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지는 하면서 나는 말려?

by 윤영진 posted Feb 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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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점심을 먹다가 후배 K가 주말에 독일제 H사의 앰프를 중고로 구입해 들여놓고 주말 내내 음악만 들었다고 얼굴이 상기되어 말합니다. 마침 옆에는 우리 팀에 오기 전에 10여년간 사내외에 유명하던 녹음 엔지니어 후배도 같이 있었습니다.

  새로 오디오 환자병동에 입원한 K로서는 평소 오디오병이 깊다고 알려진 저나, 유명한 녹음엔지니어인 L이 있다보니, 자기가 구입한 스피커와 앰프에 대해서 평도 부탁하고, 튜너 업그레이드도 질문하고 들뜬 모습이 확연합니다.

  나는 L에게 떠넘기고, L은 나에게 떠넘기다가 결국 내가 악역을 맡았습니다.

  1) 지금 대체로 시스템 가격 합계가 중고제품 포함해서 500만 원 정도로 보이는데, 절대로 그 이상 넘어가지 마라! 넘어가 봤자 별 거 없는데, 갈증과 불만은 점점 더 심해지고, 와이프하고 관계는 불편해진다.

  2) 진공관은 건드리지 마라! 궁금하면 그냥 남의 기기 들어만 보고, 사거나 들이지는 말아라! 기기 바꿈질만으로도 생활이 복잡해지는데, 진공관 만지다 보면 땜질로 들어서고, 땜질하다 보면 인생이 고달퍼진다. 물론 그걸 재미라고 우기지만 아예 모르니만 못하다.

  하도 저와 L이 "전문가연" 하면서 윽박지르고, 옆에 있던 다른 오디오 엔지니어 하나도 가세하니까, 마지 못해 수긍했지만, 벌써 말하는 틈틈이 '진공관'에 대한 흠모, '빈티지 혼 스피커'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못합니다.

  저는 애써 설득합니다.

  "나도 거의 30년 해봤는데, 그거 다 쓸 데 없어. 지금 나 그냥 고물 혼스피커 스피커 한조, 허름한 자작 프리와 싱글 파워 하나 놓고 들어. 수 많던 기계 다 내보냈고, 새로 들일 욕심도 없어."

  "그거야, 일정한 경지에 든 사람의 얘기 아닙니까?.... 거 왜 웨스턴 일렉트릭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허걱! 웨스턴이라구요?

  벌써 입술이 부르퉁퉁...."지는 다 하면서 왜 나는 말리나?"라고 얼굴에 써있습니다.

  밥 먹고  헤어지며 저와 L은 확신을 했습니다.

  "에고, 한 두 달 내에 저지르고 말겠군...."

  "선배, 그냥 말리지 말고 시행착오나 줄이라고 코치를 하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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