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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트랜스아웃 프리앰프는 어떠십니까?

by 항아리 posted Oct 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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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앰프란 무엇일까.
CDP나 LP같은 소스에 볼륨-파워앰프면 소리를 내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런데 왜 굳이 볼륨 달린 프리앰프라는 것을 사이에 끼워넣는 것일까.
진공관 오디오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가장 첫 구성은 CDP - 볼륨 달린 파워앰프 - 스피커였다. 이전에 듣던 TR앰프
소리 보다 듣기 편했고, 새로왔으며, 진공관을 보면서 마냥 좋았다.
누군가가 프리앰프란 것을 갖고 놀러와서 CDP와 파워앰프 사이에 연결하고
들어 보았다. 듣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생각했다.

프리앰프란 것은 영 쓸모없는 것이구나.

그럼에도 그 프리앰프란 것을 좋다고 붙여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겼다.
그 다음 과정들은 붙여도 뭐가 좋아진 것인지 모르겠다, 거나, 좋아지는 것도
있는 반면, 못해진 것도 있다는 등등의 경험이었다.
역시 프리앰프란 건 잘나봤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인 모양이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다가 영 다른 것을 알게 된 것이 속칭 트랜스아웃 프리앰프를 만나고 나서였다.

지금 생각해도 워낙 잘 만든 놈이었고, 그만큼 만들어내는 사람이 또 없는 분의
앰프였다. 뗄 수 없었다. 다른 세계였다. 어쩌면 그 이전의 세계가 미망의 세계였고
드디어 올바른 세계로 들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앰프들은 직접 만들어 듣게 되었다.
소리는 아주 가까이 내려왔고, 항상 곁에 머물러 있으며, 스피커 안에서 나는 소리가
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과 이질감이 없다.
거기에 가장 절대적인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 프리앰프라면 처음의 경험에 비추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사진의 프리앰프는 이미 눈치챈 분들이 계시겠지만, 만들 때부터 걸레 같은 이 사람이
만든 것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선 5879-ADC 프리아웃으로 1단증폭 트랜스아웃 프리앰프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잘 알려진 김계중님의 작품이다.
자그마하고, 예쁘면서, 험이라곤 없는 트랜스아웃 프리앰프는 그 정도만으로 충분히
매혹적이다. 더구나 프리앰프에 아웃트랜스를 굳이 채용하는 목적인 전류를 흘리는 방식의
프리앰프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 정착지가 된 충남 아산에서 먼 경기도 북부 일산까지 놀러갔더니
김계중님이 사진과 같은 프리앰프를 놓고 딸 자랑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처럼 은근한
내색을 비치길래, 처음엔 외모와 외양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인간답게
부러, 저건 또 뭐야,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가,
소리를 듣고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아웃트랜스를 탐색했다.
트랜스아웃 프리앰프를 결정하는 것은 거의 순전히 아웃트랜스의 성능에 달린 탓이었다.

동그란 깡통 안에 숨겨 버렸다. 볼 수가 없었고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리를 들으면 모르리.

"저만한 미제 아웃트랜스가 있었더란 말이오?"
"금번에 발견했소. 나의 놀람도 아직 가시지 않았소.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는지..."
"운도 기막히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저런 놈을 구했더란 말이오?"
"저기 쓴 놈 뿐이겠소? 또 있소."
"헉...어디 그럼 깡통에 넣지 않은 발가벗은 몸을 구경이라도 좀 합시다. 꿀꺽꿀꺽..."
탐욕스럽게 만지고 쓰다듬으니,
"나의 발견을 보호하고 지켜주시오. 물건이 많지 않으니 지키고 싶소."
"비록 겉이 초라하고 볼품없으나 그 내용물을 짐작컨데 이 정도 DCR과 헨리값,
허용전류량을  보면 결국 UTC A-25나 스스로 검청장비라 일컫는 저 ADC 프리앰프
아웃트랜스 못지 않은 크기가 되겠구료."
"그러나 들어보았겠지만 소리가 더 놀랍지 않소?"
"아...누가 이런 물건을 알아주겠는가. 지금에서야 미국놈들과 백인놈들에게 추호의
호감도 가질 수 없으나, 이 시절의 그 놈들에겐 과연 오늘날의 후안무치와 떵떵거림을
낳은 바탕이 있었으리."
"바로 그거요. 크게는 결국 지구의 재산으로써 우리 같은 사람에게 이런 물건이야말로
보물이나  진배없으니 함부로 취급받지 않게 지켜내야 할 것이오."
"자격 있소. 아끼고 지킬 줄 알며 그 속을 잘 쓰다듬어 이끌어낼 줄 아니 이런 물건이
오게 된 것일 거요. 아무에게나 이런 물건 떨어지겠소?"
"과찬이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오."
"그 운이란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긴 하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더욱 알 수 없으면서도 심상치 않은 작용이 있는 게 아니겠소?"

2단증폭 프리앰프든 1단증폭 프리앰프든 쓸만한 아웃트랜스는 몹시 귀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그 소용이 될만한 종류가 많지 않았다.
억지로 위나 아래, 혹은 위 아래가 다 잘린 소리를 품은 트랜스를 쓰거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콘덴서를 달아 전류를 끊어 사용하는 수가 있긴 해도, 그것으로 인해 이미 트랜스아웃
프리앰프라는 특성에선 비껴나게 된다.
아웃트랜스 가격만도 만만치 않은 잘 알려진 모델들을 구해 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고,
무엇 보다 재미가 없다.

과연 자작-나의 것을 만들어 가진다는 데에선 숨은 진주를 발견하고 캐내는만한 재미는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놈의 진주가 어디에 어떻게 꼴같지 않은 모양을 하고 굴러다니는지 누가 알까.

김계중님의 프리앰프를 보면서 새삼 이것저것 헤아려보니 오디오와 자작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