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

빈티지 앰프의 접지

by 윤영진 posted Jul 1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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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고수분들이 진공관 앰프의 마지막은 '그라운드 어스'라고 하는 말을 꽤 오랜동안 잘 이해 못했습니다.

빈티지 고물 앰프를 자주 만지다 보면, 대체로 1950년대 이전에는 다점 어스가 많이 눈에 띄고
그 이후로는 1점 어스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 자작하는 분들이나 빈티지 수리하시는 분들은 거의 다 1점 어스 일색인 것 같습니다.
빈티지 앰프들도 일단 설거지(걷어내기의 속어)를 하고 나서 1점 어스로 해서 험을 잡더군요.

저는 빈티지 앰프는 대충 원래대로 두고, 자작은 1점 어스로 하는 평범한 추세를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다점 어스로 된 빈티지 앰프의 험에 시달리다가, 우연히 3점 어스로 바꾼 후 효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 일본의 유명 자작가인 사쿠마의 앰프에서 기인했는지 사쿠마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사쿠마가 개발한 것은 아니고 초기부터 하던 2점 어스 방식..... 그걸 응용해서.....

간단히 신호부 어스를 뒤(출력트랜스)부터 끌어서 입력 단자 가까운 곳에 떨어뜨리고,
B전원 전원부 어스를 역으로 끌어서 전원트랜스 근처에 떨어뜨리는 많이 하는 쉬운 방식입니다.

지난 주말 평소 애용하는 2A3 싱글앰프(교류 점화)의 미약하지만 신경 거스리는 험을 참고 듣다가 마침내 손을 댔습니다.
1점 어스를 2점 어스로 바꾼 것입니다. 물론 대충 굵어 보이는 선으로 스타 어스 방식으로 떼워놨던 전원부 어스 라인도 3mm 이상의 굵직한 동선으로 "전류량 많은 순서"를 정확히 하고 길이를 최소화 하는 등 성의껏.....

특히 히터 어스를 전원 어스에 같이 잡는 전에 가끔 저질렀던 실수를 안 하려고 정신 차리고.....
신호부와 전원부의 구분이 자주 헷갈립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전문 지식이 부족한 저로서는 사쿠마 앰프 회로도 등을 참고할 수 박에 없었습니다. 전에 고수분께서 메모해 주신 노트도 요긴했고.....

결과는 .....

소리가 너무 달라져서 한동안 감정 수습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험이 준 것은 물론이고, 음색과 음질이 확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짧은 식견에 어스 처리가 "험 줄이는 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겁니다.

음질이 너무 좋아져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좋아졌지만, 특히 중저역에서의 변화가 큽니다.
저역에서 불만하던 것이 확연히 개선되어, 베이스의 거리와 명확도 그리고 위치와 평탄성 등이 크게 좋아졌습니다.
전에는 재즈 등을 들어보면 베이스 연주의 공간 위치가 모호하게 가수 위치와 중첩되어 들렸는데, 이제는 각각 연주 위치가 3차원적으로 뚜렷이 구분이 됩니다.
특히 허리 아랫 부분에 저역이 뒤섞여서 안개처럼 뿌연 느낌이 들던 것이 없어지고
허리 아래 공간도 뻥 뚫린 느낌이 생겼습니다.
(이 점은 얼마 전, 우퍼에 질 좋은 철심 인덕터를 네트워크에 넣은 효과도 시너지 발휘....)

프로코피에프 곡인지 뭔지에서 저 멀리서 팀파니 두드리는 소리도 확실히 오케스트라 맨 뒤에서 위치가 잡히고 무대 바닥을 타고 앞으로 전달되는 느낌도 잡힙니다.
이런 말 듣는 분들 중에서 비교적 넓은 청취 공간을 가진 분들은 그 정도는 기본 아니냐고 하실테지만.....
제가 현재 쥐 콧구멍만한, 집에서 가장 작은 골방에서 15인치 우퍼의 혼형 스피커로 듣는 청취환경에서는 공간감 형성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과제입니다. 음향 공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분이랄지.....^^

한 가지 불만도 생겼습니다.
공간감이 깨끗하게 정리되면서 중저역대의 두툼한 질감이 희박해진 것입니다.

현미씨 정도 되는 덩치가 부르던 느낌이 윤복희씨 정도의 덩치가 부르는 느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고음이 강조되는 것도 아니고 음색이 가늘어진 것도 아닌데.....
요즘 마눌님 변한 것과 흡사(최근 3개월 사이 마눌님이 운동을 해서 54kg에서 47kg으로 무게를 줄이셨습니다.)해서 겉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뱃살과 허리, 엉덩이, 허벅지 등의 군살이 쪽 빠진 느낌..... 지방은 빠지고 근 섬유질은 는 느낌인가?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매킨토시 tr앰프에서 골드문트 비슷한 소리로 변했다고 할지....
그렇다고 카랑카랑하지도 않고, 낭창거리는 맛은 더 좋아졌는데....

음을 변하게 하는 수많은 튜닝 변수 중에서 전에는 어스 배선을 가장 덜 민감한 것으로 여기고 있던 제가 아둔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오히려 가장 큰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오디오에서 섣부른 선입견은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선배들의 경험을 귀 담아 듣고 몸으로 해 보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