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독선에 대한 반성

by 윤영진 posted Aug 03, 200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만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르 흐르는 에어컨 없는 오디오 골방에서 음악을 듣자니 고역이 말도 아닙니다.

시원한 계절에는 진공관 기기를 서너대를 틀어놓고도 열기를 못 느끼더니,
진공관 기기에서 나오는 열만으로도 더위가 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달 전쯤부터 파워앰프만이라도 구닥다리 메리디안 TR로 바꿔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마가 물러나고 열대야까지 닥치자, 진공관식 프리앰에서 나오는 열기조차도 버겁습니다.
괜히 앰프 뚜껑 한번쯤 만져보고 부르르 치를 떨고....
저것도 덜 뜨거운 걸로 바꾸나? 고민하다가 일요일 마침내 M.L TR프리로 바꿨습니다.

물론 뻣뻣한 저역과 날선 고역의 피곤함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세운 다음에.....

그런데 한참을 들어도 TR에 대해서 갖고 있는 선입견에 따른 불만이 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냥 들을만합니다. 아니 꽤 듣기 좋습니다.
스피커 음압이 높아서 프리의 볼륨을 거의 높일 수 없다는 단점 외에는....

결론은.....
그동안 스스로 "진공관 소리가 좋다."는 독선에 빠져서, 그 독선의 깊이가 지나치게 깊었다는 겁니다.

모든 오디오 기기가 다 좋은 소리 나라고 애써서 만든 것인데.....
그걸 잘 맞춰서 잘 튜닝해서 쓰면 다 좋은 소리 나는데,

저 스스로는 진공관 아니면 안 된다. 직렬3극관 아니면 안된다. 싱글 증폭 아니면 안된다. 트랜스는 어느 회사 것 아니면 안된다. 식으로 규정을 좁히고 살았습니다.

크게 반성을 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이런 반성도 시간이 흐르면 흐려지고 다시 독선의 시기가 찾아올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언제나 변덕 없는 음악 듣기가 가능할지....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