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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과 짝퉁, 그 처절한, 혹은 봐줄만한 차이

by 항아리 posted Apr 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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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라'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Aura라고 쓰는가 봅니다.
 누구도, 무엇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어떤 것만의 고유의 기운, 분위기, 뭐 그런 뜻을
 그렇게 한마디로 간단히 말하는 모양입니다.

 빈티지라 불릴만한 옛 오래된 오디오 제품들이나 부품들엔 그 아우라가 있습니다.
 오래 됐다고 해도 아우라가 없거나 사라진 것은 빈티지가 아니라 단적으로 말하면 그저 오래된
쓰레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의 제품이나 부품에서 아우라를 발견하거나 느끼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일 것이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높은 이름값과 물건값이 형성된 제품이나 부품엔 이미 누구나 수긍할만한
객관의 아우라가 있다고 할만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것은 진품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짝퉁, 즉 가품은 아무리 진품과 구별할 수 없는 흉내를 냈다한들, 그 아우라까지 베껴낼 수는
없습니다.
 그 증거는 소리 차이로 바로 나타납니다.
 전체적인 가품이나 부분적인 가품이나 큰 차이는 없습니다.
 복각이라는 명분 하나로 밀어부치는 물건들이나, 진동판이 갈린 드라이버나,
 싸구려 콘덴서를 한 알이라도 불알 단 오버홀된 옛 명기들은 애초부터 아우라를 갖지 못했거나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미 원래 소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그것은 음악을 재생하는 순간 바로 드러납니다.
 소리는 그렇게 정확하고 냉정하며 어김없고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소리가 아닌 다른 어떤 까닭들로 인위적인 아우라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그 또한 소리는 모른 척 눈감아주지 않습니다.
 어떤 제품들이나 부품들의 아우라를 매긴 가치에 '너무하다', '지나치다', '장난 아니네'라는 식의 평이
분분하다면 거기엔 그 제품이나 부품의 본연의 아우라 외에 음험한 의도가 깔린 인위적인 입김이
보태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빈티지를 한다는 것은 결국 오래된 진품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워낙 오래 되었고 점점 귀해지다 보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진품을 사용하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대체품을 찾기 마련인데, 이 대체품들이 진품의 아우라를 어느 정도 깎아먹는가,
신경을 쓰게 되고, 그 차이를 허용할만한 경우에 선택해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진에는 가품이 두 개 있습니다.

 31a혼과 828통입니다. 가품은 스피커에 몰렸고, 스피커 몸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앰프에 붙은 모든 부품들은 진품들입니다.

 

 제게 31a혼을 주신 분은 웨스턴 일렉트릭 31a 복각혼이라 했고, 저는 알텍 31a 복각혼으로 생각하고 받았습니다.
 최고의 아우라를 가진 빈티지는 누가 뭐래도 웨스턴 일렉트릭입니다.
 저는 최고를 좋아하지 않고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제 운명입니다.
 더구나 복각 주제에 무슨...
 
 사진의 네트워크 철심의 코어가 웨스턴 일렉트릭 것이지만, 그것은 소리차이 때문에 하나의 재료로 선택한
것이지 그 이름값 때문은 아닙니다. 저기에 제가 코일을 감았다고 해서 웨스턴 일렉트릭 네트워크 철심코일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습니까. 그냥 철심코일이지요.
 
 비록 복각일망정 31a혼은 이전까지 쓰던 511b 혼과 비교하면 소리 차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혼 구조의 차이에서 오는 까닭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엔 복각 가품이 진품 오리지날 보다 나은 경우가 되는데, 같은 모델이 아니므로 가품이 진품 보다 낫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511b 보단 여러 면에서 잘났지만, 진품 31a 보단 당연히 못합니다. 그것은 정말 당연한 것입니다.
 저는 진품 31a를 구할 능력이 없고, 그것을 한탄하지도 않습니다. 이 31a혼은 가품이라도 쓸만하구나, 고마운
가품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828통은 어느 분은 진품이다, 어느 분은 가품이다, 하시는데 저는 구할 때부터 거기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 관심은 온통 구조, 역시 구조에 있었습니다.
 진품 825통 소리를 자주 들어볼 기회가 있는데, 거기서 진품의 아우라를 보고 듣습니다.
 825통은 진품과 가품을 쉽게 구별하는 법을 어쩌다 알게 되었으나, 828통은 아직 그 구별을 잘 모르겠습니다.
 
 스피커 몸체의 경우는 구조가 같다는 전제에선, 진품과 가품의 차이는 허용할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앰프엔 가품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저는 요즘 부품들은 가품으로 취급합니다. 제 경우엔 가품을 쓸 바에야 앰프는
만들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기에 요즘 부품 하나만 끼어들어도 제 앰프에 깃들었다고 스스로 믿거나
착각하고 있는 저만의 아우라는 실종되고 마는 까닭입니다.

 

  다시 한 번 앵무새 놀음을 하자면 오디오는 우물안 개구리 취미입니다.
 우물안 개구리는 자기가 우물안 개구리라는 걸 모르거나 잊는 순간부터 처절해집니다.
 자기가 우물안 개구리라는 걸 알고 받아들이는 한, 적어도 처절한 신세는 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디오의 모든 경우에 예외없이 적용됩니다.
 
 진품과 가품의 경우에도,
 차이가 있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사용하는 것과, 아무 차이없다, 오히려 진품 보다 낫다고 믿고 사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입니다.
 
 빈티지라 이름하는 오디오 세계에선, 진품의 아우라까지 그대로 가져온 가품은 어떤 경우에도 존재할 수 없다고
단정할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진품만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소리와 음악을 분리하지 않고 한 줄에 놓아야만 하는 빈티지오디오란 취미에선 최대한 본연의
아우라를 지키거나 살려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 아우라가 곧 음악성, 음악을 음악처럼 들려주는 바탕이자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멋진 아우라를 뿜어내는 부품들과 기기들을 잔뜩 갖추고서도 정작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빈티지 물건들에 서린 어떤 아우라가 무조건 좋은 소리와 음악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란 것도 재미있는 오디오질의

한 장면일 것입니다.

 본연의 아우라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결국은 그 사용자에 달린 까닭입니다. 

 그래서 멋진 표현을 즐기는 자들이 오디오쟁이들을 오디오자키, 혹은 오디오지휘자라고 하기도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