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출력관의 지존?

by 윤영진 posted Jul 16, 200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성규님의 25B 앰프 때문에 한동안 즐거웠습니다.
사람의 애간정을 태우는 205D란 애물단지는 참 요물스럽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공관 역사에서 "비운의 명관"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바로 WE의 252A 입니다.

205D가 최고의 오디오관으로 군림하던 때를 지나  RADIOTRON의 250이 출현을 합니다.
이게 그때까지의 오디오관을 전부 넉아웃시키고 히트를 친 겁니다.
균형잡힌 대역 밸런스, 질 좋은 중저역, 한 없이 투명한 고역, 청자 매병을 연상하게 만드는
크고 우아한 벌룬형상,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4W를 넘는 출력......

이게 WE의 자존심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겁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밸꼴림을 겪은 WE의 박사님들이 타도 250을 선언하고 개발한 것이
바로 WE 252A였습니다.
이 때가 아마 1930년대 초였을 겁니다.

250을 능가하는 음질과 출력과 자태, 한 없이 우아하고 투명하고 감칠맛 나는 음색....

특히 매쉬 플레이트의 초기형은 "인간이 만든 오디오관 중에서 가장 음질이 좋은 관"이라고
제가 우겨도 이에 반대하는 분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WE의 앰프 개발라인에서 중용되지 못하고 맙니다.

252A보다 질이 떨어지는, 본래 정전압용으로 개발한 300A와 300B가 WE의 토키앰프의 소켓을 모조리 차지하고 맙니다.

아마 "가정용의 근거리 청취"를 위한 기기를 거의 생산하지 않던 WE의 입장에서
근거리 청취 밸런스가 뛰어나고 음색이 뛰어난 252A 보다는,
원거리에 중고역을 팍팍 밀어 쏘아붙여줄 수 있는 300B가 더 특성이 맞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겁니다.
한 마디로 너무 뛰어나서 중용이 되지 않는 비운의 관입니다.

지금처럼 자작 매니아들이 많지도 않던 시절, 수요가 늘지 않으니 생산도 늘지 않는 것이 당연했을 겁니다.
그렇게 252A는 너무 우수한 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번식력이 낮아서 많은 자손을 뿌리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유럽관으로는 지멘스의 ED를 지존으로 치는 것 같습니다.
이에 견주어 미국관으로는 WE 252A를 지존으로 모셔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205D는 음색이야 좋지만 지존이 되기에는 출력이나 관의 크기,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아마 전세계를 통틀어 지존을 가려도 252A가 첫 줄에 올라설 겁니다.

저도 이 관을 구해서 싱글앰프 하나 만들어 써보려고 오랜 동안 노렸지만
관 구경 하기도 힘들고 어쩌다 모습을 드러내면 값이 하늘을 찔러 버리는 통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매쉬 플레이트 타잎의 상태 싱싱한 것은 300만원 안팎으로 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ㅠㅠ;
몇 년 전에 E-BAY에서 하나 나왔던 것 같은데, 온갖 조선과 왜국의 매니아들이 돈보따리 끼고  달려들어서 포기하고....

지금은 내부 선 끊어진 시체관 하나쯤 구해서 그냥 디스플레이용으로 두려고 찾고 있습니다.

좋은 관은 앰프에 꽂지 않고 두고 보기만 해도 음이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소박한 행복을 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