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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밤의 6V6 싱글 + 젠센 6인치 풀레인지

by 항아리 posted Jun 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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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하루종일 방바닥을 문대고 지내는 처지에서,
낮엔 6*6 형제들 중 가장 많은 밥을 먹고 굵은 똥을 자랑하는
6Y6 pp파워앰프와 트랜스아웃 프리앰프, 알텍 A7의 조합으로
나름대로 시공간의 한계를 넘나들고,

밤엔 볼륨 단 썩은 6V6 싱글에 손바닥만한 젠센 6인치 풀레인지로
곁을 달랜다.

(삼류적인 표현이 술술 잘도 기어나오는 걸 보니 오늘밤은 왠지 모를
감상적인 기분이 평소 보다 진하다는 게 감지된다.)

앰프와 스피커를 스스로 꾸미고, 소리 또한 윗 물건들이나 내가 가진 능력에서
덜하지도 않고 더하지도 못할 상태인 듯 하니,
비로소 더 바랄 바 없고, 더 바랄 것도 없다.

내가 듣는 음악 내가 만든 소리로 하자했던 애초의 목적은,
목적 그대로 내게 맞는 소리로 음악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것은 그 이전의 소리들엔 결국 적응을 못했다는 뜻과 같고,
곧 그런 소리들을 냈던 오디오기기들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나라는 인간이 궁합과 주파수가 잘 맞지 않았다는 뜻과도 같다.

소리는 결단코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개성과 의식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지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여지껏 냈던 소리들과 그때의 내 상태는 일치했으며,
지금까지 들었던 남의 소리들과 그 소리의 주인들은 언제나 썩 잘 어울렸다.

동일시는 적절할 경우 보다는 억지나 지나친 꿰맞춤인 경우가 많아 가장 흔해빠진
혼돈과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소리는 곧 그 주인의 아이덴티티(identity, 앗, 영어도 되고...오늘밤 좀 이상하네.)이자
자아의 청각적인 구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리 때문에 잠못 이루고, 갈등하고, 고통받고, 기뻐하고, 미쳐 날뛰지만, 그때뿐이다.  
소리 때문에 분란도 많고 논쟁도 많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노도와 같이 치닫다가도 멈출 줄 알고, 돌이볼 줄 알며, 검토할 줄 아는 것은 자아의
속성이다.
소리가 자아의 청각적인 구현이라고 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른 예로 정치적인 인물이나 이념에 자아와 동일시를 부여한 경우엔 그 분란과 싸움에
끝이 없다. 동일할 수 없는 것에 동일시를 부여한 까닭이다.)
  
사연없는 사람 없는 것처럼,
어떤 소리건, 그 소리에 나름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오감 중에 유일하게 항상 열려 있는, 유일하게 속일 수 없는, 가장 정직한,
심신의 균형과 밸런스를 감지하는 평형감각기관이기도 한,
청각을 비로소 제대로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과 같을 것이다.

                                            맞지 않는 소리를 내는 물건들을 보면,
                                            악랄하고 잔인한 평을 즐기기까지 하는 인간이
                                            초여름이어서 더 더운 것 같은 밤에,
                                            썩은 6v6싱글과 손바닥만한 6인치 풀레인지로
                                            KONG에서 나오는 FM소리를 들으며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