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매력없는 충실함과 매력있는 부실함

by 윤영진 posted Aug 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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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복에 겨워서 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이 "너무 완벽해서 매력이 없다"는 표현이 아닐지요?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3각 관계에 빠진 여주인공이 껄렁한 남주인공을 택하며, 무엇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완벽한 부자 신랑감에게 주로 마지막으로 하는 대사가 이와 비슷합니다.

아무리 미사려구로 이런 삐딱한 심리를 표현하려고 해도 마땅한 말이 안 떠오릅니다.
그냥 "삐딱한 변덕" 이상으로는.....

근래에 더운 여름 탓하며 TR프리, TR파워(FET)를 한동안 듣고 있습니다.
한동안 감탄과 반성도 많았습니다.
그동안 진공관 제일주의에 빠져서 TR증폭기를 무시했던 것을 반성하기도 하고.....

우선 노이즈 레벨에서 진공관 기기는 TR기기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100DB/W 에 가까운 고효율 혼 스피커에서도 귀를 아무리 혼 속에 쳐박아도 노이즈가 안 들립니다. 험도 당연히 없습니다.
주파수 대역 특성도 거의 완벽하다고 뻥쳐도 됩니다.
고역 플랫하게 뻗고, 저역도 댐핑이 확실하게 잡혀서 바닥을 깁니다.

반면 진공관 기기는 시소효과라는 것이 있어서, 험과 노이즈를 극한으로 내리면 음이 삭막해지기 쉽습니다. 직류점화, 대용량 콘덴서 필터링 등의 부작용이지요.
그래서 귀로 들어가며 어느 정도 노이즈와 음색 사이에서 타협을 합니다.

그런데.....

몸날 개구리 뛰듯 가늠하기 어려운 변덕이라는 것이 또 고개를 듭니다.

TR증폭기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매력'이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냥 성실하고 건실하고 충실하다는 느낌 외에 무언가 개성적이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매력은 못 찾겠다는 것입니다.

진공관 기기에는 수천가지의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변수가 있고, 실제로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이는 진공관 기기의 단점으로서 그만큼 불완전하고 불완전하게 다양한 부실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런 곳곳에 다양하게 드러나는 부실함이 개성적 매력으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여자를 사귀어 봐도 그런 경우가 늘 있습니다.
남의 눈에 완벽하다고 해도 금방 실증나기도 하는 반면, 어떤 여자는 늘 속 상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면서도 끌리기도 합니다.

아- 인간이 되질 못하다 보니까, 자주 변덕으로 부리고 마음을 못 잡고 흔들립니다.
어떨 때는 도를 통한 듯이 관조적으로 되어 이젠 하산해야 하겠다는 건방을 떨어도 보지만,
그 지속시간이 얼마 안 됩니다.

이런 바보의 자아비판으로 게시판을 또 어지럽힙니다.

날 선선해지면 다시 진공관 들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