러나 세간의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오디오 취미의 경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 억 원 정도에서 지출 예산 범위가 한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골동품과 서화는 제대로 빠지면 수백 억 원은 쉬 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를 같은 서민은 감히,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분야입니다.
물론 몇 십 만원 선에서 구입이 가능한 물건으로 많지 않게 구해서 완상을 한다면 되겠지만,
주위에 골동품 매니아 하는 양을 보면 오디오매니아하고 같습니다. 아니 더합니다.
오디오야 일단 음악이라도 나온다는 실용성도 겸비하지만, 골동품이나 서화는 없다고 해서 또는 새로 구한다고 해서 특별히 실용적 쓰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마음에 드는 걸 보면 아주 환장을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골동품이나 서화에 미친 분들도 죽지 않고, 파산 안 하고 사는 걸 보면
공통적인 면이 있습니다. 바로 되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건 신제품이란 사자 말자 사용도 안하고 되팔아도 무지 값을 손해봅니다.
그런데 옛 물건이란 것은 '희소 가치'라는 백 그라운드가 작용해서 되파는 데 크게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만....

오디오도 비슷합니다.
WE 제품, 그중에서도 특정한 몇몇 스피커와 앰프류 등은 '중고품'이나, '빈티지'라는 보통 사용되는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격이 올라서 거의 '골동품' 또는 '수집품'의 반열에 있기 때문에 사서 갖고 있다가 되팔아도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저 같은 사람이 "가격 대비 음질이 낮다."고 입으로 까고 폄훼를 해도,
이미 만들어져 존재하는 수량이 빤하고, 그걸 갖고 있으면 폼이 엄청 난다는 사실이 변함 없는 한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은 적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일본의 거품 경제가 빠지면서 한번 발생했지만, 그 거품을 대만과 한국에서 흡수해서 가격을 받쳐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거품이 빠지면 바로 옆나라 거대 중국에서 다시 흡수할 준비를 차-악 갖춰놓고 있습니다.
업무상 중국에 자주 가게 되고,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중국의 신흥 부자급들이다 보니,
대충 알겠는 것이 이들 신흥 부자들이 돈 자랑하는 데 있어서 수순이 우리와 너무 똑같습니다.

우선 집, 다음에 차, 다음에 오디오 같은 취미 영역으로 착착 진행이 됩니다.

특히 재즈라는 음악 장르는 오디오의 고급 취미화와 완전한 매칭 페어입니다.
중국의 젊은 부자들은 예외없이 재즈음악을 폼으로 들으며 고급 오디오 기기를 집에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에게도 벌써 WE이란 상표는 자동차의 벤츠와 롤스로이스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같은 돈 없는 사람이 열나게 씹어서 가격을 낮춘 후에 어디 한번 구입해 보겠다는 알량한 잔재주로는 성공 가능성이 없습니다.


얼마 전 비닐로 씌워진 거실의 쇼파가 낡아서 교체를 하면서, 마누라를 사알 꼬여서 앤티크 가구를 들여놓았습니다. 오크로 만들어진 유럽산 중고(앤티크라 하기에는 조금 연수가 부족한)를
3인용, 2인용 세트로 들여놓았습니다.(거금 들여서....ㅠㅠ)

그런데 나무로 된 벤치형 의자라는 것이 안락감하고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저 한국인 평군 신장인 우리 가족이 앉다보니, 편안하게 앉아서 발 뒤꿈치가 바닥에 닿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평균 신장 185CM 정도에 맞춘 것 같습니다.
쿠션도 없다 보니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도 배기고, 전처럼 침대처럼 누워서 사용하기도 안되고.....

애들하고 마누라가 합세해서 "이거 누가 사자고 했냐?"는 어필이 심하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변명을 늘어놓은 앤티크 가구의 장점이란 것이....

* 오래 쓰다 되팔아도 제 값을 받는다.
* 내구성이 좋다.(비닐이 찢어질 일도 없고, 짜맞춤이라 오래 써도 그냥 그 상태....)
* 나무라 더운 여름 살에 늘러붙지 않고 시원해서 좋다.
* 퍼질러 눕기가 힘드니, 자세가 바르게 되어 척추에 좋다.(의학적 전문성은 전혀 없는 억지)
* 손님이 왔을 때, 일단 폼이 나서 좋다.

주절주절 변명을 해 보니, 마누라는 다른 것은 귀에 안 들어오고,
첫번 째의 "되팔아도 제 값 받는다."에 눈의 반짝이며, 몇 번이고 확답을 요구합니다.

빈티지라 불리는 중고 오디오를 살 때도 같았습니다.
마누라와의 신경전을 늘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되 팔 때 제 값 받는다."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그러나 속 좋은 마누라도 나중에는 불평을 합니다.

  "제 값을 받는 것은 같은데, 그렇게 해서 팔아 챙긴 제 값이 왜 내 주머니로는 한 번도 들어오지 않느냐?"입니다.

  " 아- 그거야 다른 거 더 제 값을 잘 받을 수 있는 휼륭한 기계를 사는데 재투자되었지...."

로 넘어가곤 하는데, 이 것도 약발은 이미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음질과 다른 장점을 말해도, 역시 고물(빈티지) 기기들의 매력은 신제품보다 되팔 때 덜 손해난다는 점이라고 느낍니다.

거기다 더해서, 옛 물건들은 요즘 것에 비해서 크게 내구성이 뛰어납니다.
요즘 물건이야 디자인도 세련되고, 부품도 경박단소화 되어 있어 처음에는 뽀다구가 좋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고장도 잘 나고, 오래된 티가 멋있게 되지 않고 흉하게 됩니다.

옛물건은 청바지하고 비슷합니다. 청바지 물감인 인디고 물감이란 것이 마모에 약해서 시간이 지나면 물이 자꾸 빠지는데, 그게 멋스럽습니다. 그러나 다른 잘 지워지지 않는 물감이란 것은 바래거나 물이 빠지면 흉하기 그지없습니다.

낡은 청바지의 물리적 특성(?)은 안 좋아졌지만, 폼과 분위기는 좋아진 것이 고물 오디오와도 약간 통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스피커 인클로져만 해도, 원목으로 된 옛 것들은 마모되거나 스크래치가 생겨도 일종의 연륜의 멋으로 승화되는데, 요즘 만든 멋지게 무늬목 붙여 놓은 것은 어디 한 곳 무늬목만 까져도
영 흉해서 못 쳐다 봅니다.

옛것과 요즘 것의 차이 중에서 또 아주 중요한 요소가 "촉감"의 차이입니다.

요즘 물건들은 눈으로 보고 즐기기에는 좋은데, 손으로 어루만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옛날 연탄화로에 양철테이블 놓인 젓가락집(니나노집)에서 술 마실 때는 나이론 한복 입고 젓가락 장단 쳐 주던 아가씨들 치마 들추며 짓궂게 살을 만져도 서로 정감이 묻어나고,
애써 손을 뿌리치는 아가씨들의 태깔에도 싫다기 보다는 더 애를 태우는 맛이 있었는데,

하- 요즘 룸 사롱 쭉빵 아가씨들은 어쩌다 더듬기라도 하려면, 눈을 내리깔고
약간의 경멸의 눈초리로 "어디서 싸구려 술집에서 마시던 태를 내냐?"는 눈치의 구박이나 받기 십상입니다. 내 돈 내고 쪼다 되는 기분.....ㅠㅠ

고물 오디오 기기는 서툰 솜씨로 뒤적이다 엉망을 만들어 놔도, 트랜스만 타지 않으면 전문가 손에서 금방 말짱하게 고쳐집니다. 그런데 요즘 나온 기기란 것이 일단 뚜껑을 열 엄두도 못 나게 하고, 자칫 잘못 열고 잘못 만졌다가는 수리가 안 되거나 되도 새로 사는 만큼 수리비를 물어야 합니다.

이래저래 옛 것이 좋습니다.

전에는 술집 아가씨들이 서로 기분만 통하고 눈만 맞으면, 돈과 관계없이 어찌 한번 따로 만나
어찌 한번 거시기 할 수도 있었지만, 요즘은 감히.....^^

괜히 주절거렸습니다. 양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